예언과 탈혼 현상
Blenkinsopp은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한다. “탈혼 내지는 황홀경 상태는 예언의 본질인가? 혹은 예언자들이 지닌 하나의 특징인가? 아니면 예언자로 성장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인가?” 이것은 예언자가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에(적어도 초창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높이 평가받지는 않았다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 황홀경을 탈혼으로 알려진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 그리고 인간 행동의 변화라는 전제 아래 종교적인 현상으로 국한시켜 연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예언자가 영에 사로잡히는 체험을 할 수도 있고 동시에 그와는 반대로 다른 세계로부터 오는 영적인 통교 혹은 심리적 행동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고도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즉, 탈혼 상태에서 예언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체험 없이 평상시처럼 계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서도 이러한 예언적인 행동은 두 사실 모두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이건 일부이건 간에 사회 일각에서 이러한 현상을 수용해 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동의 없이는 탈혼의 중개자가 중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예컨데 오늘날에도 휴거설이나 점성가의 활동이 가능한 것은 사회에서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탈혼 내지 황홀경은 개인적, 집단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폭력이라든가 진탕 먹고 마신다든가, 혼수상태, 환각상태, 혹은 긴장상태 등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음악이나, 약물을 포함한 마약, 자해행위, 충격요법, 심신을 자극시키는 방법 등이 황홀경을 유발하거나 도울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 중에 여러가지는 실어증, 긴장병 등 임상병리학에 속하는 증상이기에, 우리가 연구하려는 예언적 심리학, 다시 말해서 예언의 심리상태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 안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결정짓는 사회적 요인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몇가지 견해를 밝힌다면; 탈혼 또는 황홀경 상태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들, 예를 들면 정신이상, 너무나 생활이 빈궁한 자,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실망하고 좌절을 깊이 체험한 집단들 가운데서 자주 또는 가끔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탈혼의식과 더불어 함께 모이게 된다. 이것은 사회의 권력구조에 대한 의식적인(ritual) 반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자신들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을 격상시키고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이런 행동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러한 능력과 힘이 있음을 과시하게 된다.
또한 집단 탈혼의 발생은 사회적, 정치적 긴장상태, 예를 들면 외세의 침입이나 점령, 민심동요로 사회가 동요될 때 이런 현상은 쉽게 뿌리 내릴 수 있다. 단지 사회 현상학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기원전 11-10세기 팔레스티나 사람들과의 전쟁, 기원전 9세기 다마스커스와의 전쟁, 기원전 8-6세기 앗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서 어려움에 처해있었던 이스라엘과 근동지방의 예언활동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왕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탈혼 내지 황홀경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거나 어려움을 체험한 집단이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특징지울 수 있다.
또한 탈혼은 어느 개인의 지도력을 그가 속한 집단 내에서 보장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의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 스승과 비슷한 이적과 행동을 이행해야만 했었다. 그의 첫번째 기적은 엘리아의 겉옷으로 요르단 강물을 가르는 것이었다(2열왕 2,13-14). 또한 막스 베버가 지적한 바와 같이 탈혼 내지 황홀경 같은 것은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의 권위를 정당화시켜주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더 공통된 현상은 종교적 지도력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면 탈혼은 사회를 붕괴시키는 역할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사회조건이 이성적으로 판단 가능하면 탈혼등의 현상이 높이 평가되지 않으며 서서히 사라진다. 또한 종교적 지도력이 확고히 자리잡게 되면 탈혼은 파괴력을 지닌 이단으로서의 역할 또한 잃어버리게 된다.
I.M. Lewis는 ‘Ecstatic Religion’(harmondsworth,penguinbooks 1971)이라는 저서에서 “보다 강력하고 굳건한 기초를 지닌 종교적 권위는 일시적인 영감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신흥 종교와 같은 새로운 믿음들은 번창한 흥분을 통하여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실현된다고 또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도래한다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이러한 것이 안정세를 구축하게되면 탈혼은 포용력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은 항상 기존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