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9 주석 6

 

⑥ 소결론




2,1-19에 나타난 이 계약 형식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을 것이다.






ㄱ. 관계의 구조 안에 있는 이스라엘과 야훼




1.  계약 형태에 대한 분석은 관계의 구조 안에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과 하느님과의 관계, 이스라엘과 다른 백성과의 관계, 이스라엘과 과거와의 관계, 이스라엘과 미래와의 관계 등, 관계 구조 안에 있는 이스라엘을 이해하는데 이 계약 형태에 대한 분석은 도움을 주고 있다.




2.  이 사실은 이스라엘에 뿐만 아니라 야훼께도 적용된다. 성서 계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를 지니신 분으로 하느님을 소개하고 있다. 하느님의 본질은 인간과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시려는 분이라는 것이다. 성서 계시는 바로 이러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3.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자신을 깨닫게 하실 수 있으신데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맺으심으로 가능해진다(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떠나서 하느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측에서의 계약의 위반과 파기는 하느님의 계시 자체를 우롱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기서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려는, 다시 찾으시려는 야훼의 의지로서의 ביꙞ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ㄴ. 계약 파기의 이유 : 우둔함




1.  그런데 2,1-19에서 이스라엘이 야훼와의 계약 관계를 파기하도록 유도한 이유가 무엇인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2,4-5을 보면,




“야곱 가문, 이스라엘 가문 온 갈래는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나 야훼가 말한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너희 조상은 나를 멀리하였더냐? 너희 조상은 허수아비를 따르다가 허수아비가 되지 않았더냐?”    (예레 2,4-5)




여기보면 왜 야훼를 버렸는지, 왜 관계를 파기해 버렸는지 그것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2.  2,1-19에서 그 이유는 이스라엘 측의 유별난 행동과 비상식적인, 우둔한 행동인 것 처럼 소개되고 있다(2,10과 2,13).




“지중해의 섬나라들에 건너가 보아라. 케달에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아라.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를”   (예레 2,10)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는 웅덩이를 팠다.”   (예레 2,13)




3.  그러나 이스라엘 측에서 이렇게 우둔한 처신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물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계통의 대답은 계약 형태와 관련된 대답이다. 계약 계통의 대답은 2,7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이 기름진 땅에 이끌어 들여 그 좋은 과일을 먹게 했는데…”   (예레 2,7)




4.  계약은 계약의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를 하나의 거주할 수 있는 영역, 따라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영역으로 이끌어 들인다는 사실을 통해서 성립되고 있다(땅의 선물과 먹는 것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는 여호수아기 24,13; 신명기 6,11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상대방을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영역으로 이끌어 낸다는 사실, 이것이 계약 안에서 강조된다고 볼 수 있겠다.




5.  이 사실은 군주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체결된, 옛 계약들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야훼로부터 이 모든 것을 받았다. 따라서 환희와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6.  그러나 우리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에서는 이스라엘이 야훼께 헌납한 것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영주에 대해서, 군주에 대해서 봉신들은 은혜를 입었을 경우 조공이라든가 곡물을 바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렇게 특전을 받고 나서도 어떠한 처신도 하지 않았다.




7.  계약은 계약 당사자들 사이의 상호이익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부과된 세금을 면제해 주셨기 때문에 자신의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는 텍스트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땅에 들어갔을 때 그분을 멀리하였음을 천명하고 있다. 선물을 받고 선물을 주신 분을 거부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8.  이스라엘의 범죄의 역동성을 오히려 다음의 의미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선물 그 자체이다.  선물이라는 의미에서 바로 문제가 일어난 것 같다.  확대 해석 한다면 노력해서 쟁취했다면 덜 타락했을 터인데 거저 주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악(הꘝꙝ 라아)은 하느님의 선(בוּט )의 역동성과 반대되는 어리석음으로 드러나고 있다. 




9.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은 환상들 즉, לꔫꕛ(헤벨)을 쫓았다. 생명수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구멍이 뚫린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생명수의 우물을 수용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구멍이 뚫린 물 저장 창고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10.  이스라엘은, 자유는 그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잘못을 저지른다. 독립을 의미하는 בזע(아잡) 즉, 독립을 위해 하느님을 버린다는 בזע(아잡), 상호간의 관계와 선물이 없는 이 독립 의지는 우상 숭배로 표출되었고 이러한 우상 숭배와 독립 의지 안에서 어리석은 이스라엘과 인간의 죄악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힢일 형태로 표현된 하느님을 떠나서 스스로 독립하려는, 독자적으로 하려는 인간의 우둔함. 여기에 바로 사람의 죄와 타락이 자리잡고 있다.






2) 신부의 모습




2,1-19의 단락 앞부분에서 백성은 ‘젊은 신부’라는 은유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ꗗꖹꙝוּעꘁ(너우라잌: ‘너의 젊은 시절’)과 ꗗꖹꚓꗟוּלꗖ(컬룰로타잌: ‘너의 신부 시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가서 예루살렘이 듣도록 외쳐라. 주 내가 이렇게 말한다. 네 젊은 시절의 충절과 신부로서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  


                                                            (예레 2,2 : 정태현 시역)




여기서 젊은 시절이라는 초상이 막연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에서 전해지는 역사적인 전승과 법적인 전승의 조명 아래에서 이 은유가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깊이 고찰해야 할 것이다.






⑴ 의미론적 분석




우선 부부라는 관계의 개념 안에 포함된 것 중에서 이 단락이 지니고 있는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요소들은 예레 2,1-19의 단락과 예레 2,1-4,4 전체 단락에 개념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그 요소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① 상호 합의에 기초를 둔 상호 귀속




첫 번째로, 상호 동의와 합의에 기초를 둔 상호 귀속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려 깊은 모든 계약은 부부 계약과 같은 조건들로 표현되고 있다. 상호 합의와 상호 귀속이라는 두 개의 틀 안에서 דꘑꖒ(헤섿: ‘자비’, ‘성실’, ‘사랑’)과 הꔧꕟאַ(아하바: ‘사랑’)의 개념이 언어 유희되고 있다. 상호 합의는 상대방이 결혼을 결정할 때 성숙하고 자의식이 있으며 자유롭게 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민법상으로도 그렇고 국제 관례상으로도 그렇고, 결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적령기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부부 관계의 배타성




1.  두 번째로, 부부 관계의 배타성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부부들의 상호 귀속은 배타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육체를 상대방에게 선사하는 것 안에서 특권적으로 표출된다(부부 관계는 배우자 외에는 절대로 허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이건 상식이다). 사실 이런 관계의 배타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부 관계의 본성에 위배되는 간음이라든가 간통을 하게 된다.




2.  여기서 윤리적인 사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의미의 곡해도 문제가 되고 있다. 만일 부부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게 되어 한 쪽의 삶이 다른 쪽의 삶이 되었다면, 한 쪽의 태도는 반드시 상대방을 문제삼게 된다.




3.  예를 들면 아내에 의해 저질러지는 간음은 여인의 타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를 정신적으로 피폐시킨다. 아내의 잘못은 남편의 직함과 칭호, 그의 품위, 그리고 그의 실존이 담긴 본성 자체를 잃게 한다. 불성실한 아내가 받게 되는 멸시와 냉소는 이제 그의 남편에게도 똑같이 떨어지게 된다.






③ 남편의 권위적인 역할




1.  세 번째로, 동의에 의해 설정된 두 부부간의 관계에서 남편의 권위적인 역할이 예상된다. 머리인 남편(가톨릭 교회에서는, 특히 바오로 서간에 보면 남편을 머리로 표현하고 있다)은 아내가 걸어야 할 길, 아내가 따라야 할 길을 결정하고 그의 재산목록이라고 보이는 아내, 그 당시 특수 재산이라고 보이는 아내의 주인이기도 하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말라” = “남의 재산목록 1호를 탐내지 말라”)




2.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남편은 부인의 לꘞꔰ(바알: ‘주인’)이 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남편은 부인을 보호하고, 방어하며, 부인을 도와 양육할 의무 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 남편을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며 두려워 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3.  이런 자격들과 의무들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 부분을 형성하고 있고 동시에 부부 각각의 고유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도 한다(사랑의 표현은 공통 부분이지만 각자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역할, 이것은 각각 자신이 해야 할 몫이다).






④ 자녀에 대한 공동 출산 관계




1.  네 번째로, 자녀에 대한 공동 출산 관계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은 출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중 기원을 갖게 된다. (자녀가 부부 두 사람 모두에게 속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하면 바로 이중 기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녀가 부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쪽만 속해 있을 때 이 자녀는 사생아라고 불리운다. 또는 노예라고도 불리울 수 있다. 사생아는 주로 아버지가 없는 자식을 일컫는 것으로써 (잘 알고 있듯이) 호적에 등록될 수 없다. 또 노예도 역시 한 가정의 호적에 등록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한쪽이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가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에 호적에 등록될 수 없다. 하갈과 사라의 관계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3.  이렇게 자녀는 출생하는 그 순간에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중 기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부는 자녀에 대한 공동 출산에 관여하고 그러한 의무를 갖게 된다.






⑤ 법적인 요소




1.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혼은 애정이 흘러 넘치는 풍만한 현실만은 아니다. 결혼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 혹은 결혼 계약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법적인 행동, 예를 들면 이혼을 원하지 않는 두 사람의 삶 안에서 그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 안에 설정되어 있는 하나의 제도요 조직이다.




2.  이처럼 결혼 계약은 본질적으로 영원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이 지속하는 한 이러한 계약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혼과 같은 극적인 행동과 그에 따른 재혼은 부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법적으로 주어진 결혼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결혼의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⑵ 부부 관계에 대한 은유의 기원과 역할




① 부부 관계에 대한 은유의 기원




ㄱ. 호세아서




1.   성서 주석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 부부 관계의 상징은 문학 유형상 처음으로 호세아서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호세아서 1-3장에서 부부 관계에 대한 상징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호세아는 매음녀, 창녀와 결혼한 미혼자이다. 그 여인이 거리에서 몸팔고 있는 여인이었는지,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던 그러한 계통의 여인이었는지, 그 여인이 결혼하기 전에 벌써 그러한 일에 빠졌는지, 아니면 결혼하고 나서 그러한 여인으로 타락했는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지 않다. 단지 호세아와 고멜이라는 이 여인과의 결혼은 야훼와 백성의 관계를 이해하는 근본 원천으로 제시되고 있고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예언적 표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3.   호세아를 이해하는데 관건이 되는 단어는 תꘞꕐ(다아트: ‘앎’)이다. 즉 םיꕙꗟꔤ תꘞꕐ(다아트 엘로힘: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서에서 ‘안다는 것’은 고통 체험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를 가깝고 친밀한 가운데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가다 부부 관계를 안다는 것으로 표현할 경우도 있다. 이는 가까운 곳에서 은밀한 것까지 치밀하게 체험하는 것을 전제한다.)




4.   자신의 궁극적인 체험을 통해서 호세아는 부당하게 모욕을 받으셨지만 화내지 않으시는 이스라엘의 남편인 야훼의 고뇌를 알게 되었다. 호세아의 뼈저린 체험, 이것은 바로 야훼께서 이스라엘과 고뇌 속에서 겪으신 체험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훼의 진노가 바로 자비의 한 부분이고, 그 진노의 목적은 구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5.   여하튼 호세아서 1-3장은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 관계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부부 관계로 표현된 이 상징은 신약성서에까지 전통적인 표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호세아서부터 신약성서에 이르기 전, 우리는 또한 예레미야에게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다. 잠시 후에 살펴볼 것이다.






ㄴ. 에제키엘서




그리고 에제키엘서 16장과 23장에서도 똑같은 사실이 발견된다. 에제키엘서 16장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신부에 대한 신랑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에제키엘서 23장에서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두 음녀, 오홀라오홀리바의 이야기를 부부 관계와 연결시켜 표현하고 있다.






ㄷ. 이사야서




제2이사야서, 제3이사야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사야서 54,5-6과 62,4-5에서 부부 관계에 대한 표현을 볼 수 있다.




“너를 만드신 분이 너의 남편,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의 구원자, 그분께서는 온 땅에 하느님이라 불리신다.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이 괴로운 아내인양, 티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양 다시 너를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사 54,5-6 : 정태현 시역)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하여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하여 기뻐하시리라.”   (이사 62,4-5 : 정태현 시역)






ㄹ. 아가서와 시편




문학 유형상 중요한 텍스트들 안에서 나타나는 것 외에 이 상징은 또한 아가서 전체에 잔잔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시편 45장에도 역시 이러한 부부 관계의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아름다운 말이 제 마음에 넘쳐 흘러 임금님께 제 노래를 읊어 드리나이다. 제 혀는 능숙한 서기의 붓이옵니다. 당신께서는 어떤 사람보다 수려하시며 당신의 입술은 우아함을 머금어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영원히 강복하셨나이다.”   (시편 45,1-2 : 정태현 시역)






ㅁ. 가나안 종교(바알이즘)




1.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호세아가 가나안 종교로부터 이 은유를 차용하여 이용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땅의 풍요와 계절의 변화 등을 통하여 농업을 관장하는 신인 바알의 제 1차적인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2.  무엇보다도 Ras-Shamra가 발견된 이후 많은 학자들은 가나안의 종교에 대하여 그리고 가나안의 종교들이 야훼이즘과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에 대한 논문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F.M.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Essays in History, the Religion of Israel,                   Cambridge (Massachussetts), 1973.


  J.C.L., Gibson, Canaanite Myth and Legends, Edinburgh, 1977.




3.  야훼의 종교가, 처음에는 낯설었던 많은 요소들을 바알 종교로부터 차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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