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과 관련된 성서의 증언
거의 모든 문화권은 사후에 어떤 종류의 삶이 지속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 대한 어떤 의식(儀式)을 거행하였다. 이 문제에 관한 이스라엘의 신조와 이에 따른 의식, 관습은 고대 근동지방의 유형과 유사하다. 야훼 신앙은 죽은 자들에 대한 고대 근동지방의 관습 중에서 모순되지 않는 것은 수용하고 야훼 신앙에 반대되는 것은 배척하였다.
1) 죽은 자들에 대한 보살핌
죽은 사람에 대해 이스라엘이 행하던 의식과 풍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셈족의 인간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1. 이스라엘은 희랍 철학처럼 인간을 물질적 요소(육체)와 비물질적 요소(영혼)이 느슨하게 합성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셈족의 경우 인간은 생명이 깃든 살아있는 육체로서 영혼과 육체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생명(숨)을 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불어넣었을 때, 그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창세 2,7). 희랍 철학처럼 죽음을 인간 안에 내재하여 있는 두 개의 요소가 분리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2. 그래서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와 죽어있는 존재 모두가 שׁꗾ(네페스)로 표현되었다. 이 단어는 ‘혼’, ‘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사실 ‘인격’과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적어도 뼈가 남아 있는 한, 혼은 지극히 약한 상태에서 그림자처럼 לꔠꚉ(셔올)에 머문다고 생각하였다(욥 26,5-6; 이사 14,9-10; 에제 32,17-32).
3. 죽은 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념과 풍습은 의식 실천면에서 이웃하고 있는 근동지방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동시에 어떤 특별한 면에 대해서는 강한 반발을 보이기도 했다.
2) 시체에 대한 보살핌
1. 죽은 사람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매장하고 그에 대한 의식을 행하는 것은 시체에 행하는 것이 죽은 사람의 שׁꗾ(네페스)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즉 영혼이 육체의 일을 계속해서 의식한다고 믿었다.
2. 창세 46,4에 의하면 사람은 죽자마자 눈꺼풀이 닫혀지는 것으로 묘사한다. 즉 죽음을 잠자는 것과 유사하게 생각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와서 시신을 끌어안고(창세 50,1) 시신을 그 집에서 가장 좋은 방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친지와 친구들이 와서 통곡을 하였다. 여기에 직업적인 애도꾼들이 와서 통곡을 하기도 하였다.
3. 외관상으로 죽은 자들은 평소의 복장을 지니고 매장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장수(將帥)의 경우 머리 밑에는 칼을 놓고 몸에는 방패를 덮은 채로, 즉 무장한 채로 매장된다(에제 32,27). 이러한 사실은 발굴된 무덤에 의해서 확인되고 있다.
4. 관(棺)을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습관적인 것이 아니었다(2역대 13,21). 시신은 개방된 상여에 실려 무덤으로 운반되고(2사무 3,31; 루가 7,14) 이때 자녀들(창세 25,9; 1마카 2,20; 마태 8,20), 친척들(판관 11,31), 친구들(1역대 21,31), 종들(2역대 23,30), 군중들(루가 7,12)이 동행하였다.
5. 또 가나안 사람이건 이스라엘 사람이건 모두 죽은 자들을 방부처리 하지 않았다. 단 야곱과 요셉의 경우는 에집트의 풍습을 따랐다(창세 50,2-3; 50,26).
6. 또한 이스라엘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화장(火葬)을 하지 않았다. 비록 죽은 이의 불명예를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화장을 했다 하더라도(1사무 31,12) 시체 혹은 뼈를 훼손하는 것은 모독적이고 잔인한 행위로 간주되었다(아모 2,1).
7. 또한 정중한 매장은 그들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매장은 사람이 죽은 당일날에 거행된 것 같다(사도 5,5.10)(오늘날에도 근동지방의 사망과 매장 사이의 기간은 매우 짧다). 매장되지 않고 시신이 남아 있는 것은 큰 불행이라고 생각하였고 전사들에게는 큰 두려움이었다(전도 6,3). 이것은 하느님의 벌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적군과 가증스러운 사람들에 대해서도 매장을 해 주었다 (1역대 2,31). 정중한 매장은 사후의 상태가 육체의 보존 상태에 의존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8. 이스라엘은 한때 에집트, 가나안, 바빌론에서처럼 음식과 음료를 무덤에 묻었음이 발굴작업을 통해 밝혀졌다. 이때 함께 묻힌 물건은 커다란 물항아리, 토기, 잔 등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사용하도록 매장된 이러한 물건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해 많지 않았고 그다지 값진 것도 아니었다.
9. 죽은 사람들을 향한 직접적 숭배 행위는 어떠한 텍스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속죄제가 가치가 있는 것임이 언급되고 있다(2마카 12,38-45).
3) 죽은 자들에 대한 숭배 행위
1. 비록 이스라엘이 근동 지방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존하신 하느님만이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와 모순되는 근동지방의 관습은 거부하였다.
2.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매장되지 않은 사람의 혼, 또는 장례예식을 치루지 않은 죽은 사람의 혼은 죽은 자들의 처소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병, 불행, 재앙과 결부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닌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혼들의 악영향을 두려워 했기 때문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행위나 주술, 마술 등의 예식을 통해 이러한 혼들로부터 자유로와지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행동과 의식을 통해 이 영들이 죽은 이들의 처소에 내려갈 수 있는 자격을 지하에 있는 신들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강신술을 시행함으로써 산 이들이 죽은 이들과 영적 통교를 하고 어려운 일에 대해 죽은 이와 상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죽은 이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그래서 바빌론에서는 특별한 사제들이 이 강신술을 시행하였다(우리나라의 무당을 연상하면 되겠다).
3. 이스라엘의 경우 비록 야훼 종교가 죽은 이들에 대해서 다른 태도를 표명한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된, 죽은 자들에 대한 숭배행위가 있었음을 구약성서에서 발견케 된다.
① 하느님의 절대 주권에 어긋나기에 야훼 눈에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강신술은 율법으로 금지되었다(신명 18,11; 레위 19,31). 하지만 강신술은 널리 퍼져 있던 악으로써 근절되기 어려웠던 것 같다(레위 20,6.27; 1사무 28.3.7.9; 2역대 21,6; 23,24; 이사 8,19; 29,4).
② 따라서 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꾸준히 죽은 자들의 영들로부터 어떤 충고를 받으려 하였다. 그러나 공식적 야훼 신앙에 의하면 죽은 자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욥 14,10-12; 전도 9,5-6.10).
4. 일부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죽은 자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산 사람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① 시체 접촉 후 부정을 씻는 법(레위 21,1-2.11; 민수 2,5; 19,11-22; 하깨 2,13)은 죽은 이가 줄 수 있는 악영향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② 옷을 찟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머리를 풀고,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죽은 영의 관심을 분산시키거나 그 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③ 이스라엘에는 사형을 집행한 그날밤에 시체를 매장하라는 명령이 있었고(신명 21,22-23) 무덤 위에 돌을 쌓는 풍습이 있었는데(여호 7,26; 8,29; 1사무 18,17) 이는 죽은 사람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고 영의 복수를 피하기 위한 예방책이었다는 것이다.
④ 또한 애도 풍습은 가장 생생한 방법으로 내적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고(이사 22,12; 예레 16,16; 에제 7,18; 아모 8,9-10) 치장하고 있는 모든 장식품을 떼어내는 것은 이러한 애도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5. 선조들과 판관, 예언자의 무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 예식을 거행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죽은 사람을 일종의 신적인 존재 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의 죽은 사람에 관한 의식은 매장 의식과 헌주, 무덤의 축복에 집중되어 있었다.
6. 히브리인들의 풍습이 가나안 지방과 유사점 있기에 이스라엘이 이를 차용했으리라 본다. 이 유사함에는 명백한 위험이 포함됐으나 이스라엘은 야훼신앙 안에서 이를 구별하여 수용했으며 처음부터 이런 자세를 견지했다. 미신적 행위와 관습 및 의식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공경, 숭배는 격렬하게 지탄되었다. 또 죽은 사람의 삶이 지상의 삶을 계속 연장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도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