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깨

 

하깨 (יꕀꖏ)


<- 성전의 재건 ->




1. 예언자 하깨


2. 저자문제


3. 단일성


4. 문체


5. 역사적 배경


6. 구조 분석


7. 내용 분석


8. 메시지


9. 편집자의 신학


10. 결론


11. 문제제기


참고문헌








1. 예언자 하깨




하깨는 성서에서 “야훼의 사자”(1,13)라고 불리는 유일한 예언자이다.1)


하깨는 다리우스왕 제2년 6월 초하루2)에 설교를 시작하여 그 해 9월 24일까지 약 넉달 동안 활약3)을 하였는데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고(하깨 1,14), 성전 재건축을 위한 예언활동은 즈가리야에 의해 계속되었다(에즈 5,1-2).


히브리어 ‘하깨’(יꕀꖏ)라는 말은 ‘나의 축제’라는 뜻으로 그가 축제(גꖎ)때 태어났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에즈라서에서 그의 이름은 두 번 명시되고 있다(에즈 5,1 ; 6,14). 우리는 그가 즈루빠벨 성전건축에 박차를 가하도록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그의 메시지가 성전 제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그가 ‘제의 예언자’(cultic prophet)였을 것으로 추정한다(1사무 10.9-10 : 2열왕 4,38 : 예레 35,4 참조).4)


구약성서 안에서 하깨라는 이름과 유사한 형태를 몇가지 발견할 수 있다. 므라리의 후손 하끼야(1역대 6,15), 가드의 아들 하끼(창세 46,16 : 민수 26,15), 다윗의 부인들 중 하나인 하낏(2사무 3,4)이 있다.


그러나 그가 예언자라는 것 이외에는 그의 조상이나 탄생배경, 생애와 죽음, 그리고 언제 ‘하느님의 사자’로 불림받았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예언자 하깨의 개인신상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피력한다.




1.1 익명의 예언자


    T.André는 하깨라는 이름이 ‘말라기’(나의 사자)처럼 이 책을 쓴 익명의 저자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본다. 그 이유로서 그의 예언이 축제일과 연관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여섯째달 초하루’(1,1)는 신월축제날과 연관되고, ‘일곱째달 21일’(2,1)은 초막절의 일곱째날이고, 2,18의 9월 24일은 성전 주초를 놓은 날이라는 것이다.5)




1.2 유배를 체험한 노인


    유대전승에 의하면 하깨는 생의 대부분을 바빌론 유배기간 중 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은 유대전승과 하깨 2,3에 근거하여 유배이후 함께 귀환한 사람으로 매우 연로했을 것으로 추정한다(Van Hoonacker, Mitchell, Elliger, Ackroyd).6)


Newsome은 그가 제의 정결 문제를 사제들에게 의논한 것으로 보아(2,10-13), 사제로 임명을 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보며, 또 솔로몬 성전의 영화(2,3)를 언급한 것이 그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면 포로귀환했을 때는 하깨가 이미 고령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7)


그러나 바빌론 70년의 기간을 감안한다면 굳이 하깨가 제1차 유배시에 잡혀갔던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솔로몬 성전의 영화는 간접적 체험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그의 열정으로 보아 그가 노년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8)




1.3 팔레스티나에 머물러 있던 사람


    Beuken은 하깨가 원래부터 팔레스타인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고 본다. 이 이론은 하깨의 이름이 귀환포로의 명단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 근거한다(에즈 2장 : 느헤 7장;12장). 또한 농경에 대해 깊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농부들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Beuken은 추정한다. 그러나 Baldwin은 이 이론에 대해 반박하며 귀환시에 하깨가 아직 소년이었으면, 귀환자 명단에 올라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9)


장일선도 하깨가 팔레스티나에서만 활동한 예루살렘 거주민으로서, 고대의 다윗 왕조 전승과 바빌론 포로귀환 집단의 전승을 다같이 이어받게 되었다고 본다.10)




1.4 유배지에서 귀환한 청년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하깨는 사제가문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바빌론에서 태어났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을 때 아직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전 재건의 목격증인이었으며 후에 사제들의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본다.11)




하깨는 다른 예언자들에게서는 보기 드물게 자신이 선포한 일이 곧장 성취된다. 즉 성전이 재건된 것이다. 이 밖에는 그의 활동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으나 LXX(137편, 145-148편)이나 Vulgata(111편, 145편, 146편), Peshitta(125편, 126편, 145-148편)에서 보면 몇몇 시편의 저자가 하깨와 즈가리야로 되어 있다.12)




2. 저자문제




하깨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공동체에게 직접 전해진 하깨의 메시지이고, 또 하나는 신탁을 둘러싼 ‘편집자의 틀’(editorial framework)13)이다. 대부분 주석가들은 하깨의 신탁을 소개하는 연대, 머리말, 청중에게 끼친 예언자 설교의 효과, 예언자를 3인칭으로 언급하는 표현 등은 편집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14)


J.L.Koole은 하깨의 언사들이 예레미야의 경우처럼 그의 제자들에 의해 필사되었다가, 제3자에 의해 간결한 증언 형식과 독특한 계시 형식이 사용되어 기술되었다고 본다.15) Beuken은 하깨의 편집자가 역대기 사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즈가 1-8장과 함께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16)


학자들은 ‘편집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즉 편집자는 Darius 2세에 대해 알지 못했고, 예언이 선포된 시기를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는 즈루빠벨이 메시아적 왕이 되리라는 신적 약속(2,20-23)에 대해 어떠한 논평없이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이것은 하깨서의 현재형태가 성전재건 기간 중이나 그 직후,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즈루빠벨이 죽기 전에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17)


Mason은 편집자 틀의 특징으로 “야훼의 말씀이 예언자 하깨에게 내렸다.”18)라는 표현이 5번이나 사용된 것은 성전 재건이 야훼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하깨의 신탁이 주로 공동체의 지도자인 즈루빠벨과 여호수아에게 내렸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대부분의 신탁은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며, 마지막 신탁은 유다의 총독 즈루빠벨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편집자의 틀은 신탁보다도 유다 지도자들의 역할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 지도자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19) 그리고 Mason은 편집자가 하깨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신정론적”으로 재해석했다고 본다. 즉 새 성전을 지음으로 해서 하느님의 현존이 그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편집자는 하깨가 야훼의 예언자임을 천명하면서 동시대인들에게 야훼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한다.20)




3. 단일성



하깨서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2,10-19의 단일성’에 대한 것이다. 즉 2,10-14과 2,15-19이 그것인데, 이 두부분에서는 어조의 변화 및 연대의 상이성이 등장하고 있다. 2,10-14의 수신자는 사제들로서 3인칭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반해, 2,15-19의 수신자는 2인칭으로 묵시적으로 백성들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2,18에 의하면 성전의 주초를 놓은 날을 9월 24일로 보도하는데, 1,14에서는 성전을 짓기 시작한 날이 6월 24일로 나타난다.21)


2,10-14과 15-19이 의도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표지들도 발견된다. 2,14은 “그들 손이 한 모든 일”(םꕛיꕊꖾ הꙷ꘥ꗫ־לꗏ)이 부정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어휘가 2,17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서 반복되고 있다(“너희 손이 한 모든 일” םꗋיꕊꖾ הꙷ꘥ꗫ־לꗏ). 이렇게 동일한 구절의 반복은 앞 부분과 뒷 부분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10절 표제의 날짜(“9월 24일”)가 18절에 다시 나타나는 것도 두 본문을 하나로 결합시키려는 편집자의 의도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독립적이었던 두 개의 신탁이 이차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2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2,15-19 전체를 1,15a 다음에 삽입하고 2,18b를 첨가된 것으로 취급하는 시도가 Rothstein 이래 있어왔다.23) Mason도 1,15a는 2,15-19의 서론이고, 1,15b는 2,1-9의 서론이라고 보고 있다.24)


Elliger도 이러한 입장에서 1,15a + 2,15-16.18a.19 / 1,15b + 2,1-4.5b.6-9 / 2,10-14 / 2,20-23으로 조정한다. BHS도 2,15-19를 1,15a에 연결시키고 있으며, 2,18b는 첨가된 것으로 본다. 또한 Chary에 의하면 예언서의 다른 곳에서는 날짜가 예언의 끝부분에 위치하는 예가 없고 언제나 서두에 등장한다는 것이다.25)


그러나 May는 2,14의 “이 백성”(הꖊꕘ־םꘝꕗ)과 “이 민족”(הꖊꕘ יוֹגּꕘ)이 야훼의 동일한 백성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2,14과 2,15-19이 동일한 대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26)


이와 같은 주장을 토대로 우리는 하깨서의 현재 형태가 지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고찰할 수 있다.


첫째로, 2,10-14에 대한 전통적 해석(Rothstein)은 이 언사를 통해 하깨가 성전 재건에 있어서 사마리아인들을 제외시켰다고 본다.27) 그러나 현재의 본문에는 14절의 선행사를 사마리아인들에 연결시키는 아무런 암시도 없다. 다만 ‘한 백성’만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유대인의 남은 자’이다. 따라서 이 신탁의 편집적 형성은 유대인들에게 대한 훈계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제들의 결정은(2,10-14)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더구나, 이 구절의 내용은 어떤 백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 손이 한 일”과 “그들이 바치는 것”이 부정하다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1,2에 따라 예루살렘 공동체 자체에 대한 경고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더욱이 “그들 손이 한 일”, 즉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그 자체로 거룩함을 보증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첫째로, 하깨서는 성전 재건보다 더 넓은 전망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배 이전 예언자들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빈번히 인간적 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경고하였다. 비록 하깨서의 분량은 적지만, 위대한 예언적 전승들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보다 넓은 전망은 성전 재건이 단순히 외적인 건축물의 건립이 아닌 공동체 자체의 생명과 직결되며 공동체의 재건이 거기에 근거하고 있음을 하깨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28)


둘째로, 2,15-19의 기능도 편집자의 의도에 의해 본래 의미가 수정되었다. 즉 이 신탁은 9월 24일의 사제들의 결정에 부착시킴으로써, 축복의 약속은 주초가 놓여진 날에 연결되었다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에 관한 신탁이 선포된 날쪽으로 재설정되었다. 결과적으로 주초를 놓음은 그 독립적인 의미를 상실했고, 이스라엘의 회개의 표지로 변경되었다. 성전 재건의 실패와 그에 따른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한 농작물의 실패는 이스라엘이 회개하는 것에 대한 실패의 표징이었다(2,17). 역으로 축복이 약속되어 있던 주춧돌의 놓음은 새로운 영(靈)의 한 표징이었다(1,14). 특히 편집자는 2,17에서 아모 4,9을 인용하면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계속 응징하시는 분명한 징조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느님께 돌아오지 않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축복을 거두어가신 하느님께서 믿음과 순종에 대한 응답으로 축복을 주권적으로 주실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29) 결론적으로 정경화 형성은 역사적인 사건을 그 참된 종교적 의미와 관련시켜 해석했으며, 그로 인하여 그것에 다른 맥락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30)




4. 문체



Kittel판 히브리 성서(BHK), RSV, NRSV에서는 하깨서가 모두 산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Stuhlmueller는 하깨서의 이 같은 문체는 하깨가 활동하던 시대에 도시가 폐허가 되었으며, 한발이 계속되었던 만큼 이사야의 시적인 운율이나 예레미야의 간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각박한 시대였기 때문에 예언자 중 하깨만이 산문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31) 그런데 BHS는 1,4-11과 2,3-9 등이 시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 Coggins는 하깨의 신탁이 본래 시 형태인지 또는 운율적인 산문체인지는 구분하기 힘들다고 말한다.32)


하깨의 문체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마다 상반된 의견을 제시한다. Reuss는 하깨의 문체가 가장 색깔없는 산문체라고 본다. Engnell은 하깨 예언자 자신의 말들을 운율적으로 재배열 할 수 있다고 보았다(Benzen도 이에 동의하였다). Rudolph도 내적 혹은 외적 증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문의 철저한 수정을 통해 ‘운율적’ 형식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보았다.33)


Baldwin은 “하깨가 직접적으로 또한 강경하게 시적형태나 산문체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깨가 자신이 애용하는 명령을 자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 생각해보아라(1,5.7 ; 2,15.18), 용기를 내라, 일을 시작해라(2,4). 하깨는 또한 선대의 예언자들이 사용하던 언어들을 자주 언급한다(1,6 비교 호세 4,10 : 미가 6,15 ; 1,11 비교 호세 2,9). 그리고 적절한 은유를 사용하기도 한다(1,6). Baldwin은 또한 하깨서의 문체적 특징으로서 ‘사자형식’(messenger formula)의 빈번한 사용을 들고 있다.34)


서인석은 현재 전해진 하깨서의 유형을 ‘신탁운문’으로 보고, 2,20-23을 제외하고는 산문체로 이루어졌다고 본다.35)




5. 역사적 배경




5.1 페르시아의 정변




기원전 538년 고레스(Cyrus)의 칙령에 따라 다윗의 후손 세스바살(Sheshbazzar)36)의 인솔로 첫번째 귀향한 유다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서 재건작업을 착수하였다. 그들은 우선 ‘번제의 제단’을 세웠다(에즈 3,1-5). 그리고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B.C. 536/7년-에즈 3,8). 그러나 제1차 성전공사는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 공사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고 페르시아 왕에게 예루살렘이 반란을 꾀하고자 성벽을 쌓는다고 거짓으로 진정하여 공사를 중단시켰다(에즈 4,1-24). 따라서 성전 공사는 중단된 채 16년이 지속되었으며, 유다에는 연이어 흉년과 한발로 격심한 경제적 궁핍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페르시아왕 캄비세스(Cambyses, 529-522)가 죽고 다리우스 1세(Darius, 522-486)가 등극37)하게 되었는데, 이때 하깨와 즈가리야가 예언자로 등장하였다(에즈 5,1). 하깨의 선포는 하느님의 왕국이 도래하기 위해서는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38) 제2성전은 마침내 다리우스왕 제2년인 B.C. 520년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다리우스왕 제6년 아달월 삼일인 515/6년(에즈 6,15)에 완공하게 된다.




5.2 종말론적 사고의 대두




이와 같은 격동과 불안의 연속적인 사건은 이스라엘과 Diaspora 사회에서 제2이사야와 고레스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종말론적 기대’가 다시 소생토록 하였다. 예언자 하깨와 즈가리야는 520년경에 나타난 종말론적 긴장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선포를 통해서 종말론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들은 야훼의 종말론적 도래를 위한 길을 예비하려면 성전을 재건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구원의 시대가 임박했다는 표지로 하깨는 즈루빠벨을 ‘야훼의 종’으로 선포하고(하깨 2,23), 즈가리야는 그가 쓸 왕관을 준비토록 하였다(즈가 6,9 이하). 또한 이 시대의 이러한 혼란으로 말미암아 바빌론에 머물러 있던 유대인 사회에서도 종말론적 기대와 열성으로 ‘귀향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메시야로 지목된 즈루빠벨은 더 이상 언급없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 버렸고, 하깨가 세상의 모든 민족이 보화를 희생제물로 가져오리라(하깨 2,6-9)는 기대도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520년경 일어난 종말론적 움직임들은 유대 공동체의 ‘신정론(神政論)’의 확립을 가져왔다. 재건된 성전은 이스라엘 종교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온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게도 이상적인 중심점과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정론적 사고는 ‘사제 계급’의 확립을 초래했다.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경신례가 이루어졌고, 사독 가문의 제사장 중에서 대사제가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대사제는 경신례 뿐만 아니라 왕권이 지녔던 권위도 함께 부여받게 되었고, 기능면에서도 국가의 보호자로 추앙받게 되었다.39)




6. 구조 분석




하깨서는 도합 38절로 구성되어 구약성서 중에서 오바디야서 다음으로 짧은 책이다.


하깨서의 현재 형태는 ‘4개의 예언적 신탁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각각은 연대 형식(date formula)으로 시작되고 있다(“다리우스왕 제2년…” 1,1 ; 1,15b-2,1 ; 2,10.20). 이 구조 안에서 다양하게 차이가 나는 구두 연설의 형식들이 보존되어 있다(논쟁, 경고, 약속, 사제의 결정 등).40)


Chary는 하깨서가 대칭적 구조로 아래와 같이 의도적인 편집이 이루어졌다고 본다.41)















질       책   : 1,1-5

궁핍한 생활   : 1,6-11

은총의 회복   : 1,12-14

메시아의 약속 : 2,2-9


질       책   : 2,10-14

궁핍한 생활   : 2,15-17

은총의 회복   : 2,18-19

메시아의 약속 : 2,20-23




하깨서의 구조에 관해서는 학자들 마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42), 하깨서의 현재 형태를 토대로 구조를 분석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신탁(1,1-15a)   : 1,1-11(1,1-2 ; 3-6 ; 7-8a ; 8b-11) / 1,12-15a


두번째 신탁(1,15b-2,9) : (1,15b-2,5 ; 2,6-9)


세번째 신탁(2,10-19)   : 2,10-14 / 2,15-19(2,15-17 ; 18-19)


네번째 신탁(2,20-23)




7. 내용 분석




7.1.1 성전재건에 대한 명령 (1,1-11)


    이 구절은 ‘논쟁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 중심 구절은 8절이다. 예언자는 하찮은 핑계와 이유(“아직 때가 아니다”)로 성전 재건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찾는 지도자와 백성들을 가차없이 질책한다. 또한 흉작과 가뭄과 물질적인 빈곤이 하느님의 심판과 직결됨을 하깨는 선포한다. 따라서 하깨는 생활의 철저한 변화와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을 성전 재건을 통해 확인하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기쁨이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7.1.2 백성들의 긍정적인 응답 (1,12-15a)


     편집자는 하깨의 선포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예언자의 선포가 지닌 성과는 “백성은 야훼를 두려워했다”는 문구를 통해 보다 자세히 규정된다. 이 말은 백성들이 새로운 형벌을 무서워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눈멀음을 확인하고 놀랐다는 말이다. 그들이 눈이 멀었을 때는 하느님이 자신들의 운명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느꼈으나, 이제 그들은 성전 재건을 등한히함으로써 하느님의 주권을 무시했던 행동을 후회하고 마침내 성전 재건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성전 재건의 계기가 인간적인 노력보다는 하느님의 주도권에 근거함 – 하느님께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영을 일깨우심 – 을 역설하고 있다.




7.2 새성전에 약속된 영광 (1,15b-2,9)


    첫 성전보다 영화로운 성전이 되리라43)는 신탁이 중심 주제이다.


하깨의 두번째 메시지는 7월 21일(B.C. 520년 10월 17일)에 선포되었는데, 이 날은 수확의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 제7일로서(레위 23,39-44) 나흘 뒤면 속죄의 날이 된다(느헤 9,1). 이때 하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다시 짓는 일에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여 위로의 말을 선포한 것이다.44)


이 부분은 하깨서의 핵심으로서 성전의 영화와 만방이 그 성전에 보낼 찬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신탁의 수여자는 즈루빠벨과 여호수아만이 아니라 모든 ‘남은 백성’(2,2)에게 주어진 것이다. 특히 2,6의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은 곧 다가올 역사적 사건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성전재건은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종말론적인 사건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그리고 “모든 이방민족들”도 뒤흔들리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이 세속속인 정치 현실 속에서도 활동하고 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전 재건이라는 사건이 민족들과 세상을 뒤바꾸는 힘을 초래한다는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경신례를 통해서 기억이 되며 그 의미를 되새기기 때문이다. 즉 경신례는 하느님께서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45) 따라서 이 구절은 하깨가 페르시아에 대한 정치적 반란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은 하느님이 그 성전에 현존하심에 따라 역사 안에서 이룩하실 뜻을 기다려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46)


특히 재건될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뛰어날 것이라는 말(2,9)은 단순히 새 것이 옛 것의 반복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새롭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또한 “모든 이방민족들이 보화를 가지고 오리니”(2,7)라는 표현은 메시아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이사 2,2-4 ; 60,6-9), 메시아가 성전에 현존하시는 것은 곧 이 구절이 뜻하는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 다.47) 하깨는 진정 성전 재건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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