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멜에 대하여
만약 고멜이 누구인가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예언자의 개인적 체험에 대한 연구는 별로 힘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고멜을 생략한 우리의 Text연구는 불완전할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바알예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성서대학의 한 교수는 고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고멜은 아마도 사마리아 근처 어떤 촌락의 단순하고 젊은 촌 아가씨였을 것이다. 비록 그녀는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의 종교라기 보다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종교라고 여러 차례 말해 온 것을 들었던, 즉 야훼의 종교가 사마리아 내지는 이스라엘의 종교보다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종교에 가깝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더라도 야훼의 종교를 이행하던, 여기에 신앙생활을 하던 아가씨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는 신학적이요 정치적인 문제이다. 북조 사마리아의 여인이 야훼의 종교를 믿는다는 것, 여기서 신학적,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는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예루살렘의 축제들이 아름답다는 것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혼합주의, 즉 야훼이즘과 바알이즘, 그 밖에 여러 가지 우상숭배가 혼합된 혼합주의가 북조 이스라엘에서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던 어떤 한 순간에 야훼의 의식은 고멜이 아스타르테 여신과 아세라 축제들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여인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 땅의 풍상을 청하기 위해서 이렇게 아스타르테와 아세라 축제에 참여하는 것을 거의 의무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축제들 안에서 매력있고, 말을 잘하는 남자, 시선을 끄는 남자, 영에 이끌리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호세아)를 기억하게 되었고, 호세아가 자기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 정말 좋아서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마음에 두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고, 호세아가 자신에 대해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스타르테와 아세라와 바알축제에 대한 어떤 연민과 동정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가족들의 악의에 찬 비평 속에도 호세아는 이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와 그녀의 결혼은 어떤 경우에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호세아는 결혼상의 의무를 그녀에게 이행하였다. 그녀를 부양하고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랑의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인지(호세아와 고멜의 자녀인지 모르겠다) 혹은 고멜과 아스타르테 또는 아세라의 자녀들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자녀들을 받아들인다. 고멜은 자기의 아들(자식)들이 받은 이름들을 약간은 조소조로 받아 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호세아는 여유있고 넉넉하게 대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받은 축복과 선물들은 이러한 불편함과 결점들을 참아내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고멜은 호세아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혹은 사랑하지 않는지 말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주고받는 단순한 감정은 군중들에게 있어 상당히 필요했을 것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이러한 감정은 바알예식, 바알의 사제들 그리고 다른 성소에서 거행되던 의식에 반대되는 어떤 고정관념에 지배받고 있는 호세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랑의 문제는 호세아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호세아는 그녀에게 설명하지 않았으며, 고멜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호세아 가까이에서 호세아의 삶이나 고멜의 삶은 점진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고멜은 자기 남편보다 자신을 더욱 인격적으로 뜨겁게 사랑해 주는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듯한 다른 남자와 함께 집으로부터 도주하게 된다. 자식들은 호세아와 함께 남아 있는 듯하다. 만약 호세아가 이 자식들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았다면 이 지식들의 생계는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자식들에 대해 염려를 해야 했던 것 같다. 호세아 자신은 그들의 가정의 입장에서 볼 때에, 평온한 가정에 돌을 던진 한 여인의 떠남을 상당히 염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상당히 시간이 흐른 뒤에 호세아는 그녀를 무시무시한 처벌로 위협하면서, 울분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멜에게 당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 보기 위해서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여하튼 호세아는 언젠가 다시 나타나서 그녀의 새로운 남편에게 어떤 당연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녀를 사야 한다는 그런 당위에 도달되고 또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녀에 대한 평가, 얼마 정도 되겠다는 평가였을 것이다.
두 번째 남편은 고멜이 떠난다고 해도 결코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불쌍한 촌여인의 운명은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호세아가 복귀에 대하여 그녀와 한 첫 번째 대화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부부간의 금욕, 자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 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지낸 뒤에야 당신과 한자리에 들리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옛날에 사용한 방법보다 더 부드러웠다. 따라서 모든 것이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