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9 주석 8

 

유사한 발음으로서의 바알




1. 이제 바알에 대한 의미론적 가치에 ‘바알’(לꘞꔰ)이란 이름 자체가 지니고 있는 paronomasia 현상을 연결시켜 보자. 예레 2,1-19에서는 두운(頭韻) 현상과 paronomasia 현상이 문체론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강의록 17쪽 참조). 예레미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판하는 표현으로써 ‘바알’(לꘞꔰ)이란 발음에서 이끌어낸 언어 유희 현상이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2.   구약 성서 안에서 언어의 유희는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할 수 있다.




A. Strus, Nomen-Omen, Stylistique des noms propres dans le Pentateuque, AnBib1) 80,                 Rome, 1978.


J.J. Gluck, Paronomasia in Biblical literature, in Semitics 1 (1970), 50-78pp


3.   paronomasia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한 단어에서 순수한 의미를 연역할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된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발음에서 야기되는 paronomasia는 넓은 의미에서 풍자적 격언들, 정치적 선전 광고에서 광고업자의 슬로건 등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통교 영역 안에서 이용되는 하나의 기술이다. 그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영어     : I like Ike 


   라틴어   : veni, vidi, vici 


   이태리어 : traduttore(번역자) ↔ traditore(반역자)   




4.   예레미야는 이러한 paronomasia 현상을 바알(לꘞꔰ)과 관련시켜 지혜 문학적, 교육적 의도로, 동시에 조소, 풍자적인 의도로 사용한다.




㉠ לꘞꔰ(바알) ↔ לꔫꕛ(헤벨)




2,1-19에서 바알이 명백하게 언급되고 있다(לꘞꔰꔨ). 그러나 달리 발음한 바알의 이름은 2,5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서 바알은 남편, 주인, 풍산의 신이 아니라 לꔫꕛ(헤벨) 즉, ‘無’,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לꔫꕛꕘ  יꙟꖖאַ  וּכꗡꗂꕰ


   아무것도 아닌 것의    뒤를    쫓아다녔다 




㉡ לꘞꔰ(바알) ↔ לꕳꘝ(아웰)




2,5에서 바알은 동시에 לꕳꘝ(아웰: ‘사악한 것’, ‘거짓’)의 발음과도 유사함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바알에게 לꕳꘝ(아웰)이 거의 적용되는 것처럼 “선조들은 야훼를 불의한 분으로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לꕳꘝ   יꔱ   םꗋיꚖוֹבꔣ   וּאꙃꗲ


      거짓을  내안에서  너희의 선조들은    발견하였느냐?




㉢ לꘞꔰ(바알) ↔ לעי(야알)




1.  2,8에서 바알 이름은 וּלꘟוֹי אꗟ(로 요일루: ‘그들은 유익하지 않다’ 즉 ‘무익하다’)와 대칭을 이룬다〔וּלꘟוֹי(요일루)는 לעי(야알)의 히필형으로써 ‘유익하다’는 뜻이다〕. 이 발음은 바알을 무익한 것으로 풍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2.  2,11에서는 ליꘟוֹי אוֹלꔶ(벌로 요일: ‘왜냐하면 그는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이 바알을 풍자하고 조소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 לꘞꔰ(바알) ↔ וּלꗉꖷ אꗟ(로 야킬루)




바알을 풍자하는 표현이 2,13에 וּלꗉꖷ אꗟ(로 야킬루: ‘그들은 …할 수 없다’)와 다시 연결되고 있다. 바알을 물(생명)을 주는 신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물(생명)을 보관하지도 못하는 존재로 표현함으로써 다시 바알의 무익성을 드러낸다.




㉤ לꘞꔰ(바알) ↔ תꚆבּ(보셑)




1.   2,20에서 출발하는, 이어지는 부분은 바알이 항상 주인공으로 나타나지만 תꚆבּ(보셑: ‘수치’)과 함께 지칭된다. 즉, 바알을 멸시하기 위해 לꘞꔰ(바알)이 תꚆבּ(보셑)과 함께 지칭된다. לꘞꔰ(바알)과 תꚆבּ(보셑)은 그 첫 글자인 ‘ב’(베트)의 두운 현상으로 서로 연결된 듯하다.




2.   이 사실은 예레 2,24에서 입증된다. 또 예레 11,13에서 이 상황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호세아 9,10 역시 לꘞꔰ(바알)과 תꚆבּ(보셑)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유다야, 너희 신들이 너희의 성읍만큼이나 많고 너희의 우상(수치)을 위해 세운 제단, 곧 바알에게 향을 피워 올리기 위해서 세운 제단이 예루살렘의 골목만큼이나 많구나!”


                                                          (예레 11,13 : 정태현 시역)




3.   또한 사무엘 하권에 보면 고유 명사(사람 이름)가 역대기에 나오는 것과 다르게 나타난다. 즉 לꘞꔰ(바알)이 תꚆבּ(보셑)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לꘞꔯ ביꙞꗱ                 →    תꚆꔬיꘫꗱ


   (므리바알 : 1역대 8,34; 9,40)         (므비보셑 : 2사무 4,4)




      לꘞꔯꚉꔟ                  →    תꚆבּ שׁיאּ


     (에스바알 : 1역대 8,33; 9,39)       (이스보셑 : 2사무 2,8)




      לꘞꔰꙢꖾ                   →     תꚆꔳꙢꖾ


    (여룹바알 : 판관 9,1)               (여룹베셑 : 2사무 11,21)




4.   이제 ‘헛됨’이 쓸데없는 것, 의미 없는 것이 되는 것처럼(2,5) 어느 누군가가 수치를 당한 것처럼 그들도 수치를 당할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 어근 שׁוֹבּ(보스)는 이스라엘이 바알 때문에 야훼를 버린 후에 그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다(예레 2,26; 2,36; 3,24-25 참조).




5.   더구나 이 어근 שׁוֹבּ(보스: ‘수치심을 느끼다’)는 בוּשׁ(숩; ‘돌아가다’, ‘회심하다’)의 의미를 부과한다(שׁוֹבּ→בוּשׁ : 자음 도치 현상).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바알이고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실이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자음의 도치로써 수치로부터 탈출하여 축복과 영광에 다시 이르기 위하여,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총체적인 변화와 회심을 암시하고 있다. 즉 망신당한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주님의 말씀인 것이다(예레 3,12; 3,19; 3,22; 4,1 참조).






⑷ 부부 관계로 비유한 은유의 결론




① 은유의 의미




1.  부부 관계로 비유한 이 은유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 관계는 부부가 살아 있는 동안 서로간에 무한정 지속되는 의무가 있음을 상호 동의하고 법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관계는 살아 있는 동안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이다.






2.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삶에 바알이 침입하여 이스라엘이 배신하여 불성실하게 되고 간음과 매음을 하게 되었다(원인으로서의 바알). 에제키엘서 16장에서처럼 이 사실이 우리가 다루는 텍스트에서 보다 중요한 메시지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비열함, 죄악 안에서 새로이 도약하게 하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이기도 하다.






② 범죄의 이유




두 번째로 범죄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은유가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면 그 죄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며 이스라엘을 불성실하고 죄악에 빠지게 만든 사기와 원흉의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ㄱ. 거저 주어진 선물 (2,7)




1.   2,7 이하에서 계약의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에게 거저 주어진 선물(즉 ‘땅’)은 이스라엘에게 벅찬 선물이었다. 즉 이스라엘이 비옥한 땅을 쟁취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거저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2.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바치는 형식적 존경과 칭호를 받아들이셨으나 이스라엘은 역설적으로 계약의 파트너인 그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였고 이를 통해 죄를 범하였다.






ㄴ. 다수성 (2,13)




1.   부부 관계의 측면에서 2,13을 회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은 “고인 물을 찾아 나서기 위하여 생명의 샘인 나를 버렸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paronomasia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내용이다. 즉 바알은 물(생명)을 주는 신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물(생명)을 보관하지도 못하는 무익한 존재로 조소하기 위해 paronomasia 현상을 사용했다. 이스라엘은 생명의 물이 아니라 그 고인 썩은 물을 찾아서 방황함으로써 야훼를 버렸다.




2.   ‘원천’, ‘정체되지 않는 깊은 물을 담고 있는 우물’의 의미로서의 ‘샘’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상대방을 지칭하는, 지혜 문학 전승에서 잘 알려진 상징이다(아가, 특히 잠언 5,15-19 참조). 샘은 해를 끼치지 않고 사랑의 갈증을 풀어 주고 무한한 풍요로움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네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네 샘에서 솟는 물을 마셔라. 네 우물물이 바깥으로 흘러버리고 도랑물이 거리로 흘러서야 되겠느냐. 이는 너에게만 속해야 하고 네 곁의 낯선 자들에게 속해서는 안되느니라. 네 샘터는 복을 받을 지며 너는 젊은 시절의 아내로 즐거워할지어다. 그는 너의 사랑스런 암사슴, 우아한 영양. 그의 가슴은 언제나 너를 흡족케하고 너는 항상 그 사랑에 흠뻑 취할지어다.”    (5,15-19 : 임승필 번역)




3.   예레 2,13에 ‘고여 있는 썩은 우물’(תוֹרꔠבּ 보로트 : 복수)과 ‘샘’(רוֹקꗪ 마코르 : 단수)이 대치되고 있다. 즉 다수성 때문에 단수, 즉 ‘하나인 샘’을 버렸다.






4.   다수성은 우리가 다루는 텍스트에서는 이스라엘의 불충실성을 규정하기 위해서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수성과 관련된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8             וּלꘟוֹי אꗟ


                          (바알들은) 가치가 없다


          2,23              םיꗜꘝꔶ


                                         바알들


          2,24    .        ꕗיꚆꙓꔨꗱ


                         암컷을 쫓아다니는 것들


      2,25; 3,13                 םיꙞꕾ


                             낯선 이들, 이방신들


          2,28              ꗘיꕛꗟꔤ


                                      너의 신들


          3,1         םיꔱꙝ  םיꘟꙟ


                               많은     정부들


          4,1              ꗘיꙀוּקּꚄ 


                               너의 역겨운 것들


  


5.   사실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면 상호간의 배타적인 내어 줌에서 유래하는 좋은 것들(예를 들면 편안함, 만족감, 집, 자녀 등등)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부부 관계에서 야기되는 이런 좋은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확신하기 위해서 본래의 좋은 것, 즉 샘으로 표상된 하느님 자체를 그들은 다시 찾고 갈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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