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성의 의미론에 입각해서 본 4,5-18
이제 이러한 도시의 의미론에 입각해서 4,5-18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예레 4-6장에서 뿐만아니라 예레미야서 전체 안에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관련해서, “예루살렘은 결코 평화의 도시, 완전한 도시가 아니다”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예언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6,13-14; 8,10-12).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두 남을 뜯어먹는 놈들, 예언자 사제 할 것 없이 모두 사기나 치는 것들, 내 백성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 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는구나. 사실은 괜찮은 것이 아닌데.” (예레 6,13-14)
“나 이제 그들의 여인을 빼앗아 남에게 주고 남이 들어와 밭까지 차지하게 하리라. 위 아래 할 것 없이 남을 뜯어먹는 것들, 예언자 사제 할 것 없이 속임수밖에 모르는 것들, 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건성으로 치료해 주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어디가 괜찮으냐! 그렇듯이 역겨운 짓을 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얼굴에 쇠가죽을 쓴 것들, 창피한 줄이나 알면 괜찮지! 모두들 무더기로 쓰러져 죽으리라. 내가 혼내주러 오는 날 모두들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예레 8,10-12)
2. 그러므로 이미 예레 1,13-16에서 시작해서 점진적이고 늘 근본적으로 그의 메시지는 발전되어 왔다. 예레미야의 이 발전된 예언적 메시지는 도시의 파멸과 종말을 예고하고 선포하고 있다(예레 52장 참조). 이는 하나의 예레미야서의 결론으로 주어지는데 비극적인 결말을 전하고 있다.
3. 아마도 예레미야는 ריꘟ(이르:‘도시’)를 עꙝ(라아: ‘악’)으로 바꾸어 예루살렘의 이름을 해석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ריꘟ→עꙝ : 자음 도치).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악행을 일삼는 도시이다. 주석적인 면에서 볼 때 예고된 파멸은 도시를 도시로 정의하게끔 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맞게 채색되고 있음을 주시할 수 있다.
4. 이제 예루살렘 도시는 그 도시가 지닌 경제적이고 법적이며 정치적인 특징을 완전히 상실할 때까지 파멸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예레 4,15-18의 단락을 유념하면서 이점에 관해 짧게 요약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⑴ 경제적인 영역
우선 앞에서 이야기한 경제적인 영역과 4,5-18의 단락이 시사하는 내용을 연결시켜 보도록 하겠다.
1. 경제적인 영역의 관점에서 볼 때 원수의 군대를 소개하는 은유가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4,11을 보면 폭풍우가 섞인 바람(열풍)이 언급되고 있다. 이 폭풍우가 담긴 바람은 낱알을 키질하기 위해서도 무익한,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따라서 일종에 저주의 바람이다. 반면 수확물은 축복으로 묘사되고 있다(창세 49,25; 신명 12,15; 16,17; 시편 129,7f).
“저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관해서 이런 말씀이 들려오리라. 벌거벗은 언덕의 열풍이 광야로부터 내 딸, 내 백성의 길을 향해 불어온다. 그 바람은 키질하는 것도, 청소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예레 4,11)
2. 4,16-17을 보면, 역설적인 초상이겠지만, 오히려 원수들이 들녘의 파수꾼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속되는 부분에서 이 파수꾼들이 “열매들을 수확하는 사람들”(5,10f) 혹은 “자신들이 양떼를 치는 사람들”(6,3f)로 표현되고 있듯이 이렇게 엉뚱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열매를 수확하고 양떼를 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땅, 남의 소유가 된다는 말이 되겠다.
“민족들에게 경고하고 예루살렘에 대고 알려라. 침입자들이 먼 나라에서 쳐들어오고 그들이 유다의 성읍들을 거슬러 소리를 지른다. 그들은 토지를 지키는 자들처럼 사방에서 유다를 포위한다. 그 도성이 나를 배반한 탓이다. 주 나의 말이다.” (예레 4,16-17)
3. 달리 말해서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것, 이스라엘이 소유한 것을 잡아먹기 위해서, 혹은 농산물을 먹기 위해서 오고 있다. 5,17이 이 사실을 잘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들은 너희가 거둔 곡식과 양식을 먹어치우고 너희 아들 딸들도 집어삼키리라. 또한 그들은 너희 양떼와 가축을 먹어치우고, 포도밭과 무화과나무도 집어삼키리라. 그들은 요새화된 성읍들을, 너희가 믿고 있는 성읍들을 칼로 절단내리라.” (예레 5,17)
4. 사실 도시가 포위당하면, 궁핍과 절망적인 기아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일종의 죽음의 전조이다(27,31; 37,21; 38,9; 42,14; 44,18). 이처럼 수확과 재화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도시가 약탈과 파멸의 대상이 된다는, 도시의 불길하고 적대적인 초상이 나타나고 있다. 4,5-18에 표현된 도시는 기아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⑵ 법적인 영역
두번째로 법적인 영역의 시각에서 4,5-18을 살펴보자.
1. 중심 요소는 항상 적군의 파멸사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4,7의 파괴자의 군대가 4,8절에서 하느님의 진노와 대칭을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4,5의 “요새화된 도시로 도주하라”는 명령법은 4,8에 나오는 “애도하라”는 명령법들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사자가 숲에서 뛰어오르고 민족들의 파괴자가 길을 떠났다. 그가 너희 나라를 쑥밭으로 만들기 위해 제자리로 튀어나왔다. 너희 성읍들이 파괴되어 아무도 살지않게 되리라.”
(예레 4,7)
“그러니 자루 옷을 입고 탄식하며 슬피울어라. 주님의 불같은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레 4,8)
2. 앞에서(강의록 63쪽) 언급하였듯이, 바람은 하느님의 심판이다(4,12; 1,15).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파멸은 만국을 재판하는 옥좌이어야 할 예루살렘 도성에 대한 심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재판하는 옥좌로 예루살렘을 표현하는 것은 시편 122,5을 참조할 수 있다).
“이런 것들 보다 드센 바람이 나를 거슬러 분다. 이제는 나도 그들을 거슬러 심판을 선언하리라.” (예레 4,12)
“그곳에 재판하는 왕좌가, 다윗 가문의 왕좌가 놓여있도다.” (시편 122,5)
3. 예레미야서는 정의를 이행하지 않는 도시에 대해 자주 책망하고 있다(예를 들면 5,28; 6,7). 그 결과는 자명하다. 불의가 가득찬 도시에는 악행이 만연하고, 바로 이 사실이 하느님의 개입의 마지막 이유가 된다. 불의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4,14 참조).
⑶ 정치적인 영역
세번째로 앞에서 언급한 정치적 영역과 4,5-18의 단락을 연결시켜보자
정치적인 영역과 관련해서 도시를 파괴한다는 군대의 초상이 반복되고 있다(4,6-7; 4,14). 여기서 평화 또는 안전과 칼 사이의 대립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민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 문명과 문화의 소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인 영역은 파멸의 극적인 순간을 드러낸다.
2. 마음, 심장
1. 우리가 다루고 있는 텍스트에서는 예루살렘의 마음, 심장에 대해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마음의 의미론은 성서에서 풍부하게 알려지고 있다. 성서에 따르면 마음은 지성적, 윤리적, 종교적 가치에 입각해서 인간의 내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다.
2. 4,9은 불행에 대한 선포의 첫번째 결과로 ‘낙담’과 ‘의기소침’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떠나 있음을 소개하고 있고 위기에 처하여 합법적인 권위는 사라지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혼비백산하여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똑똑히 일러둔다. 그날이 오면, 왕도 고관들도 넋을 잃을 것이다. 사제들은 정신을 잃고 예언자들은 얼빠진 사람이 되리라” (예레 4,9)
3. 4,14절에서, 선포된 불행은 마음을 정화시키라는 절박한 초대로 변한다. 불행은 예루살렘에서 자행되는 악행, 부끄러운 생활과 연결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를 청산하지 못하면 불행을 막을 길이 없기에 회개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실제 역사 안에서 회심할 것을 촉구하는 예레미야의 설교는 지속되고 있다.
“예루살렘아, 살고싶거든 못된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라. 쓸데없는 생각을 언제까지 품고 있으려느냐?” (예레 4,14)
4. 4,18절을 보면, 마음은 패배와 파멸의 체험으로 인해 비탄과 괴로움을 겪게 된다. 하느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의 고통이다. 이 파국에 대한 깨달음을 유다는 깨달아야 한다. 또한 연민에 대한 호소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백성들의 관심의 결여, 마음의 결여를 예언자는 자주 언급하고 있다(4,22; 5,21-23).
“그런 못할 짓을 하다가 이 꼴이 되었다. 가슴에 칼이 꽂히는 이 아픔은 너의 죄 때문이다.” (예레 4,18)
“내 백성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이렇게도 나의 속을 모르다니. 미련한 자식들. 철없는 것들. 나쁜 일 하는 데는 명석한데 좋은 일은 할 생각조차 없구나.” (예레 4,22)
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파국에 대한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시어 건설하고 돌보시던 예루살렘을 파괴하신다(45,5). 이러한 예루살렘의 종말은 하나의 역사적 종말, 구세경륜의 종말이다. 결국 새롭고 예외적인 사실에 마음을 열어야 함을 이 부분은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