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장 1-19절
1. 단락을 제한하는 이유
이제 앞부분의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2,1-19을 살펴보겠다. 우선 2,1-19의 단락의 단일성을 제한하는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1-37은 하나의 단락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단락은 다시 2,1-19과 2,20-37로 다시 세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분하는 동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⑴ רꗫאָ(아마르) 동사
1. 2,20과 함께 이 이하의 문장들은 외관상으로는 대화의 형태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을 언급한다는 의미에서 독백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2,20부터는 독백의 형태가 문장을 시작하고 있고 지속되고 있다.
“너는 일찍부터 고삐를 끊고 날뛰는 굴레 벗은 말이었다. 나를 섬길 생각이 없어 높은 언덕 무성한 나무 밑 어디에서나 뒹굴며 놀아났다. 특종 포도나무를 진종으로 골라 심었는데 너는 품질이 나쁜 잡종으로 변하였구나” (예레 2,20)
2. 특별히 여기서 중요하게 사용된 동사는 רꗫאָ(아마르: ‘말하다’)이다. 여기서 話者, 즉 רꗫאָ(아마르) 동사의 주어는 이스라엘이다.
20. (דꔬ꘦ꔟ אꗟ) יꙞꗱאꚠꕰ
나는 섬기지 않을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23. (יꚕאꗭꖮꗼ אꗟ) יꙞꗱאꚠ
나는 몸을 스스로 더럽히지 않는다고 너는 말할 것이다
25. אוֹל שׁאָוֹנ יꙞꗱאꚠꕰ
아닙니다 공연한 말씀입니다라고 너는 말했다
27. םיꙞꗱꔠ
그들은 말했다
וּרꗱאꖼ
그들은 말했다
31. (אוֹבꗺ־אוֹל) וּרꗱאָ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35. יתיꙗꗼ יכּ יꙞꗱאꚠꕰ
나는 무죄하다고 너는 말했다
(יꚕאꖧꖎ אꗟ) ꗗꙟꗱאָ־לꘞ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네가 말하기때문이다
《※ 여기서 ‘그들’의 경우는 이스라엘과 잡신, 둘 다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전부 רꗫאָ(아마르) 동사를 사용하고 있고, 화자는 전부 이스라엘이다.
3. 이스라엘의 입에서 발설된 이 רꗫאָ(아마르) 동사는 2,1-19에서도 나타난다. 즉 2,6과 2,8이 그렇다. 그러나 2,6.8.에서 동사 רꗫאָ(아마르)는 부정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예를 들면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반면에 2,20-37에서는 2,6.8.에서 부정된 사람들이 오히려 담화의 대상이 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이는 성서를 확인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2,6.8.에서 발설되는 내용은 야훼의 구세 경륜적 현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세 경륜적 현존이라는 테마는 2,20 이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에집트에서 우리를 데려 내오신 야훼, 메마른 모래 땅, 가물어 풀도 나지 않는 땅, 사람의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는 땅, 그 사막에서 이끌어 주시던 야훼께서 어디 가셨을까? 하며 나를 찾는 자도 없었다.” (예레 2,6)
여기에서 ‘찾는 자도 없었다’가 바로 רꗫאָ(아마르) 동사인데 즉, 말하는 자도 없었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רꗫאָ(아마르)가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주제는 야훼의 구세 경륜 즉, 에집트에서 우리를 데려 내오신 야훼이다.
“사제라는 것들은 ‘야훼께서 어디에 계시느냐?’고 찾지도 않았다. 법 전문가라는 것들은 나의 뜻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백성의 목자라는 것들은 나를 거역하기만 하였다. 예언자라는 것들은 바알의 말이나 전하며 아무데도 쓸모 없는 것들만 따라 다녔다.”
(예레 2,8)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רꗫאָ(아마르)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부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2,20-37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⑵ 법적 논쟁의 대상
1. 2,20-37 단락의 단일성 안에서 법적인 논쟁이 나타난다. 이 법적인 논쟁의 대상은 태도 즉, 처신하는 것, 행동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2,1-19에서 고발의 주요 대상은 ‘처신’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2,20-37에서 고발의 주요 대상은 ‘말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제 2,20-37에는 말하는 것에 대한 법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 달리 말해, 이스라엘의 행동 자체에 대한 해석은 하느님에 의해서 부인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말이 자체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며, 또한 처신의 관점에서도 모순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23에는 ‘바알의 뒤를 쫒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2,25에서는 ‘외간 남자들이 좋아서 따라가겠다’는 자체 모순을 범하고 있다.
“그러다가는 신발이 해질라, 목이 다 탈라, 일러주었건만 한다는 소리가, ‘다 버린 몸 말리지 마셔요. 나는 외간 남자들이 좋아요. 외간 남자들을 따라 가겠어요.’ ” (예레 2,25)
이런 식으로 2,1-19를 2,20 이하와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2. 텍스트 분석 : 마소라 텍스트와 70인역의 비교
마소라 텍스트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여기에서 제기하지만, 해석상의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 가운데서, 예를 들면 텍스트의 양도 및 텍스트 전승, 언어 연구 등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 가운데서 좀더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2장 2-3절
Sir Lancelot C.L. Brenton은 The septuagint with Apocrypha : Greek and English (1982) 에서 2,1-3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의 젊은 시절의 친절과 너의 신부 시절의 사랑을 기억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따름에 있어서,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주님께 거룩한 백성이었고 그분의 소출 가운데 맏배였다. 그들(이스라엘)을 집어 삼킨 자들은 모두 죄를 범하게 되고 불행이 그들에게 떨어질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 부분의 마소라 텍스트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70인역은 이 부분을 상당히 달리 해석하고 있다.
⑴ 2,2 전반부
ꗗꖹꚓꗟוּלꗑ תꔨꕘאַ ꗗꖹꙝוּעꘁ דꘑꖒ ꗗꗚ יꚝꙣꗈꕾ
네 신부시절의 사랑을 너의 젊은날에 성실을 너에 대해서 나는 기억한다
’Εμνησθην ἐλεους νεοτητος σου, και ἀγαπης τελειὠσεος σου
나는 기억한다 자비를 젊은 시절의 너의 그리고 사랑을 마지막의 너의
1. 마소라 텍스트의 הꗢꗐ(‘젊은 신부’)가 70인역에서는 τελειὠσεος(‘마지막’)으로 번역되었다. 즉 הꗢꗐ가 הלכ 어근을 가진 ‘끝내다’, ‘끝마치다’ 동사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마소라 텍스트는 ‘젊은 시절’과 ‘신부 시절’을 비교하고 있지만 70인역은 ‘처음’(젊은시절)과 ‘마지막’을 연결하려 한다. 즉 ‘처음’ 부터 ‘마지막’까지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성실과 사랑을 말하고자 한다.
2. 그러나 70인역의 이와 같은 번역은 2,1-19의 context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2,7에서부터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처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성실,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는 대치되기 때문이다.
3. 일부 학자는 τελείωσις를 ‘완전’, ‘완벽함’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τελειοω(‘완전하게 하다’)의 명사형으로 본 후 이 단어가 풍자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대칭구조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한 것이 발견되지 않고 첫 부분의 성실에 대한 언급에 필적할 풍자적 표현도 나타나지 않기때문이다.
4. 아마도 70인역은 이상주의적 해석을 시도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즉 처음(‘구원역사의 처음 시기’)과 마지막(‘그들의 시기’)의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성실을 생각하여 ‘메시지가 전달되던 시기’(마지막)을 ‘창조의 첫 시기’(처음)과 대조시키려 한 것이다.
5. 이러한 이상주의적 해석은 70인역이 그 다음에 나타날 사막시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는 계기가 된다. 즉 2,2 후반부에서 70인역은 마소라 텍스트의 הꘝוּרꖅ אꗟ ץꙠꔟꔶ רꔯꕎꗴꔰ(‘씨뿌린 것이 없는 땅 그 광야에서’)에 대한 번역을 생략하는데 이는 이상주의적 해석의 결과이다(다음의 ⑵항 참조). 또 2,3 후반부에 대해 마소라 텍스트는 과거를 지속하는 것으로 해석하나 70인역은 이를 미래로 번역하고 있다(다음의 ⑷항 참조). 이러한 번역의 차이는 70인역의 이상주의적인 해석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⑵ 2,2 후반부
הꘝוּרꖅ אꗟ ץꙠꔟꔶ רꔯꕎꗴꔰ יꙝꖖאַ ꗗꚞꗎꗞ
씨뿌린 것이 없는 땅에서 그 광야에서 나의 뒤를 네가 따르는 것
τού ἐξακολουθήσαί σε
따르는데 있어서 당신을
70인역은 마소라 텍스트의 הꘝוּרꖅ אꗟ ץꙠꔟꔶ רꔯꕎꗴꔰ 부분을 생략하였다. 그 이유는 사막(광야)를 성실의 장소가 아니라 이의 제기, 불평 등 반역의 장소로 소개하는 모세 오경과 예레미야서를 일치시키려는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70인역이 번역될 당시 번역자들이 전해받은 모세오경은 사막이 성실의 장소가 아니라 반역의 장소로 강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 사막을 반역의 장소로 보았기 때문에 70인역에서 생략한 것 같다.
⑶ 2,3 전반부
הꚘאָוּבꚢ תיꚄאꙟ הוהיꗛ לꔞꙜꙺꖹ שׁꕋꙑ
소출 가운데 맏물,맏배 주님께 이스라엘은 거룩하게 구별된
Τώ ἁγίω ’Ισραήλ λέγει Κύριος ἁγιος ’Ισραήλ τῷ Κυρίῷ ἀρχὴ γενημάτων αὐτού
거룩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거룩한 이스라엘은 주님께 맏배이다 소출 가운데서 그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