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텍스트 유형(2)

1~3장 텍스트 유형(2)

그 다음으로 C.Bousôno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의는 회상해 낸 것 전체와 실재 사이에서 개념에서부터 개념으로의 상호 연결을 지지하는 하나의 표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앞에서 제시한 스케마는 단순하게 개념들을 서술하면서 C.Bousôno의 주장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 대신에 회상해 낸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의미 대신에 실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앞의 주장과 차이점이다. 여기서 회상해 낸 것과 회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보인다. 결정된 어떤 실재들은 회상하고 있는 것들 혹은 회상된 것들로 감지된다. 어떤 실재들은 회상하고 있는 것들 혹은 회상된 것들에 의해서 감지된다는 것이다. 아니면 회상된 것들 혹은 회상하고 있는 것들로 감지된다.
그는 한 문학유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 여인과 뱀이 등장하는 시를 예로 든다.우리는 이 시가 없지만 창세기의 이야기를 참조할 수는 있을 것이다.
뱀과 여인간의 관계 중에서 a라는 유형·관계를 우의적이라고 보았다. 뱀과 여인과의 관계에서 a를 우의적이라고 보았다. 이 a는 뱀. 여인과 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뱀을 회상해 내었다. a는 뱀과 여인의 실재적인 특성 혹은 상징적인 특성들 사이의 지속적인 연결점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뱀의 독은 여인의 계략이라는 면을 드러낸다. a는 상징적인 혹은 실재적인 특성들이 지속적으로 연결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b의 관계를 주장하는데 여인에 대해서 뱀이 갖고 있는 실재적 혹은 상징적이건 관계없이 여인에 대해서 이미 갖고 있는 체험은 활동 중에 있는 뱀의 특성들을 회상시킨다. 이렇게 여인이 갖고 있는 특성은 ‘아, 뱀과 같구나!’라는 것을 회상시킨다. 이런 것을 b의 관계로 보았는데 뱀에 대하여 이 시는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에 대한 체험은 뱀에 대하여 회상케 하는 것이다. “뱀 같은 여자”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여인에 대한 체험은 뱀에 대해 회상케 하는 원인이 된다. 이 스케마는 다음과 같다.

회상하고 있는 것 회상해낸 것
ꠐ ꠐ
여 인 뱀
ꠐ ꠐ
ꠌ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특성들1,2,3,4……
뱀의 여러 가지 특성들은 여인이 주어(여기서는 詩人)에게 제공한 어떤 확실한 정서에 의해서 결정된다. 회상해 낸 이 뱀의 특성들은 여인이 시인에게 제공한 어떤 확실한 정서에 의해서 결정된다. 또한 부수적으로 회상해 낸 특징들은 감정이랄까 정서를 강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뱀의 특성을 통해서 여인을 우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뱀의 특성을 통해서 여인은 아, 이러이러한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우의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서 16장을 통해 더 보충될 것이다.
그렇다면 호세아2,4-15는 이러한 식의 우의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해 볼 수 있다.
학자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의를 상징과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앞서 인용한 W.Stählin도 우의에 대치시켜 상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상징은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드러나는 것과 그것으로부터 의미되는 내용 사이에 기초한 근본적인 관계로 정의된다”
”우의의 반대로 상징들은 결정되고 가시적이며 역사적인 지상 영역에 대한 계시들과 지상영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깨닫게 하지 않는다면 즉 그분의 본질을 명상할 수 있도록 드러내지 않는다면 상징들이 영적인 개념 – 이런 영적인 개념이나 생각들을 지니고 있거나 이런 내용들을 기상천외하게 가시적인 것처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W.Stahlin의 상징에 관한 정의를 다시 한 번 반복한다.
그러므로 상징들은, 결정되고 가시적이며 역사적인 지상영역에 대한 계시들과 지상영역에서 발생되는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 자신의 계시를 깨닫게 하지 않는다. 그분의 본질을 응시할 수 있도록 드러내지 않는다면 상징들이 영적인 개념들이나 혹은 생각들을 지니고 있거나 이러한 개념들을 기상천외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해서 호세 2,4-15은 상징에 가까운가 아니면 우의에 가까운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 해답은 분명하다. 호세 2,4-15은 하나의 표상 혹은 우의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표상적인 것과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어떤 요소에서부터 다른 요소를 언급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즉 참조하고 비교할 수 있는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두 개의 다른 관계를 참조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뱀에서 여인에로의 관계, 즉 구체적인 두 가지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언어적인 차원에서 이 부분에서는 단지 한 번의 인칭대명사 איה(Hi)가 나오며 텍스트 안에 이것을 두 개로 분할시키는 어떤 요소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텍스트에는 엄격하게 이렇게 비유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텍스트는 비유적인 해석이 아니라 실재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이러한 확신은 이 호세 2,4-15을 에제 16장과 비교함으로써 가능해진다(본문 참조)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그 강대국의 종교나 신까지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준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친다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에제 2,2-3은 앞의 두 개의 개념 중의 하나인 예루살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한 여인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즉 어떤 여인의 출생에서 젊은 시절에 이르기까지 14절에 소개된다. 따라서 두 개념들은 앞에서 지적한 두 의미 중에 한 부분에서 이 텍스트를 우의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에제 2-14까지에서는 전에 언급한 B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자가 느끼는 감정, 이러한 감정은 그 도시의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역사를 이야기하도록 한다. 즉 우의적인 역사를 이야기하도록 한다. 예루살렘의 고통과 시련과 흥망성쇠는 예언자 안에서 한 어린 아이의 역사를 회상케 한다. 그래서 스케마를 적용할 때에 회상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대비되고, 회상하는 것은 어린 아이로 대비된다. 이 두 요소는 분명히 다른 특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예언자가 예루살렘에 대해서 갖게 된 감정에 따라서 선택되었다 이 특성들은 최초의 감정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에제 15-34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첫번째 의미의 우의적 형태, A형태가 발견된다. 예루살렘과 어린 아이의 일생에 있어서 실재적인 특성 혹은 상징적인 특성들 사이의 지속적인 연결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우상 숭배에 빠져 이방 국가들과의 계약을 맺는 백성에 대해서 기술하려는데 이러한 특성들은 각각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매음의 특성들과 부합된다. 에제 16장에 대한 이러한 의미의 우의적 방법 사이의 구별은 좀 더 상세한 연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윤곽은 잡을 수 있다.
호세 2,4-15까지는 우의적으로 해석되는 중요한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의의 두 개념들은 여인과 땅일 것이다. 하지만 4-15에서는 우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텍스트에 우의에로의 성향은 21-24까지 나오는 저자(편집자 또는 호세아 자신)에 의해서 우의에로의 성향이 지속된다. 여기서 2,4-15의 가능한 두 가지 가치가 분명히 나타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결혼식의 모습(16-18.21-22), 다른 한편으로는 땅에 대한 하늘의 대답, 땅과 땅에서 산출되는 열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20.23-4). 땅의 풍산 내지는 풍요에 대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스케마 3을 참조하라.
그렇지만 호세 4-15에는 명시적으로 우의적인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후반부와 연결시킬때에는 우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호세 2,4-15까지가 우의가 아니라 주석상 이 텍스트가 이스라엘의 종교적 역사를 위한 참된 상징을 형성하면서 에제키엘서와 같이, 다른 예언서들처럼 어떤 다른 후계자들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가능성을 수용한다면 앞에서 제시한 의미의 결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우의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으로 편집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첫번째로, 호세아서가 아니라 호세아 개인의 차원에서, 호세아 예언자의 메시지는 3장과 함께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는다면 완성되지 않는 자신의 개인적인 비극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점이다. 호세아의 예언자적 메시지는 자신의 고유한 비극에 의해서 주어지는데, 이러한 개인적인 비극은 3장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완성되지 않을 정도로 3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번째로, 만약 호세 2,4-15까지 이 부분이 하나의 우의가 아니라면 호세 1장 그리고 3장은 보다 실재적이고 극적이며 감동적인 우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재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호세아서 3,1-5까지는 상징적인 행동을 이야기하는가?
호세 2,4-15이 우의 또는 상징의 문제와 연결된 것처럼 여기서 예언자가 사용한 언어의 유형을 결정하는데 호세 3,1-5은 상징적인 제스추어의 문제와 연결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텍스트는 다음과 같은 방식 안에서 상징적인 예언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Wolff, 메이 등이 주장하고 있다.
3,1 상징적 행동을 실천하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 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나 좋아하는데도 이 야훼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
3,2-3 상징적 행동 자체에 대한 보도, 서술
나는 은 열 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산 뒤에 이렇게 일렀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 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지낸 뒤에야 당신과 한 자리에 들리다”
3,4-5 상징적 행동에 대한 해석
이스라엘 백성도 그처럼 오랫동안 왕도 대신도 없고 희생 제물도 석상도 없으며 에봇도 수호신도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런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저희 하느님인 야훼를 찾고, 저희 왕 다윗도 찾아 오게 되리라. 먼 훗날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벅찬 마음으로 야훼께 돌아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으리라.
이 문제에 대해서 K.W.Schmidt K.W.Schmidt, Prophetic Delegation: A Form-Critical Inquire, B.b 63(1982), 206-218
는 이 앞에서 Wolff가 지적한 세 개의 구조를 좀 더 보충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했는데, 그는 명령과 관련되지 않은 사실, 예를 들면 ‘왕이 없이’, ‘대신 없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러한 표현을 첨가시켜서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명령과 관련된 행동이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도 지적한다. 그래서 K.W.Schmidt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한다.
첫번째로, 상징적 행동을 실현하라는 명령이 3,1a에 나온다고 주장한다. 특징짓는 단어는 בהא(에합, 사랑하라), 두번째로, 상징적 행동에 대한 해석이 3,1b에 나온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상징적 행동에 대한 해석으로서 תבהאכ(케 아하밧, 그가 사랑하는 것처럼), 세번째로, 행동 자체에 대한 서술이 2-5a에 나온다고 주장한다. 행동 자체에 대한 서술도 작게 나누어서 2절에 행동(2절과 3a에 나오는 ‘말했다’), 아내에 대한 명령은 3절에 나온다(מימי יבשׁת, 테셔비 야밈, 많은 날들을 살았다 NIB와 공동번역성서는 미래로 번역한다; 나와 함께 살 것이다.
). 또한 2,2-5a의 행동 자체에 대한 서술의 세번째로서 명령에 대한 해석이 2,4-5에 나온다. 그러므로 K.W.Schmidt는 이 텍스트를 두 개의 상징적인 행동에 대한 서술로 해석하고 있다. 첫번째는 야훼에 의해서 호세아가 명령을 받는 것이고, 두번째는 호세아가 자기 아내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첫번째는 어떤 의미로 두번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여인의 참여는 능동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5의 ובשׁי(예셔부, 그들은 돌아올 것이다, 그들은 회심할 것이다) 안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3의 ובשׁת(테셔부, 그들은 살게 될 것이다)와 함께 그녀의 회심이 암시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K.W.Schmidt가 나눈 구조는 앞서 Wolff가 제시한 것보다는 더 정확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즉 3-5의 다른 의미를 지닌 어떤 연결점과 함께 명령받은 행동이 효과적으로 나오고 있다. 행동은 3b의 ובשׁת‘당신은 나와 함께 살 것이다’와 4a의 ובשׁי의 의미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살 것이다’라는 행동과 의미는 설명하는 כ(Ki)에 의해서 연결되고 있다. 즉 3b와 4a가 이 כ(Ki)에 의해서 연결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연결이 모든 곳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매음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사실 두 개의 긍정적인 편집이다. 즉 부정에 대한 부정이다. 매음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부정하고, 어떤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을 것(3a)이라는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부정이다. 또한 왕이라든가 희생 제물없이 살 것이라는 것도 부정적인 현실이다. 첫번째 부정의 경우에는 하나의 악을 제거한다. 즉 매음이라든가, 어떤 남자에 속한다든가. 두번째 경우에는 하나의 선을 소멸하고 있다. 왕이라든가, 통치자라든가의 선의 소멸을 예고한다. 이러한 연결점이 있으므로 그의 주장에는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Wolff의 의견보다는 보다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또한 1a와 1b에서 행동에 대한 설명과 그 행동 자체에 대한 해석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즉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들 사이의 관계는 비교하는 כ(커)로 설명되고 있다. 여기서 이 כ(커)는 첫번째 행동을 명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첫번째 행동의 기초가 되는 것을 제공한다. כ(커) 다음에 나오는 야훼가 이스라엘을 사랑한 것처럼, כ(커) 다음에 나오는 것은 첫번째 행동의 기초가 되는 그 이유를 제공해 준다. 또한 누가 이것을 수행해야 하는 지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야훼가 이스라엘을 사랑하듯이 부당한 여인을 사랑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여기서 명령은 상당히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간다(멀어져 간다) 하더라도” 오히려 지칠줄 모르는 사랑의 관대함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사랑(בהא)이라는 동사의 언어유희가 나타난다. 즉 예언자는 다른 남자에 의해서 ‘사랑받던’ 여인을 ‘사랑해야’ 한다. 마치 야훼께서 우상 숭배를 ‘더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듯이’. 따라서 호세 3,1-5은 호세아의 개인적인 체험의 의미가 불완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으로서 1장부터 3장에서 근본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좋은 의미를 거슬러 야훼의 명령은 전체 행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텍스트의 설화신학을 연결시켜서 지금 분석한 내용을 함께 살펴봐야 제대로 이해할 것이다. 텍스트의 유형은 이 정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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