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니야

 

스바니야




이름의 뜻은 ‘야훼가 피난시켜 주신다’이다. 이것은 그 시대 상황을 잘 설명한 것이다.


스바니야 신탁이 반영하듯이, 요시아왕 개혁이 이루어지기 전에 예루살렘은 앗시리아 제국으로부터 정치, 종교, 문화적인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로 인하여 신앙이 뿌리째   흔들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특히 앗시리아의 천체 숭배사상, 암몬족의 밀곰신 숭배, 가나안족의 토속신앙의 영향이 너무 컸다(1,1-5).


또한 외국 문물의 영향과 앗시리아의 유다왕국의 대신을 임명하는 권한(1,8), 거짓 예언자들의 만행(3,4)등이 많았다. 폭력과 사회불의(3,1-3;1,11). 위와 같은 온갖 제약이 그당시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바니야는 성전 주위에 머물면서 심판을 예고하고 동시에 열심히 살려는 이들을 격려하였다(1,7-9;3,5).


※ 구조와 내용 : 스바니야의 구조는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서 등의 예언서들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 유다에 대한 심판예언 (1,2-2,3 ; 3,1-8) : 야훼의 날, 곧 주님의 날에 대한 언급이다(1,2-2,3). 이 부분은 므나쎄와 아몬왕 시대에 우상숭배가 극도에 달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모스 5,18, 이사야 2,7에서도 주님의 날이 취급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다 스바니야서에는 더욱 풍부하게 취급되고 있다. 이 주님의 날은 우주적인 스케일로 다루어지고 있다. 보다 더 확대되고 어두움과 암흑의 날은 곧 통곡의 날이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2,1-3절에는 경고와 회심이 다시 요청된다. 따라서 이렇게 무섭게 심판을 예고하는 것은 그만큼 유다인들의 회심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반역의 도시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3,1-8) : 특히 지도자(고관, 판관, 사제 예언자)들이 경고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8절에서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교 백성들이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도록 초대하고 있다.




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심판예언(2,4-15) : 팔레스틴사람들(4-7), 모압과 암몬(8-11), 8절에는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 에집트(12절), 앗수르(13-15)에 대한 신탁이 있다.




다. 유다에 관한 구원 약속(3,9-20)


백성의 회개에 대해서 3,9-10에 걸쳐서 언급된다. 여기에서 이교 백성들의 회심이라는 주제에서 흩어진 백성의 귀환이라는 주제로 넘어간다.


3,11-13절까지는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남은 자와 그들의 신앙 자세를 표현하기 위해 처음으로 청빈을 가리키는 용어가 나타난다. 그것은 아나빔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가난이다. 명사 아나와에서 형용사 아니(가난한, 불쌍한)로 파생되어 이것의 복수가 아나빔이다. 이것이 명사화되어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의 뜻이 된다. 그런데 비교하여 비참한 약자라는 뜻으로 ‘달’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육체적인 의미가 강하다. 3,11-13절에 남은 자에서 가난한 자와 약자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환희라는 표현이 3,14-18절에 걸쳐서 나온다. 구원받은 이들의 찬양노래라고 볼 수 있다.


16-17절에 나오는 표현은 예루살렘에 대한 구원을 약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3,19-20절에서는 국가의 부흥과 재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스바니야서의 메시지 : 교만에서 비롯된 제약으로 인해서 가까운 장래에 재앙이, 즉 원수의  침략이 있을 것을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엄중한 처벌의 날인 주님의 날도 예고하고   다. 따라서 그것은 침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묵시적인 표현인 주님의 날로 연결된다. 이것은 아모스의 예고보다 더 확대되어 우주 전체의 재앙으로 된다.


하지만 심판예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에 대한 희망을 예고한다. 여기서 남은 자는 재앙에서 구원된 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표현으로서 겸손과 아나빔이 사용되었다. 주님께 달려들어서 피신처를 찾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영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스바니야라는 ‘야훼께서 나를 숨겨주신다’라는 의미와도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스바니야서는 물질적 의미에서 가난뿐 아니라 영성적인 의미에서의 가난 즉, 인간은 끊임없이  생명에 위협을 받으며 연명해 나가는 비참한 존재임을 하느님 앞에서 인정하고 승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스바니야는 시온의 딸로 표현하기도 한다(3,14절 참조). 북조 이스라엘이 패망하자 유다 이스라엘로 와서 정착한 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이스라엘의 멸망후 남유다로 넘어 온 사람들은 새로이 정착하느라 어려움이 컸다. 이들은 성전 주위에 머물면서 하느님과 가까이 지냈다. 유일한 위로자며 희망이신 하느님께로부터 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주께서 친히 자신들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3,15에서 고백한다. 이 피난민들에게 스바니야 예언자가 메시지를 전한다.     물질적으로 빈곤에 시달리고 소수인 그들이지만 불의한 재산을 탐내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자신들 안에 계심을 믿고 역경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승리를 기다리는 신앙의 눈을 가진 공동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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