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에 대해서
5장은 구약사에서 ‘죽음의 송가 또는 만가’라고 한다. 즉 죽음을 가리키는 만가이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제목을 붙이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5장 전체로 보아서는 아모스 예언자로부터 나온 죽음의 만가이다.
문헌비판적으로는 여러 사람, 시대를 거쳐서 씌여진 것이다.
6절, 14절, 15절은 분명히 후대에 4-5절을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8.9절은 하느님이 심판을 하신 것에 대한 찬가(Doxologia)이다. 4,13절과 비슷하다. 6절, 9절, 13절은 후대에 붙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3장(사자…)과 정반대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즉 시대에 대한 해석이 3장에 나온 아모스의 전승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모스 예언자가 잘못을 보고 조용히 있을 까닭이 없으니까 그 시대에 대한 후대의 평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6, 8, 9, 13, 14-15절은 나중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번역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을 지적한다면, 2절은 ‘땅바닥에 쓰러졌다’로, 3절은 ‘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로, 4절은 ‘야훼가 이스라엘 가문에게 이렇게 말한다’로, 6절은 ‘나를 찾아라. 그러면 너희들은 살 것이다.’와 ‘야훼를 찾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로, 14절은 ‘선을 찾고 악을 찾지 말아라(악을 말고 선을 찾아라)’로 번역을 새로 하라.
순서를 보면 7절을 10절 위에 갖다 놓았는데 이것은 그대로 놓은 것이 좋다. 8절과 9절은 바꾸어 놓을 필요가 없다. 9절을 직역하면 ‘그는 가난한 자 위해 멸망을 보게 하시고 멸망을 강한 성읍 위에 갖고 오신다.’ 즉, 야훼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에 대한 부연 설명이기 때문이다.
1-3절, 4-5절, 7.10절, 11절(독립된 아모스의 말씀), 12절, 16-17절로 구분한다. 그 까닭은 어떤 테마에 근거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이 일정한 양식을 띄고 아모스의 말씀으로 규정할 수 있는 부분적인 쟝르를 보이기 때문이다.
1-3절
1.2절이 아모스가 일인칭으로서 부른다. 그런데 3절에 가서는 야훼의 말씀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한 텍스트라 보는 이유는 아모스가 무엇을 얘기할 때 야훼로부터의 정당화, 합법화를 받지 못하면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지금과 같이 단일텍스트로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절의 내용이 사실은 3절에 가서 자세하게 부연되기 때문에 얼른 보기에는 아모스의 말과 하느님의 말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분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
그 반대로 1절에서는 대상이 이스라엘이라고 하고 3절에는 성읍이라고 했기 때문에 나눌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구태여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성읍이란 삶의 중심지, 이스라엘 전부에게 삶의 근거를 알리는 상징적인 도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이나 성읍을 외적인 연장선상에서 보지 말고 기능면에서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