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4-17 주석(2)

2,4-17  주석(2)


 호세아 2,4-17까지 텍스트 구성에 관계되는 요소들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해당부분의 주석을 시도하고 있다. ‘나’와 ‘그녀’와의 관계, 남자와 여자, 호세아와 고멜, 야훼와 백성, 땅의 관계로 이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전제 하에서 텍스트를 분석하고 있는데, 스케마 Ⅲ을 참조하기 바란다.


첫번쩨 주제로 4절 전반부는 소송으로 보고 해석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17절을 자기 남편에게 돌아올 것을 결심한 여인의 요청으로서 주석하는 것은 이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17절 후반부를 보면


“그가 에집트 땅에서 올라오는 젊었던 시절과 같이 그곳에서 응답할 것이다”.


이 닐슨의 의견보다는 볼프의 의견, 그리고 주석한 내용이 훨씬 더 분별적인 용어처럼 보인다. 이 텍스트는 고대 주제를 이용한 케리그마적인 단락이라고 볼프는 보고 있다. 역설적이고 수사학적인 단락이 아니라, 케리그마적이라는 것, 볼프의 주장을 수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언급하겠지만, 보다 엄격하게 이 단락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4절 전반부는


“너희 어미를 걸어 소송하여라, 소송을 제기하라. 그 여인을 걸어 소송을 제기하라. -서인석 신부 역”.  왜냐하면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השׁיא אל יכנאו).


공동번역에 “너희 어미를 고발하여라. 너희 어미는 내 아내가 아니다. 나는 너희 어미이지 아비가 아니다.”


이 4절의 후반부는 호세 1,9에 등장하는 야훼가 당신 백성 사이에 계약형식을 회상하고 있다. 1,9 – 너희는 이미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공동번역에는 번역하고 있으나, 원래 본문 「םכל היהא ־אל יכנאו 」를 직역하면, “나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있지 않는 것이다”


4절 전반부가 호세 1,9에 인용하는 야훼와 당신 백성 사이에 계약형식을 회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ביר 동사는 엄격한 의미에서 재판과정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소송절차를 밟지 않고 있습니다.


G. Liedke, rib. streiten. THAT.2. 771-777에 의하면,  ביר 동사를 사용하는 곳에서 예를 제시하는데 이동사가 심판 이외의 영역, 심판 이전의 영역, 심판의 영역을 이 세군데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ביר 동사로 소송절차, 재판과정에 분리된 여러 요소들을 지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꼭 엄격한 의미에서 4a 부분이 소송절차만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Liedke가 그 예로서 제시한 성서 귀절을 판관기 21,22절, 호세 2,4; 4,4을 예로 들고 있다. 판관 22,21 “만일 여자의 아비나 형제가 와서 시비를 걸면 우리가 그들에게 말해 주마.” ‘전쟁에서 여자를 잡아다가 아내로 삼듯이 그들도 당신네 여자들을 그렇게 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요. 당신들이 자의로 여자를 그들에게 주었다면 서약을 깨뜨리는 죄를 짓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도 않지 않소?’ 여기 보면 재판절차, 소송의 과정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시비, 분쟁과 관련되서 ביר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 ביר 동사에 전치사 בּ가 붙으면 ‘고발하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창세 31,36절, 예레 25,31절 참조. 따라서 서인석 신부님의 소송을 ‘제기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공동번역의 ‘고발하다’의 번역이 마음에 든다. 따라서 이 동사를 어느 누구와 함께 ‘재판에 들어가다’ 혹은 이와 비슷하게 엄격한 의미에서의 소송절차와 유사한 어떻한 것을 표현한 것으로, 막연하고 포괄적으로 번역해서는 안될 것이다.




두번째 스케마 ‘매음’에 관계된 것이 4b에 나온다. םינוּנꖀ의 인격적, 사회적 의미 그리고 고유하고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는 참조바란다.


일부 학자들은 호세 2,4b가 ‘거룩한 매음’의1) 외적인 표징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2,4b는 「그 얼굴에서 색욕을 지워버리고, 그 젖가슴에서 정부를 떼어버리라고 하여라」 이렇게 예를 들어 얼굴에 각인하는 모양이라든가, 치장하는 장식은 전세계 어디서나 창녀는 옷치장과 패물이 눈에 띠게 달라서 “그런 여자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성전 주변에서 몸파는 여인들도, 각인, 장식하고 흥분하기 위해서 육체에 상처를 내고, 매져키즘, 음란증, 자기학대라든가 종교적 세디즘, 변태성욕자 등의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이런형태와 관련된 몸의 상처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전 주변의 매음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세번째 스케마가 ‘벌거벗음’에 관해서 5절 「그렇지 아니하면 세상에 태어나던 날처럼. 알몸을 만들어 허허 벌판에 내던져」




네번째 열매맺지 못함. 「메마른 땅을 헤메다가 목이 타 죽게 하리라」


다섯 번째 7b – 그 여자는 말할 것이다「키이 아메라 엘레카 아라레 레아바이 정부들, 남편이 아닌 정부들(머하 라바이) 여인을 쫓아다니는 정부들」




여섯번째 선물들, (더뚜넷 락르미 우메마이. 사무리 우피스티 싸리 짓쿠야이야.


7절 마지막 까지 ‘그 선물들’ 그 여인에게 주는 행위 묘사.


주제별로 벌거벗다, 열매맺지 못한다, 정부들, 선물들 등 이 스케마는 그들의 개인적인 매음에로의 성향을 언급하는 주제들로 볼 수 있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 말할 때는 하늘 나라, 백성과도 결부시킬 수 있다.


그 여인의 개인적인 매음, 놀아나는 매음을 연결시키고 있지만, 한 나라, 다른 백성과도 결부시킬 수 있다. 그 예로써 한나라의 적용된 벌거벗음에 대해서는 에제 16,11-20. 30-34. 35-40을 참조할 수 있다.


“너를 보석으로 단장하고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코에는 코고리를, 두 귀에는 귀고리를 달아 주었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족두리를 씌워 주었다. 이렇게 너는 금은패물로 단장하고 모시옷에, 비단옷에, 수놓은 옷을 입고 고운 밀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게 되었다. 너는   점점 아름다와져 마침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내가 너에게 입혀 준 영화는 한점 티없이 아름다왔으므로 네 명성은 만방에 떨쳐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명성을 미끼로 삼아 몸을 팔았다.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몸을 내맡겨 마구 놀아났다. 네 옷을 가져다가 산당 언덕에 색색으로 펴 놓고 그 위에서 몸을 팔았다. 몸을 내 맡겨 놀아났다. 또 내가 몸을 장식하라고 준 금은패물을 가져다가 사내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는 몸을 팔았다. 수놓은 옷을 가져다가 그 형상들에 입히고 나에게 바칠 기름과 향을 그들에게 바쳤다. 내가 너에게 준 빵뿐 아니라 너에게 먹으라고 준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살라 그들 앞에서 향기를 피웠다.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또 네가 나에게 낳아 준 아들 딸마저 끌어다가 그 형상들에게 제물로 잡아 바쳤다. 네 몸을 파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더냐? 얼마나 환장했으면 매인 데 없는 창녀나 하는 그 따위 짓을 하느냐?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너는 기 어귀마다에 단을 쌓고 장터마다에 산디를 만들어 몸을 팔았지만, 여는 창녀처럼 화대를 거두어 모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유부녀도 돈을 받고야 다른 남자를 맞아 들인다. 물론 창녀도 몸값을 받는다. 그런데 너는 도리어 번번이 네 정부에게 선물을 주는구나! 너는 선물을 주면서까지 정부를 사방에서 끌어들이며 놀아났다. 너는 바람을 피워도 이처럼 여느 여자들과는 반대로 피우는구나. 정부들이 너를 찾아 와서 너에게 화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도리어 선물을 주었다. 너는 이렇게 거꾸로 되었다. 그러니 이 창녀야, 너는 야훼의 말을 들어라. 주 야훼가 말한다. 너는 속옷을 벗어 알몸을 드러내었고 내 눈에 역겨운 우상을 몸바쳐 정부들과 놀아났으며 자식들의 피를 우상들에게 바쳤다. 그러니 두고 보아라. 네가 미워하는 모든 원수들뿐 아니라 네가 사랑하였던 모든 정부들까지도 다 모아다가 그들 앞에서 너를 벌거벗기리라. 그들은 사방에서 모아다 놓고 그 앞에서 너를 벌거벗겨 알몸을 드러내 보이리라. 나는 너를 간음하고 자식을 죽인 죄인으로 다스리리라. 내 분노와 질투를 너에게 퍼부으리라. 내가 너를 그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은 네가 쌓은 단을 헐어 치우고 네가 만든 산디를 허물 것이다. 너에게서 옷을 벗겨 가고 몸을 단장한 패물들을 채어 갈 것이다. 너를 벌거벗겨 알몸을 만들고는 군중을 모아다가 너를 돌로 치고, 창으로 찔러 죽일 것이다.”


여기보면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부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에제키엘서가 한나라, 예루살렘 백성, 주민들의 벌거벗음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에제키엘에서는 호세아에서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신명기 7,12-14까지에서는 계약의 충실한 경우에 땅과 백성의 풍요로움이 약속되고 있다. 7,12-14에서 돌계집도 계약에 충실하면 땅이나, 백성이나 풍요롭게 되라라고 한다.


반면 호세 4,10절을 보면 여기서도 돌계집성이 나오는데 4,10은 고유한 의미의, 자역적인 결과로서의 성녀, 물리적인 실제적인 매음에 의한 결과로서의 ‘석녀성’에 의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벌거벗음, 나체와 같은 용어들은 개인적 또는 고유한 단어에 속하기도 하고, 또한 단어는 단체적 또는 비유적 단어에 속하기도 한다. 에제 23, 10. 18. 29; 이사 20,4에서는 에집트의 벌거벗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의미도 있지만 단체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반면 ‘벗기다’ 동사 תשׁק 동사와 형용사로서 ‘아돔’ ‘나체의’ ‘옷을 입지 않음’의 동사들의 용어들은 고유한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다.


‘정부들’은 에제 16,23과 지금의 텍스트에 나오고 있다. 에제에서 사용된 비유적인 의미는 호세아서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호세아에서도 고유한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호세 2,12 “나 이제 그의 부끄러운 데마저 벗겨 정부들 눈앞에 드러내리니, 아무도 내 손에서 그를 빼내지 못하리라.”「התלבנ־תא」 그녀의 추잡함, 음란함, 호색함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어근은 이스라엘의 보다 혐오스러운 죄악들을 의미하는 “너발라르”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본래의 뜻은 ‘사악함’ ‘어리석음’의 뜻이 있다. 혐오스러운 죄란 근친상간, 부녀자 폭행과 강간과 신성을 더럽히는 절도(창세 34,7; 신명 22,27; 판관 19,23-24; 20,6-7)등과 관련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백성의 죄악들을 의미하며 이것을 지칭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스케마 7번 – 통로를 자랑한다. ‘길을 막는다’는 은유 혹은 울타리를 친다는 은유는 개별적인 주석 안에서 직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욥기 19,8 “넘을 수 없는 담을 쌓아 내 앞을 막는 이도 그요, 어둠으로 나의 앞길을 가리는 이도 그가 아니신가?” 여기보면 하느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רדג 동사 사용된다. 나의 진로를 어둠으로 막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동시에 백성에 대한 언급을 암시하고 있는데 (애가 3,7.9)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사람은 강에 의해서 자신의 길이 차단되었고, 자신의 진로들이 이탈되었음을 보고 있다. 욥기, 호세아에서의 단어들이 사용되었다. 애가는 587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념하면서, 5개의 애탄의 노래로 씌여져 있다. 애가 3,7 “무거운 사슬로 묶어 우 안에 가두셨으니 나 어찌 빠져 나갈 수 있겠는가. 도리어 돌담을 쌓아 앞길을 가로막으시는구나”. 이사 5,5에 רꕋꔻ 명사를 사용 – 포도원을 방어하는 단어로 사용. 여기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이렇게 백성들은 암시라는 그러한 울타리로 그들의 길을 막는다로 다른 곳에서 사용이 많이 나타난다 .에제 13,5; 22,30 이하에서는 백성보호하는 성벽으로 나타난다. 파수꾼 역할의 예언자가 이 성벽에서 백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욥 1,10절의 (히브리어?)동사로 야훼께서 그의 집 안에 세워놓은 울타리를 의미한다.




스케마 8번은 약탈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인의 벌거벗음과 땅의 약탈은 호세 2,11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나타난다. 호세 2 11 “그러므로 곡식이 익을 무렵에 내가 그것을 빼앗고 포도주가 맛이 들 무렵에 쏟아 버리리라. 몸을 가리웠던 양털과 모시옷을 벗기고, 버리리라”. 여기서 양털과 모시옷은 여인의 옷처럼, 땅과 경작지를 덮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벌거벗긴다’는 의미로 약탈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스케마 9번. 기쁨과 축제들 마지막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호세 2,13절에서 지적한 전례들의 축제들의 마지막은 분명히 축제를 거행하는 백성 전체와 관련해서 나타난다. 호세 2 13 “순례절이나 초하루나 안식일 등 절기를 따라 지키는 갖가지 축제를 폐지하여 모든 즐거움을 앗아 가리라.”


축제는 이미 상대방을 요구하고 있고, 개인적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띠고 있다. 그래서 백성전체와 관련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민들 각자가 기쁨의 마지막을 통하여 고통을 당한다는 생각을 배제하지 않는다.


용약하다 שׂוּשׁ (즐거워하다) 이 주제가 근본적으로 나타나는 이사야 24,3-12; 32,3-14 참조하라. 이는 축제 끝에 마지막의 씁쓸함과 연결시킬 것이다. 기쁨은 나라의 황폐함을 통해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확의 끝, 포도주 그리고 음악, 현악기로 볼 수 있는 ‘제트라’ 같은것들이 없다는 표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사 32,9-14에서 가시들과 야생동물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호세 8,14에도 나오고 있는데, ‘가시들’과 ‘야생동물들’의 현존을 통해 의미되는 황폐함의 특성을 또한 명백히 하고 있다.


그 신탁이 특별히 여인들에게 내려지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더 죄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감수성이 축제를 더욱 더 즐기도록 허락하였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이 정적이 감도는 도시의 황폐함을 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게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사 32, 11에서 텍스트는 회심의 표징으로 옷을 벗으라고 훈계하고 있는데, 호세 2,5절처럼 תשׁק동사가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호세 2,11-12에서 땅을 약탈하는 것, 불충한 아내를 벗기는 것, 이러한 것은 수치와 처벌의 표징뿐만 아니라, 동시에 회심과 돌아옴의 시작이기도 하다. 호세  2 11-12 “그러므로 곡식이 익을 무렵에 내가 그것을 빼앗고 포도주가 맛이 들 무렵에 쏟아 버리리라. 몸을 가리웠던 양털과 모시옷을 벗기고, 버리리라. 나 이제 그의 부끄러운 데마저 벗겨 정부들 눈앞에 드러내리니, 아무도 내 손에서 그를 빼네지 못하리라”. 이는 땅 또는 아내에게 그의 첫번째 남편에게 돌아 오도록 허락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열번째 주제인 벌이 15절 전체에 나타나고 있다. 호세 2,15 “바알 축제일만 되면 내 생각은 하지 도 않고 바알에게 향을 태워 올리며 귀걸이 목걸이로 몸을 단장하고 정부들으 따라 나서는 것들을 나 어찌 벌하지 않으랴. -야훼의 말씀이시다.” 문장론적인 구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는다면, 한여인에게 언급된 처벌, 응징의 주제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나는 그녀 위에 바알의 날을 처벌할 것이다.” 이 표현은 여기서 그녀가 장물을 취득한 여자가 받아야 하는 전형적인 처벌의 주인공으로 바뀐다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그녀는 땅(토양) 또는 황페한 나라와 관련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 위에 한발, 건조현상을 통하여 바알의 축제를 처벌할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대신 어느 누구에게 어떠한 것에 대한 계산을 요구하다, 처벌하다라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 이것은 간단하게 번역하면 된다. 출애 32,34; 이사 13,11; 예레 15,3; 23,2b; 51,67; 호세 4,9; 아모 3,2; 욥기 34,13; 36,23절등을 참조할 수 있다.




스케마 11번의 주제는 ‘유혹’이다. 이는 마지막 응답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6절과 17절을 2,4-15까지의 기본적인 텍스트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특별히 그 이유로서 16절과 17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 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거기에 포도원을 마련해 주고 아골 골짜기를 희망의 문으로 바꾸어 주리라. 그제야 내 사랑이 그 마음에 메아리치리라. 에집트에서 나오던 때, 한창 피어나던 시절같이.” 여기 보면 이스라엘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장소가 언급되고 있다. 현재 텍스트가 보이고 있는 16절과 17절 사이의 엄격한 결합은 이 두 구절을 재손질한 것으로 보게한다. 따라서 주제 11번 유혹과 응답이라고 붙인 12번 주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언급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호세 2,4부터 15절 주제들에 대한 요약을 다음과 같은 견론으로 뜻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소개된 결론 주제들, 상징적인 표현들, 특히 여러 단어들은 예외없이 고유한 의미에서 특징적인 인물들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개인에게 이 모든 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이것들의 대부분은 비유적으로 한 백성, 한 나라 또는 땅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고, 이 점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한다.


어떤 표현들은 단지 어떤 인물에만 적용시키는 것이 좋아 보이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호세 2,4-16은 에제 16장, 혹은 에제 23장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단지 여인의 모습 아래에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하는 비유로만 생각해야 할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볼 부분의 문학유형에서 다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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