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5,7,10절 요약
‘죽음의 송가/만가’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기능의 특징으로서는 띠나라는 외형적으로 분명하게 내가 얘기한다는, 아모스가 죽을 것을 예고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다음에 7절에 가서 ‘저주 받아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은 예언서에 이스라엘을 심판할 때, 또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을 예고할 때 흔히 나오는 표현이다. 이렇게 본다면 아모스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장래가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왜 밝지 않느냐 하는 것은 7절,10절에 나온다.
‘טꚉꗬ(mishpat)’, ‘הꙌꕇꙃ(tsedakah)’할 때는 특별히 ‘הꙌꕇꙃ(tsedakah)’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보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의미에서의 정의’를 가리킨다. ‘טꚉꗬ(mishpat)’는 ‘드러난 모든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길’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저주받는 내용은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킨다. 그 정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성읍도 성읍으로서의 기능을 갖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깊이 볼 때에는 이스라엘은 야훼의 뜻을 찾지 않는데서 정의, 공평을 상실하게 된다. 야훼의 뜻을 찾지 않는 것의 특징은 결국 경신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에 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외적인 멸망은 성읍을 중심으로 이야기 되고 멸망의 원인을 설명할 때에는 성소의 이름이 나온다. 성소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잘못했느냐 하는 것이 외적으로는 성읍으로 나타난다. 성소에 대한 잘못이란 야훼의 뜻을 찾지 않은 데에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만가의 내용에서 우리 시대의 시대적인 상황을 분석할 수 있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생각할 일은 성소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성소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이것은, שׁꙜꕏ라는 단어를 볼 때에는 이스라엘에 어떤 주관적인 결정이나 이해보다는 자기를 떠난 하느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성소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예언자나 사제가 자기 뜻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드러나는, 알려지는 성격을 띈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 뜻은 예언자나 사제까지도 포함해서 모든이에게 다 의미가 있는 그런 하느님의 뜻이다. ‘모든이가 참여한다’는 것과 ‘드러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טפשׁמ(mishpat)’와 ‘הꙌꕇꙃ(tsedakah)’의 기능이다. 만일 이런 것을 빼놓는다면 달리 말하면 전담하는 사람이 자기의 뜻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면 하느님의 뜻은 단절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 시대의 순명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 시대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순명이란 결코 빌빌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모두가 참여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이고 그것을 예언할 때 이스라엘은 외적인 침입에 있어서 강해질 수 있을 수 있고, 내적으로 넘어졌을 때 일으켜줄 사람이 없는 상황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שׁꙜꕏ는 예언자에게 가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나오는 특수한 신학적 용어이다. 그런데 여기에 ‘나를 찾아와라, 그러면 살 것이다’에서 ‘찾는다’는 것이 5절 때문에 분명하게 정의가 된다. 달리 말하면 4절에 나온 שׁꙜꕏ가 구체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5절과 4절을 별 모순이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7,10,11로 이어지는 것이다.
베델, 길갈에는 저주의 내용이 있지만 브엘세바는 저주의 내용이 없다. 따라서 브엘세바에 대한 얘기는 후대에 붙었을 것이다. 브엘세바가 유다의 훨씬 남쪽이었다는 것을 참고하라.
‘불’에 대한 얘기는 1장에 이민족에 대한 저주를 할 때 테마로 여러번 나왔다. 이 ‘불’이란 것이 구약에 있어서는 주로 2가지로 쓰인다. 즉 하나는 심판으로 또 하나는 하느님의 현현으로 쓰인다(출애굽기에서의 하느님의 현현). 여기서는 심판에 대한 얘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