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장과
다른 성서 전승과의 관계
예레미야 1장은 상당히 폭넓은 발전 과정을 보이고 있다. 사실 예레미야 1장은 광대한 성서의 일관성 안에서 어떤 텍스트가 삽입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레미야 1장과 예레미야서의 나머지 부분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이 텍스트가 어떻게 이러한 형태로 전승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해석학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승권 안에서 이 텍스트가 점유하고 있는 요소들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요소들 중에 테마라든가 주제, 또는 양식들을 지적한 바 있다. 이제 계획적인 어떤 윤곽들을 대략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서 어떤 확실한 연결점들을 찾고 있는지, 또한 어떠한 결과들이 주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3가지 주요 윤곽이 나오고 있는데 첫 번째로 예레미야 1장과 예레미야서와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예레미야 1장과 소명 이야기들 사이의 관계, 세 번째로는 아들에 관한 텍스트와 예레미야 1장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예레미야 1장과 예레미야서와의 관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두 가지 분석 경향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장과 ‘예레미야의 고백’에 관한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겠다. 예레미야의 고백에 관한 텍스트는 11,18-12,5; 15,10-21; 17,14-18; 18,18-23; 20,7-18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백들은 예레미야 자신이 자신의 신상 고백을 위해서 다시 취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 부분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만약 예레미야 1장이 예언자로서 예레미야의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면, 즉 1장이 예언자 예레미야 신원에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면 예레미야의 인격에 대한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예레미야서의 다른 텍스트들은 예언자의 소명 수행을 이행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① 하느님과의 근본적인 관계 안에서 주어로 ‘나(ego)’가 다시 나오고 있다. 또한 조소와 죽음에 대한 체험 안에서 겪게 되는 두려움이 다시 등장한다.
② 또한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1장과의 관계에서 살펴봐야 할 내용은 예레미야의 전기를 전하고 있는 예레미야 26-29장과 34-35장을 1장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만약 소명이 한 사람의 일대기의 기초요 의미라면 그 일대기는 소명 설화 안에서 여러가지 계시를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③ 무엇보다도 다음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예레미야 에언자의 육체 중에서, 그리고 예레미야와 다른 사람들(예를 들면 예루살렘이라든가 다른 민족들)과 예레미야와의 사이에 내면적인 관계도 주시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예레미야서 15,10-21의 예레미야의 고백 중에서 과연 두려움이 나오는가, 주어는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본문 확인】)
2. 예레미야 1장과 소명 이야기들과의 관계
이 테마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문학 유형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즉 예언자들의 소명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 방식의 구성 요소들은 무엇인가, 이 점에 관해서 여러가지 다양한 견해들이 있어 왔다.
1) 모세 소명 설화와의 관계
1. 우선 예레미야의 소명 설화와 모세의 소명 설화 사이의 관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Holladay는 이 두 소명 설화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주장한다. 다음 제시하는 주제들에 의해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① 이 두 소명 설화에는 유사한 이의 제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예레 1,6과 출애 4,10을 비교해 볼 수 있다.
② 예레미야 1,7-9와 신명기 18,18 사이에 나타나는 단어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הꕯ(차와) 동사와 רבד(다바르) 어근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 7,2도 참조할 수 있다.
③ 두 소명 설화 사이에 공통된 주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1. 하느님과의 대화 내용을 보도하는 형식이 나오는데, 출애 32,11; 민수11,11 등을 들 수 있고, 예레미야서에는 예레미야의 고백들을 들 수가 있겠다.
2. 옛 계약과 새 계약에 관한 주제가 나타나고 있다.
3. 백성 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문제가 언급되고 있다.
④ 예언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1차적인 임무 중의 하나인 중재의 기능, 이것이 양쪽에 다 언급되고 있다. 출애 32장; 민수 14,13-25; 예레 15,1 등을 들 수 있다. 예레미야서 1장을 기술한 사람이 모세의 모습을 전반적으로 염두에 두고 모세의 모습을 암시하기 위해서 약간의 특징을 지닌 언어적 표징들을 통하여 예레미야를 언급하면서 이 보도를 기술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그러면 소명 설화를 전하고 있는 보도 형식들의 관심과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모세의 소명 설화 위에 예레미야의 소명 설화를 형성하는 것은 이 두 예언자 사이의 관계를 전제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해석학적인 행동이다.
모세의 모습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초적인 모습이었던 것처럼 예레미야의 모습은 결론의 가치를 떠맡게 된다. 이스라엘의 이 두 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한 이스라엘 역사에 일종의 거대한 inclusio가 형성된다. 모세가 최초의 예언자였고 예레미야가 마지막 예언자였다는 것, 최초의 예언자가 40년 동안 활동하였고 마지막 예언자도 40년 동안 활동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일정한 inclusio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역사란 대단원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해 inclusio를 형성하고 있다.
마지막, 즉 종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또한 새로운 비유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 계약의 종료는 또한 새 계약의 시작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신약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구약 성서에서 다루고 있는 이렇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레미야는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의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 사무엘 소명 설화와의 관계
사무엘의 소명 설화에 나오는 사무엘과 예레미야의 관계를 또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사무엘 전승에 보면 엘리(그는 레위인 사제였다) 밑에 있는 사무엘을 רꘞꗻ(나이르: ‘어린아이’)라는 표현으로 강조하고 있다. 1사무 3,1과 3,8에는 ‘나는 알지 못한다’라는 예레미야 1,6의 고백이 나온다.
רꔲꕈ יꚝ꘤ꕈꖷ אꗟ (예레 1,6)
말을 할줄 나는 모릅니다
הꕯהꖾ־רꔨꕖ ויꗚꔞ הꗚꔿꖹ םꙠꖫꕵ הꕯהꖾ־תꔟ עꕈꖷ םꙠꖫ (1사무 3,7)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계시되기 전에 주님을 그가 알기 전에
② 사무엘 소명 설화나 예레미야 소명 설화나 모두 모태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③ 중재 기능을 떠맡은 모습이 역시 표현되고 있다. 예레 15,1에서 이것이 명시적으로 나오는데 참조하기 바란다.
④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들(예를 들면 사울, 다윗)에 대해서 사무엘이 권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권위적인 역할은 다른 백성들과 왕국들(여기에는 유다 왕국도 포함된다)에 대하여 예레미야가 권위를 행사했던 그러한 내용을 회상시킨다. 예레미야 1,10을 참조할 수 있다.
⑤ 여기서 이스라엘 왕국의 처음과 마지막에 대한 암시를 갖게 된다. 왕정 제도의 시작은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시작되었고, 왕정의 마지막은 예레미야 때 끝난다.
3) 제 2이사야의 종과의 관계
예레미야 1장과 제 2이사야의 종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제2이사야는 백성들의 빛이 되고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전하기 위하여 태중에서부터 하느님이 선택하신 야훼의 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종은 예레미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백성 가운데서 고통을 겪는, 고통 당하는 종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3. 예레미야 1장과 아들에 관한 텍스트와의 관계
1. 이 측면에서 예레미야 1장과 성서의 다른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예레미야 1장을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1장에서는 예언자의 소명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예레미야가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요소들은 예레미야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안에서 마지막 설명을 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출중한 관계, 놀라운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 안에서 이 이미지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1장에서는 명백하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2.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의 태중 안에 아들을 갖게 한 사람이다. 따라서 인간 육체의 형성에 시초가 된다. 육체에 따른 이 관계는 철저히 부성(父性)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부른다. 이스라엘의 아버지는 자신의 말과 함께 아들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또한 아들이 분별력 있는 역사, 즉 약속인 역사에 직면하게 할 수 있도록 그를 부른다. 아들의 실존으로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하느님과 아버지의 말씀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3. 이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은 아들의 행동 원칙이다. 이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을 형성하며, 생명을 주는 명령이 된다. 앞에서 우리는 자주 말씀에 관한 테마가 예언자를 정의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이 테마가 아들의 본질을 더 철저하게 표현함을 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사려 깊은 말씀에 복종한다는 의미에서 아들은 하나의 성취이며 종의 속성을 외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원천, 자신의 근거인 아버지께 전적으로 종속된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완수요 성취이다.
4. 보통으로 아들과 종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 전승에 의하면 이러한 견해는 옳지가 않다. 사실 아들은 순명을 통하여 자신의 근원을 제시하고(즉, 아버지를 제시하고) 또 그 아버지를 의미하는 사람이며, 이것 때문에 즉, 순명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외형상 종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종과 아들은 다른 사람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구조적 의존도는 아들의 실존 안에서 권위의 가치를 이끌어 들인다. 아들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권위를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 똑같은 권한을 행사한다.
5. 예레미야서 1장 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의 전체적인 순명에로 불리움을 받았고 동시에 그에게 모든 백성들과 왕국에 대한 권위가 주어졌음을 보았다. 한 아들, 종에게 어떤 왕의 모든 권한들이 주어지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산다는 그 점에서 아들은 아버지 자신의 초상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 아버지에 동화된 아들,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것에 동화된 두 번째 것이다. 이를 통하여 같은 영광과 품위를 누리게 된다. 전적으로 아버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손안에 모든 것이 위임되었다.
6. 예레미야의 모습을 일관성 있게 이해하도록 하는 이러한 고찰들은 성서의 이러한 텍스트들, 특히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종의 모습을 떠맡고 있으면서 전역사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아들의 초상을 비교하고 있는 신약 성서 텍스트들과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아버지의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화를 통하여 우리도 이 신비로운 소명에로 불리움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