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요 나 




요나서는 어떤 예언자 이야기를 역사서술적인 이야기로 전함. 분명 신학적으로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신빙성이 없음. 역사적 기록으로 제시되는 것은 열왕기 하 14장 25절에 있다. 그러나 요나 예언자는 열왕기에 나오는 요나와 차이가 있다. 우선 자기 고향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열왕기에 있는 요나는 여로보암 2세 아래에서 국수주의를 옹호하였으나, 반대로 요나는 국수주의에 반대하고 이민족의 구원에 대해 하느님께 찬미드리고 있다. 또한 다른 문헌에도 니느웨에 파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없으며, 그밖에 니느웨 주민이 회개했다는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회개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요나서는 유배이후, 배타주의가 만행되어 신앙의 큰 위기를 지녔을 때 등장했을 것. AD400-300년경 집필연대로 추정. 배타주의를 비방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피조물 전부에게 미치는  성격의 것이며, 인간들이 쳐놓은 울타리를 깨뜨리는 성격이어서, 이민족들도 하느님께 순종하면 번영,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봄. 아마도 에즈라와 느헤미야 종교개혁 때 유배지에서 돌아온 공동체는 더욱 폐쇄적인 형태이어서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예언서와 지혜문학에 통달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인물로 추정됨. 예언서 중의 예레미야, 에제키엘, 제2이사야 문체가 반영. 요나서 작품은 범세계적인 하느님 다스리심이 나타난다. –   이사야 60-62장, 하깨 2,7 즈가리야 8,23, 말라기서 1,11


요나서의 배경인 니느웨는 전설적인 도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요나서의 2,7절의 찬미가에 다음과 같은 것이 나옴. 큰 고기의 배에서 나와 드린 찬미로서 이 표현에 포함된 내용은 니느웨에 있는 어린이와 동물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되지 않겠느냐? 라는 역설적인 질문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요나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니느웨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 글은 열왕기의 요나를 빌어서 쓴 예언서로서 역사서로서 보다는 하나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고 볼 수 있다.


구조를 보면 ① 요나가 도망침 (1,1-16) ② 요나의 회심 감사기도 (2,1-10) ③ 요나의 설교   니느웨 회개(3,1-10) ④ 요나의 잘못, 하느님 질책 하느님 자비 베품(4,1-11)


(3,1-10) 을 보면 여기에서 요나는 이들에게 회심촉구, 그때 니느웨 사람들은 회심한 것에 대해 요나는 하느님께 불평하자, 그때 하느님께서는 요나에게 말하심. 벌주고 상주는 것은 내 마음인데 왜 너는 그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냐 ? 내가 전하라는 것만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 라고 말하심.


그 당시 이스라엘만이 구원이 있다는 폐쇄적인 구원론에 보편적인 구원론이 크게 작용되었다고 봄.




이 글은 카테고리: 구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