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예언서 입문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던 두 예언자가 있었다. 첫번째는 북쪽 유다계 출신인 호세아와 유다 출신으로서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아모스였다. 호세아는 아모스와 동시대 사람이었지만 좀 후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얼마전까지 예언활동을 하였다. 북조의 역사를 호세아는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나 남조의 유다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호세아는 창녀(매음녀)와의 결혼으로 아주 잘 알려진 예언자이다. 그녀가 호세아와 결혼했을 때, 이미 매음녀였는지, 아니면 결혼 후 몸파는 여인이 되었는지 혹은 풍산의식(fertility cult)에서 몸을 팔던 성전 창녀였는지 혹은 성전창녀였기에 봉사기간이 끝난 뒤에 호세아와 결혼했는지 아니면 극단적으로 호세아가 아내를 두 명 두었는지 그런 점에 대해 길게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호세아의 결혼에 대해서 짤막하게나마 살펴볼 것이다. (호기심에 의해 접근할 수도 있지만) 단지 그의 결혼은 야훼와 백성의 관계를 이해하는 근본 원천이었으며 이 비극적인 사건은 예언적 표징으로 이해되었다.


많은 국가들은 호세아를 위대한 사랑의 예언자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과장된 것 같다. 호세아는 이스라엘과 야훼의 관계가 지닌 비애의 상황을 아모스보다 훨씬 더 뼈저리게 느꼈다. 호세아는 아모스와 마찬가지로 야훼께서 심판을 내리실 때가 가까왔음을 알았다. 아모스가 야훼의 정의를 강조한 반면 호세아는 야훼와의 더 깊고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우리가 호세아를 이해하는데 관건이되는 단어는 앎(תꘞꕈ), 하느님을 안다는 것(םיꕙꗟꔤ תꘞꕈ)이다. 그런데 구약성서에서 안다는 것은 보통 체험을 뜻한다. 누군가를 아는 것은 그를 가깝고 친밀한 가운데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서 약속이 이루어지며, 약속에 따르는 의무를 이행해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계약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דꘑꖒ이다. 자비로우심, 자비 내지 사랑, 은총등에 연결시켜서 번역할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 계약에 충실하시기 때문에 이를 인간이 고백하는 것이다. 구약에 이러한 דꘑꖒ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고 있다. 자신의 궁극적인 체험을 통해서 호세아는 부당하게 모욕을 받으셨지만 화내지 않으시는 이스라엘의 남편인 야훼의 고뇌를 알게되었다. 호세아의 뼈저린 체험, 이것은 바로 야훼게서 이스라엘과 이러한 고뇌속에서 겪으신 체험으로 보여진다. 이와같은 관계의 파괴는 심각한 결말을 가져오게 되었다. 여기서 야훼께 대한 앎은 개인적인 체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호세아는 야훼의 진노가 자비의 한부분이고 그 진노의 목적은 구속이라고 강조하면서 아모스보다 한 단계 더 넘어선것 같다.  그러나 야훼의 정의와 진노는 이스라엘 부족이 야훼의 דꘑꖒ를 직접적으로 거부한 것의 표시임을 직접적으로 밝혔다. 호세아는 아모스보다 더 강력하게 우상숭배와 에집트와 맺은 동맹을 비난하였다. 우상숭배와 관계된 것은 호세 4,12.17; 8,4; 13,2; 14,8에서, 에집트와 맺은 동맹은 7,11에서 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아모스처럼 사람들의 도덕상태,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을 개탄하였다. 사람들의 도덕상태가 얼마나 추락되었는지 4,1-2에서 언급하고 있다.


「 이스라엘 백성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께서 이 땅을 주민들을 걸어 논고를 펴신다. 이 땅에는 사랑하는 사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알아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호세 4,1-2; 공동번역)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에 대해서는 4,4.8-9; 5,1에서 언급된다.


「그렇다고 서로 탓하지는 말라. 서로 따지지도 말라. 사제야, 내 백성이 다 너희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4,4)


「내 백성의 허물 덕분에 먹고 살며 내 백성이 짓는 죄에 침을 삼킨다. 백성은 사제를 닮게 마련, 그래서 나는 사제들을 그 행실을 따라 벌하고 그 행위를 따라 갚으리라.」(4,8-9)


「사제들아, 이 말을 들어라. 예언자들아, 똑똑히 들어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법을 세워야 할 너희가 미스바에 놓은 덪이요, 다볼에 친 그물이요, 시띰에 판 깊은 함정이 되었다.」(5,1)




삶과 생활의 실존적인 변화가 없는 종교의 외적인 행태에 대해서 희생제에 대해서 역시 예언자들이 주장했듯이 호세아도 마찬가지로 이 희생제물이라든지 외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아주 힘있게 강조한 내용이 호세 6,6에 나와 있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


외적인 종교행위에 대한 것을 비판하면서 바른 하느님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느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나 호세아의 신탁을 읽어볼 때 그가 조국에 느낀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자기 조국인 북조 이스라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뒤집어 굽지 않은 과자이며(7,8), 바람을 심어 회리바람을 거둘 정도이지만(8,7), 언젠가 다시 야훼와 결합할 날을 바라고 있었다. 이 야훼와의 결합을 시도한 내용이 11,1-9에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속의 확신이 아니라 단지 실낱같은 희망에 불과했다(13,12-16). 호세아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분명 심판이 가까이 다가 왔으며, 곧 도래한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깊은 슬픔과 체험을 통하여 심판을 넘어서는 어떤 분과의 관계회복, 그리고 그분과의 약속이 다시 확인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호세아는 구원이란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야훼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호세아의 예언이 있은 후, 곧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고 아모스의 실랄한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엇따. 아모 5,2에 다음과 같은 예언이 있었다.


「처녀 이스라엘이 죽었구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그 쓰러진 곳이 타향도 아니건만 일으켜 줄 사람 하나 없구나.」


아모스의 예언이 그렇듯이 또한 호세아의 예언이 있은 다음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쑥대밭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782-753)말기에  예언자로 등장하였다. 그는 하느님께 대한 지식(4,1이하; 5,4; 6,6; 14,10)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집단을 이루며 활동하던 예언자 길드, 정경 예언자외에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예언자들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또한 그는 모세를 자신의 귀감으로 생각하였다. 당시 사제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하느님께 관한 지식도 심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사제단이란 당시 예배를 주관하던 무리로서 호세아는 그들 중, 일부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소홀히 한다고 실랄하게 비판하였다(4,4-6).


「주의하라! 아무도 감히 자신을 옹호하지 말고 의의를 제기하지 말아라. 너의 백성도, 사제여, 너도 감히 변호하지 말아라. 너는 낮에 걸려 넘어지고 밤에는 예언자까지 너와 더불어 걸려 넘어질 것이며, 나는 네 어미를 없애버리겠노라. 내 백성은 지식이 없어 멸망할 것이다. 너는 지식을 거부했으니 나도 너를 거부하고 너는 더 이상 나의 사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너는 네 하느님의 가르침을 잊어버렸으니 나 역시 네 자손들을 잊어버리겠다.」(서인석 譯)


따라서 호세아와 친교를 맺은 주변 인물들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소홀히 한 사제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양분될 때(1열왕 12,31) 성전에서 예배집전을 박탈당한 레위지파의 사람들로서 내적으로나마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추구하던 자들로 보인다. 이 레위지파 사람들은 자기네 지파의 전형적 인물이었던 모세에게 큰 존경심을 드러냈고, 사막 생활을 하던 모세시대의 영성을 동경하였다(호세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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