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에 대해서

 

2장에 대해서


   이민족과 유다와 이스라엘의 단죄가 2장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 반드시 단죄의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관점의 신학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민족의 죄를 통하여 죄의 원형을 찾는 것이다.  텍스트를 불 때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야훼 신탁의 다섯가지 요소가 몇몇 단죄들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띠로에 대한 단죄(1,9-10), 에돔에 대한 단죄(1,11-12), 유다에 대한 단죄(2,4-5)에는 그 다른 단죄와 상이한 구성을 볼 수 있다.  1) 1,3-5.6-8.13-15;2,1-3에 나오는 이민족들에 대한 단죄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탁 양식의 세번째 요소인 죄의 실재적인 내용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띠로(Tyrus)나 에돔(Edom)이나 유다의 경우는 굉장히 길다.  1,9절을 보면 결정적인 벌을 취소할 수 없다는 선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가서는 사실 3-5절에 나오는 세번째 요소와 비교할 때는 훨씬 내용이 길다.  2) 히브리어의 구조도 조금 다르다.  3) 반대로 네번째 요소는 그 벌을 집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짧다.  4) 특별히 늘 다섯째 요소인 ‘야훼의 말씀이다’가 빠진다.  다시말해서 세번째 요소는 오히려 길은데 내린 벌에 대한 언급은 짧다.  5) 띠로에 대한 죄 ‘사람들을 온통 잡아 에돔에 팔아 넘긴 죄 때문이다’를 6절과 비교해 보면 근본적인 내용은 같다.  11절 에돔에 관한 죄에서 보면 ‘동기간에 정을 끊고 칼을 겨누고 앙심을 품은 죄’, ‘길리앗에서 임신한 여인의 배까지 가르며’(13절)라는 내용을 보면 비슷하다.  에돔에 대한 얘기와 암몬에 대한 얘기(13절)도 내용적으로는 같다.  6) 2,4을 보면 야훼께 대한 죄이지 인간끼리의 갈등이나 알력이 없다.  그 외의 이민족에 대한 단죄보다도 나중에 이런 등등을 보아서는 띠로, 에돔, 유다에 대한 단죄는 그 외의 이민족에 대한 단죄보다도 나중에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한다.  즉 다섯가지 요소가 다 없다.  있어도 짧거나 임의로 길게 했다.  유다의 경우는 심지어 다른 민족에 대해서 단죄할 때 죄의 원인을 신학화시켜서 하느님께 관한 죄로 환원시켰다.  이런 여러가지 작업들을 보아서는 띠로, 에돔, 유다에 대한 단죄는 나중에 첨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물론 그것의 반대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질문 : 작은 내용의 차이를 들어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논리가 가능한가?  대답 : 긴 설명이 들어 있는 것은 ‘에돔에 팔아 넘긴 죄’에는 신탁의 다섯가지 요소가 부족하고 가자에 대한 것(6-8)은 다섯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다. 반대로 띠로에서는 ‘야훼의 말씀이다’라는 것이 빠졌다.  셋째 요소가 띠로의 경우에는 히브리어의 구조가 다른 것과는 틀리다.  ‘…때문에’라고 하는 부정법이 다른 민족에 대한 단죄와는 다르다.  이러한 비 규칙적 요소로 볼 때 띠로에 대한 얘기는 원형을 놓고 떼고 붙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다섯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은 하나의 문학장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원형에서 벗어났을 때는 첨가와 삭제를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방법적으로는 먼저 문헌비판에 있어서 일관된 논리적인 얘기, 또는 그런 쟝르에서 벗어나거나 반대되거나 흉내를 내거나 할 때는 어느 하나가 모델이고 어느 하나가 나중에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도 볼 수 있으나 ‘야훼의 말씀이다’라는 것이 예언집 전체의 예언의 쟝르이다. ‘아모스가 말했다’ 이것은 후대에 들어간 것이다.  전형적인 예언집 쟝르에는 ‘야훼가 말씀하셨다’라고 하고나서 ‘나는 또는 너는 …’라고 표현된다.  어떤 예언이든지 정말 자기가 얘기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문학은 ‘야훼께서 말씀하셨다’그리고 ‘나는 또는 너는…’이라는 것이 들어간 것이다.  예언집 쟝르의 기원은 이민족의 예언집 형태에서도 동일한 양식으로 나온다.  그렇기에 ‘나 야훼가 선고한다’가 기본적인 양식이 된다.  그러나 아모스에서는 끝에가서 ‘야훼의 말씀이시다’라고 하는 것은 아모스의 문학적인 특징이다.  그러므로 ‘야훼의 말씀이시다’로 끝나는 것을 보아서는 야훼의 예언의 기본형식이 아모스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식에서 벗어난 것들, 길게 한 것, 히브리어를 변형시킨 것들을 보아서는 원형에서 첨가되거나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16절, 이스라엘에 대한 단죄를 보면 야훼 신탁의 다섯번째 요소에서‘הוהי םאנ(너움 야훼)’라고 나온것을 볼 수 있다.  보통 일반 야훼의 신탁에서는‘הוהי רמא (아마르-말한다-야훼)’로 되어 있다.  내용적으로는 같다.  그런데 문학적으로는 아모스서에서 הוהי םאנ가 여러 형태로 나온다.  또 아모스서에는 הוהי רמא 못지않게 הוהי םאנ도 많이 나온다.  약 열 세번쯤이 결론으로 나온다. 2,11과 9,12은 문헌비판적으로 보아서 הוהי םאנ로 나오지만 일반 야훼 신탁에서는 הוהי רמא로 나온다. 중요한 것은 ‘나 야훼가 선고한다’ הוהי םאנ라고 시작하고서는 끝에서 הוהי םאנ나 הוהי רמא 중 아무것으로도 되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에돔의 단죄도 일반신탁의 הוהי רמא와 다르다.  그러므로 הוהי םאנ도 후대에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9,12절도 הוהי םאנ가 나오기는 하지만 결론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후대에 붙은 것이라고 본다.  후대에 붙은 것이 너움 야훼로 나온다.  그외에 끝에 나오는 것은 2,16; 3,15; 4,3.5.8.9에 나오고 3,13; 1,8; 3,8에는 문장 중간에 나온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모스서의 경우에는 הוהי םאנ가 문헌비판적으로 보아서 후대에 붙은 텍스트에서도 나오고 아모스 예언자의 원 말씀에도 나오는데 대개의 끝에 나오는 경우에는 아모스의 말씀을 장엄하게 끝맺는 그런 경우에 나온다.  한편 הוהי םאנ를 아모스가 스스로 창작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예언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사용을 했지만 그 말 자체를 아모스의 창작물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구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