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 소결론
1. 이상의 것을 야훼와의 관계 안에서 이스라엘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체험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은 쉽게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벅찬 환경 즉, 사막에서 살던 민족이다.
2. 가나안에 들어서자 그들은 갑자기 기적에 가까운 땅의 풍요로움을 만난다. 동시에 거대한 가나안의 도읍들의 사회적이고 군사적이며 정치적인 조직과 제도들을 만난다. 또한 바알이즘으로 각인된 문화를 발견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3. 이런 경이에 가까운 이 풍요로움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러한 삶의 양식들과 통교하고픈 갈망을 갖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종교와 삶의 풍요와 기쁨을 누리기 위해 안정된 조건들을 애써 창조하려고 노력하여, 이제 도에 넘치게 된다. 풍요롭게 살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이스라엘은 앞에서 언급한 기만적인 삶을 점진적으로 시도하게 된다.
4. 이러한 삶의 열망은 그들로 하여금 헛수고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생명, 즉 생명 자체를 지탱시켜 주는 원천인 삶의 원천을 저버리도록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생명을 찾아 얻기 위해서 ‘참 생명’을 잃어버리는 누를 범하게 된다.
3) 부성(父性) 관계
⑴ 부성 관계를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현상들
① 첫 번째 방향 : 2,3과 2,14
2,1-19에서는 두 가지 방향에서 부성과 관련된 테마가 나타난다. 첫 번째 방향은 2,3과 2,14에서 발견되고 있다.
ㄱ. 2,13 : תיꚄאꙟ(레쉬트)
1. 2,13의 תיꚄאꙟ(레쉬트: ‘맏물’, ‘맏배’)는 땅의 첫 소출들을 하느님께 봉헌하던 농경 형태의 문명 및 문화와 관련되고 있다. 그런데 농경 문화와는 달리 이 텍스트에서는 תיꚄאꙟ(레쉬트)라는 개념을 이스라엘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이 단어는 여기서 이스라엘을 야훼 하느님의 맏배로 암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 나에게 성별된 내 추수의 맏물이었다. 그를 삼키는 자들은 누구나 벌을 받아 그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주 나의 말이다” (예레 2,3)
הꚘאָוּבꚢ תיꚄאꙟ
그의 소출 가운데 맏물, 맏배
2. 맏배, 맏물이 정확하게 תיꚄאꙟ(레쉬트)로 언급되고 있는 구약성서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통하여 이러한 해석을 확인할 수 있다.
㉠ 우선 창세기 49,3에 르우벤을 יꗼוֹא תיꚄאꙟꕵ(레쉬트 오니: ‘나의 정력의 맏배’)로 본다.
יꗼוֹא תיꚄאꙟꕵ יꖐꗔ הꚛאַ יꙞꗌꔶ ןꔪוּאꙣ
나의 정력의 맏배 나의 힘 너는 나의 맏아들 르우벤
㉡ 신명기 21,17에서는 וֹנꔠ תיꚄאꙟ(레쉬트 오노: ‘그의 정력의 맏배’)라는 표현이 나온다.
“미움 받는 아내의 아들을 맏아들로 인정해 주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그에게 두 몫을 주어야 한다. 그 아들이 자기의 정력에서 난 첫 소생이기 때문에 맏아들의 권리는 그에게 있는 것이다.” (신명 21,17)
㉢ 시편 78,51에서 맏배들은 םיꗼוֹא תיꚄאꙟ(레쉬트 오님: ‘그들 정력의 맏배’)라고 표현된다.
“에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함의 천막 속, 저들 정력의 첫 소생을 치셨도다.”
(시편 78,51 : 임승필 번역)
㉣ 시편 105,36에서 역시 맏배들은 םꗺוֹא־לꗇꗡ תיꚄאꙟ(레쉬트 러칼오남)으로 표현된다.
“저들 땅 안의 모든 맏아들을 저들 모든 정력의 첫 소생을 치셨도다.”
(시편 105,36 : 임승필 번역)
3. 이처럼 야훼께는 어울리지 않는, ‘그들 정력의 첫 열매(맏배)’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예레 2,3에서는 이 표현 대신에 הꚘאָוּבꚢ תיꚄאꙟ(레쉬트 터부아토)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즉 여기서는 하느님의 정력이 아니라 하느님이 뿌리신 바를 거두신다는 측면에서 농산물의 맏배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예레 2,21; 이사 1,2; 1,4 참조).
“특종 포도나무를 진종으로 골라 심었는데 너는 품질이 나쁜 잡종으로 변하였구나.”
(예레 2,21)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이사 1,2)
“아! 탈선한 민족, 불의로 가득찬 백성, 사악한 종자, 부패한 자식들, 야훼를 떠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기고 그를 배반하여 돌아섰구나” (이사 1,4)
4. 한편 우리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는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로 규정된 출애굽 전승을 암시하고 있다. 에집트인들의 맏배들은 바로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이 특별한 관계(父子 관계)를 알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죽었다.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출애 4,22)
לꔞꗚꙺꖹ ירꗌꔶ יꗼꔶ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5. 결국 이스라엘을 맏배로 보는 테마는 예레 2-3장에서 여러 차례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점에 있어서 예레 31장과 (개념상으로, 그리고 수취인을 살펴볼 때, 또 메시지를 살펴볼 때) 잘 연결되고 있고, 이러한 테마가 31장에서 다시 채택되고 있다.
㉠ 예레 31,7에서 야곱은 םיוֹגּꕘ שׁאꙡ(로쉬 하꼬임) 즉 ‘그 백성들(민족들) 가운데 으뜸(첫아들)’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환성을 올려 야곱을 맞이하여라. ‘야훼께서 당신 백성을 구해 주셨네.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구해 주셨네.’ 종주산 위에서 이렇게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예레 31,7)
㉡ 또 예레 31,20에서 이스라엘은 아버지로부터 특별하게 사랑을 받는 아들, 아버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아들로 표현되고 있다.
םיꘟꚈ꘥ꚃ דꗞꖻ םאּ םꖹꙝꔟ יꗜ ריꙗꖸ ןꔪꕟ
기쁨의 아이가 아니냐? 혹은 에프라임은 나에게 사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냐?
㉢ 무엇보다도 예레 31,9의 텍스트가 중요하다. 야훼께서 맏배인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소개되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프라임은 나의 큰아들이다.” (예레 31,9)
אוּה יꙞꗌꔶ םꖹꙝꔟꕵ באָꗡ לꔞꙜꙺꖹꗡ יꚕיꖹꕗ יꗑ
그는 나의 맏아들이다 에프라임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나는 …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2,3에서는 부성(父性)에 관련된 테마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ㄴ. 2,14 : תꖹꔰ דיꗜꖾ(열리드 바잍)
1. 2,14의 תꖹꔰ דיꗜꖾ(열리드 바잍)은 직역하면 ‘집의 종’인데 정태현 신부님은 ‘태생 종’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단어는 빚에 의해서 즉 채무 혹은 전쟁 포로로 잡혀 왔기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과는 다른 노예의 등급을 말한다. 즉 이 단어는 전쟁이나 채무에 의한 것이 아닌 노예로 태어나는 아들, 태어나면서 노예인 그러한 어린이를 지적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이스라엘이 노예이더냐? 그가 태생 종이더냐? 그런데 어찌하여 그가 약탈 대상이 되었단 말이냐?” (예레 2,14 : 정태현 시역)
2.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적용된 표현은 이스라엘이 노예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상 노예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노예로 자처하는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
3. 여기서 비록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없다 하더라도 백성의 성격을 정의하는 출생, 기원과 분명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야훼라는 표현은 안 나오지만 분명히 ‘이스라엘이 태생 종이었더냐?’ 라는 반어법을 쓰면서 이스라엘의 출생과 관련된 표현을 하고 있다.
이렇게 2,3과 2,14 사이에서 이 텍스트는 거대한 아치(arch)를 형성하고 있다. 2,3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기원을 둔 출생이 확인되는 반면, 2,14에서는 이스라엘이 어떤 종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생각하는지, 경악과 함께 반문하고 있다. 2,1-19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출생과 기원에 관한 테마에 의해서 하나의 거대한 아치(arch)를 형성하고 있다.
② 두 번째 방향 : 2,5과 2,9
1. 두 번째로 부성(父性)에 관한 테마가 비교되어 나타나는 곳은 2,5과 2,9이다. 여기서는 아버지이신 야훼와 아들인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종족 내면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버지들과 아들들 사이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2,5와 2,9에서 언급되고 있다.
“주 내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 조상(너희 아버지들)이 내게서 무슨 허물을 찾아냈길래 나에게서 멀어져 헛된 것을 따라다니다 그들 자신도 허무하게 되었더란 말이냐?” (예레 2,5)
2,5 םꗋיꚖוֹבꔣ
너희의 아버지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다시 너희에게 소송을 걸고 너희 자손의 자손들에게 소송을 걸겠다. 주 나의 말이다.” (예레 2,9)
2,9 ביꙞאָ םꗋיꗽꔮ יꗽꔶ־תꔟ…..
나는 소송걸겠다 너희의 아들들의 아들들을
2. 2,5은 이스라엘의 과거, 이스라엘의 가견적인 역사적 기원과 관련되고 있다. 아버지들은 믿음의 조상으로서가 아니라, 범죄의 시조라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선조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신명기 전승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신명기 전승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조상들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2,5에서는 오히려 ‘범죄의 시조로서의’ 조상들이다.
3. 2,5이 과거조상과 결부되어 있다면 2,9은 넓은 의미에서의 미래세대와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2,5의 ‘아버지들’, ‘선조들’과 2,9의 ‘너희 아들들의 아들들’은 충분한 대칭 관계에 있게 된다.
4. 소송은 후손들과 그 후손들의 아들들의 아들들을 향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잘못과 죄는 이어지는 세대에 계승되어 문책을 받을 것이다. 야훼께서는 선조들이 범한 잘못들의 탓을 아들들에게 요구하신다. 선조들의 잘못을 아들들에게 요구하신다는 십계명(출애 20,5; 신명 5,9)의 선상에서 볼 때 이 부분은 부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 까지 갚는다.” (출애 20,5; 신명 5,9)
(※출애굽의 십계명이 전례적 십계명과 연결되어 위와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면 신명기의 십계명은 사회적 측면에서 십계명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5. 2,1-19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대에 관한 테마는 2,1-4,4 전체부분으로 확장되고 유포되고 있다. 무엇보다 3장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야훼의 부성에 관한 테마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이제 2장과 3장에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는 바를 살펴보자.
2,27 (나무들에 대해) הꚛאַ יꔩאָ
당신은 나의 아버지
(돌들에 대해) יּנꚛꕎꗜꖾ ꚢאַ
당신은 우리를 낳아 주셨습니다
2,30 ר꘍וּמ םꗋיꗽꔶ־תꔟ יꚕיꗒꕙ אꕵꚂꗛ
너희의 자녀들을 나는 때렸다 헛되이
(⇒여기서 ר꘍וּמ(무사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교정’의 의미가 있다. 즉 아버
지가 교정하는 의미로 때렸지만 결국은 너희를 헛되게 때렸다는 의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