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의미론
텍스트 구조에서 주석을 위한 중요한 관건은 호세아의 아내의 인격, 신원에 관한 것으로 집약된다. 호세아 2장은 비극적으로 표현한 매춘부, 간음녀 혹은 하나의 우의. 2장은 1장과 3장의 텍스트의 조화를 위해 독자에게 강한 호소를 목적으로 한 편집자의 우의적 표현이다.
1장 םיꗼוּנꖅ תꚆꔞ (간음하는 남자들의 여자)
2장 תאָꗺꗱ (매음하는 여인)
편집자가 텍스트 조화를 열망하고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고메르를 약간 변경시켜 표현했다.
호세아 1,2b가 중심 토론점이 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1장, 3장에 나오는 두 단어는 편집의 흔적으로 보려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한다.
1,2b는 1장 텍스트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로 떼어 생각함은 의미의 약화와 변경하는 것이기에 정체적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서 간음하는 남자들이 열쇠가 된다. 이 구절은 의미 접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구절은 12번 나타난다. (호세 1,2 ; 2,4.6 ; 4,12 ; 5,4 ; 창세 38,24 ; 나훔 3,4에 2번 ; 에제 23,11.29)
지난 학기에 보았던 출애 3-4장에서 ‘보다’, ‘파견하다’, ‘믿다’, ‘말하다’동사의 의미론과 연결하여 생각하면 된다.
텍스트의 구조에서 주석 위한 중요 관건은 그녀(호세아의 아내)의 신원에로 문제가 집약된다. 2장은 매춘부, 간음녀를 말하는가, 아니면 1, 3장을 2장에 일치시키려는 우의적 표현인가?
그러나 매춘부에 대한 평가는 텍스트의 조화와 강한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편집자가 1장의 םיꗼונז תשꔟ ( תשꔟ : 여자 , םיꗼונז : 간음하다의 분사형 – 즉, ‘간음하는 남자들의 여자’ 의 뜻 ) 과 3장의 תאָꗺמ ( 매음하고 있는 여인 )처럼 고메르를 약간 변형시켰을 수도 있다.
1, 2b 가 중심적 토론점으로 대두된다. 결론적으로 1, 3장의 위의 표현을 약간 변형시키려는 경향의 견해는 부정적이다. 근거가 부족하다.
1, 2b가 “너에게 자식을 낳아줄 여자와 결혼하라.” 는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 호세 1장과 강하게 2b가 연결되므로 2b를 따로 보는 것은 1장을 약하게 하거나 혹은 변형시키므로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םינונז – (호세 1,2 ; 2,4.6 ; 4,12 (ꕚור : 매음의 영) / 5,4 ; 창세 38,24 (“창녀짓” 다말의 임신 이야기) / 매춘에 대한 비유 = 나훔 3,4 (2번 : “니느웨가 창녀 소굴이 되었다.”) ; 에제 23,11.29 (예루살렘을 매춘으로 언급) ; 모두 12번 사용 ) – 이 key word가 된다. 이들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데, 창세기에서는 1회 이상 “거리에서 몸파는 것”의 의미로, 나훔서와 에제키엘서는 니느웨와 예루살렘 매춘부로 언급 “매춘”의 의미로 쓰였다. 왜 니느웨가 매춘녀로 언급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U. Rudolph 는 “Micha-Habakuk-Zephanja” p 177 에서 “폭력, 다른 나라나 그 백성에게 우호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해서 자국의 물질적 이익을 도모한 앗시리아의 정책을 상기하게 한다.” “채찍과 당근” – 이 해석은 매춘부가 매음유혹하는 것과 관련된다. 즉 정치적으로 전쟁을 피하면서 약소국의 지지를 끌어당기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간의 관계(상거래, 정치)가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매춘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강자유혹이 아니라 물질적 특전이 베풀어진다. 이에 정치적 특전과 함께 수치스러운 평화가 얻어진다. 이사 7장에서 아하즈-시로페니키아 전쟁이 언급되는데, 이사야는 앗시리아와의 동맹을 거부한다. 그러나 아하즈는 동맹을 맺고 많은 땅을 빼앗긴다. 강대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약소국의 동맹은 야훼를 버리고 외국의 신, 즉 앗시리아의 신(神)도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예언자들은 이것을 거부하고 반대하였다.
호세 4,4-19 는 우상숭배를 단죄하는 텍스트이다.
그러나 4, 12는 이 텍스트 안에 있다. “매음의 영(靈), 혹은 정신, 얼”의 표현이 거기에 있다.
10 – 19절 사이에서 “הנז 간음하다” 어근이 9번 등장한다.
12 – 14절에는 “고발, 증인” 이 집중되어 있다. 고발당한 것은 백성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매음의 정신으로 타락시키는 사제들도 포함된다. 이 고발조는 탄식이다. 사제들을 사로잡는 靈, 하느님으로부터 백성을 가로막는 靈이다. 이 고발조는 “탄식”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적당하다.
13절에서는 이사야 1장에서 암시된 풍산의 예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13b 에서는 이것을 보다 정확히 묘사한다. – “너의 딸, 너의 젊은 아내,약혼녀”의 매음, 간음(서인석 역본)을 의미.
14a 무거운 재앙을 받을 사람은 “딸,아내”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매음행위를 통해 백성들을 갈라놓고 성전에서 매음하는 “고발당한 사제들”이다. םה־כּ (그러나 그들) : 고발되는 사제들을 의미함. הꚂꕊꙎ ( 성소의 창녀들,성전에 봉헌된 여인들/ 코뎃샤 복수형 = חוꚂꕊꙎ) 이것은 그들의 처신이나 사용된 단어의 관점에서 볼때 명확하다.
ףאנ, הꗺꖅ(조나) 등은 풍산의식(성전에서의 매음)과 연관된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봉헌된 여인들”(הꚂꕊꙓ)과 직접 연관된다. (신명 23,13.19 ; 1열왕 14,23-24 ; 15,12 ; 22,47 ; 2열왕 23,7 참조) “약혼녀”의 언급은 성전의 여인들과의 매음이 전반적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서술할 뿐아니라 , 특히 앗시리아의 여신 Mylitta, (혹은Afrondite)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는 거룩한 성행위와 입회예식과 비슷하게 드러난다. 혼인 계약을 맺은 여인들은 적어도 한번은 이 여신의 신전에서 자신을 선택한 남성에게 몸을 바쳐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때 이 여인은 선택의 거절을 못한다. 은전을 남자가 주면서, “나는 Mylitta를 희구한다.” 라고 하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시로페니키아의 타락에 거세게 야훼스트계는 투쟁한다. 그러나 이 텍스트에 의한 입회의식 암시는 언덕위의 향연에 호기심을 갖고 진지하게 참여한 후, 가까운 집의 부인을 더럽히는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젯밥먹고 남의 아내를 범함) 에제 18,6.11.15 ; 22,9 ; 민수 25,1-5 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우상에게 눈을 돌리는 것으로 소개될 수 있다. 예레 2,25(이방인과의 타락)과도 연결된다. (호세 5,4 “매음의 얼”은 일반적으로만 서술되기에 중요치 않다.)
결국, הנז 의 영역은 상당히 광범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의 “매음”, “매음의 도시”라는 은유에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것이다. 앗시리아의 의식과 매음의식을 표현하면서 성전의식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며 발전된다. םינונז(הנז의 복수, 저느님)이 여기서 모두 연결된다. 이 단어는 호세 4,12에서 분명하고 다양한 예식명칭으로 사용된다. 그런데호세 1,2b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중요한 “모든 사람”들을 암시할 수도 있다. (“고메르”, 구체적인 어떤 여인, 혹은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창녀도 되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정해진 입회의식에 소속된 여인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면 과거의 첫아들도 그 근원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제해결 시도 : “매음하는 남자들의 여자”(םינונז תשׁא) 라는 단어는 앞의 여러 의미뿐 아니라 1,2b 에서의 고유한 의미도 가능하다. “한 여인을 취하라. 매음의 자식들을 낳아라.” 루퍼트와 그외의 많은 학자들(르노 등)은 텍스트 변경들은 택스트 전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라고 가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1,2b에서 “너를 위해서 취하라.”(ꗘל־חק ךל) 에서의 הקל 동사(취하다)는 “매음의 여인을 취하여, 그녀의 매음의 자식들을 받아들여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아야 한다. 이럴 때 호세아도 불명예와 함께 남의 자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포함된다. 이 해석은 지지를 받는다. 왜냐하면, 돌계집인 한 여인이 많은 자식을 얻게 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דלחו 아이를 낳다 וחꖞꕲ 임신하다 : 25회에 걸쳐 등장) 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장앞에 자주 사용되어 돌계집이 자식을 얻게 됨을 표현한다. 그리고 “야훼께서 그녀를 측은히 여겨 그녀의 태를 열어 주셨다.” 는 표현이 나온다. 혹은 “그녀가 임신했다. 그리고 낳았다.” “자기 부인과 한자리에 들었다.” 등과도 함께 쓰인다. 여기서는 אוב 동사, רכꚂ 동사 (자리에 눕다) , ברק 동사 (가까이 가다) 등이 주로 사용되며, 성관계를 맺는 것보다 결혼을 지칭하기 위한 고유 동사, 즉 법적으로 여자를 맞아들인다는 의미에서는 הךל 동사(데리고 살다) 이다. (신명 20,7 ; 창세 4,19 ; 6,2 ; 11,29 ; 1사무 25,43 ; 출애 2,1 ; 21,10 참조)
출애 2,1 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타난다. הךל 동사가 사용되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가 나온다. 이 사이에 결혼과 관계된 위의 세동사 אוב, רבשׁ , ברק 중 아무것도 안쓰인다.
창세 30,3-5; 30,16-17; 1사무 1,19 등 에서는 흥미로운 표현들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הꗺꙌלꔟ עꕊꗂꕲ 이다. ( עדי – 알다, 깨닫다, 부부행위 – 동사) 호세아서의 핵심 중 하나는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다. 이는 위와 마찬가지로 밀접한 관계 안에서의 “앎”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호세 1,2 의 상황이 출애 2,2 과 비슷한 상황이다.( “아내로 취하여라”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사이에 동사 표현이 없다) 그러나, 호세 1,6.8에서 두아들의 출생이 언급된다. 두 아들의 출생은 아버지와 연결되어 표현되지 않고 어머니와 완벽히 연결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동사, “젖을 떼고” (למגꚝꕲ) 처럼 여인의 행동이 강조되어 호세아와의 관계는 안보인다.
호세아에게 내린 야훼 하느님의 명령은 호세아가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여인과의 관계를 지속하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비극적 아들 이름을 언급할 때만 이 관계를 언급된다. 로암미 (ימע־אל)의 배후에는 “너는 나의 아들이 아니다”의 의미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호세 2,6 에서 “그들은 매음의 자식들이기에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겠다.”
( םꖑꙟ אꔔל ꕗיꗾꔯ ־ תꔟו )
(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자녀들을 )
이는 로암미가 표현하는 것 배후의 암시로 이해할 수 있는데, 즉 “나는 그여자의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네 년의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자녀의 자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םינונז 이 실제로 견고하게 속한 것으로 보는 증거는 이것과 לאערזי (이즈르엘, 호세 1,4) 의 연결고리이다.
이는 예후왕조의 음모; 2열왕 9-10장을 보아야 한다. 엘리사의 후원을 받는 예후가 요담과 그의 어머니 이세벨과 작당한 음모이다. 2열왕 9,16-22에서는 예후가 친구인지 혹은 적(敵)인지를 알려고 두 사신을 파견한다. 두번의 질문 “ ! םולꚂꕚ 하샬롬. 무슨 일이요”이 나오고 여기에 이어서 같은 대답을 두번 한다. 마지막으로 요담이 예후를 만나 또 묻는다. 22b에 결정적인 대답이 있다. 즉 “이세벨이 매음(םינונז)을 계속하는 동안 어떻게 평화가 가능한가?”(םולꚂꖑ הꗪ)마하샬롬. 따라서 여기서의 םינונז이란 표현 안에서는 요담과 이세벨, 아하지야王과 요담의 자손들, 바알의 예언자들의 죽음의 동기가 드러난다. (2열왕 10,18-27에서도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요담王의 죽음은 아합王의 나봇땅에서임을 강조한다. (1열왕 21,1 참조) 따라서 호세 1,2b의 םינונז 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첨부된 글로사 glossa 만은 아니며, 예후는 이세벨과 그의 자손들의 매음 때문에 야훼 하느님 징벌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또한 매음에서 비롯된 새 이즈르엘은 예후왕조의 후손들에의 징벌의 예증이다. 예후의 왕조가 요담王의 뒤를 이어 옥좌에 앉게 되는데 그 후손도 매음을 하게 된다.이런 점에서 새로운 이즈르엘이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나봇과 아합王과의 연결 – 본래의 이즈르엘”. “이스라엘 안의 구체적 악행, 예후왕조의 매음 – 새로운 이즈르엘” 결국호세 1,2b 에서는 예후의 자손들과 그 매음에 대한 징벌을 예언하는 것이다. (묵시 2,20-23 참조)
הוז와 같이, ףאנ(나프)도 매음하다의 의미인데, 전문용어이며 또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간음’(레위 20,10)에서 ‘우상숭배’ 실행으로 범하는 ‘불충실’을 의미한다. 예레 3,6(바알예식, 풍산예식, 정원의 유희가 드러나는 텍스트)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ףאנ가 속이다, 반역하다(רגꔧ, 자행되는 ‘악행’)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또한 예레 9,1-2에서는 간음은 배신, 거짓행위이며 또한 사악함과 대칭되어 나타난다. 이 ףאנ동사가 피엘型으로 사용되면, “간음”의 전문적인 의미가 된다. (예> 잠언 30,20) 그러므로 호세아서의 용법이 다른 의미를 배제한다는 근거가 없다.
따라서┌ 호세 4,2 의 의미는 “결혼생활에서의 불충실”의 의미로 이해된다.
├ 호세 4,13.14 에서는 거룩한 의식(바알 숭배) 안에서의 간음을 강하게 암시.
└ 호세 7,4 의 본의미는 “간음” (“모두 간음하는 자들이니 . . . ”)이다.
결국 호세 3,1 (תאָꗺמוּ 정부와 놀아난) 을 은유적 의미로 볼 논증이 없다. 즉 간음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3,2-4 의 실제적 성격을 제공하는 어떤 표현도 없다. 즉 3,1(정부와 놀아난)은 고유한 것이건, 일반적이건 , 본래의 호세아서 텍스트에 속하는 것이다. 호세아의 부인이 호세아가 그녀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의식적인 매음을 계속했다면, 간음녀로 간주될 수 있다. 호세 4,13-14에서 약혼녀가 된다는 것은 간음을 범한 간음녀가 된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즉 약혼녀 = 간음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