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장의 연구

 

I. 2장의 구조 및 주석




◎전체적인 특징


1) 야훼와 사탄의 대화는 1장과 비슷하지만 상승적인 요소가 있다.


① 욥의 소유물이 아니라 욥의 몸에 관한 것이다.


② 욥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고 사탄은 주장한다. 즉 생명까지 잃는 극한 상황에 가면 욥의 마음이 바뀔 것이라고 사탄이 주장한다. 4절의 “가죽으로 가죽을 바꿉니다.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못할 것이 없는 법입니다.”는 사탄의 말은 소유물까지는 하느님이 울타리를 쳐주셔서 그러했지만, 목숨에 관한 한 욥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삶의 원칙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까지도 자기의 목숨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의 윤리원칙인 “Do ut des” 법칙(네가 나에게 해주길 바라고 나도            한다)이 하느님에게도 통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법칙은 인간의 정의로서 상호교환된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신앙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느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해주시기 때문에, 해주실 보상을 믿고 나도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4절에서 사탄은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2)부인의 등장


부인이 나오면서 가장 가까운 인간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편에 나오는 고난의 특성(모든 고난의 특성)의 하나. 병과 개인사가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도 도외시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된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형태는 병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소외와 무시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고 무관심 – 윤리적 감각을 상실 – 하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면 도외시되고 잊혀지고 정당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은 끊임없이 증진되고 기억되나 나쁜 것의 연속성은 구조적으로 단절된다. 좋은 쪽만 생각하고 남아 있는 나쁜 쪽은 잊어버린다. 선의 밀도만큼 악의 깊이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는 우리나라의 3.1운동과 광주 민주화 운동과 같은 경우이다. 고통받았던 독립 운동가나 그들의 후손, 희생당한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희석되고 언론에서 조작된다. 유다인, 셈족의 문화권에서는 용서는 하지만 절대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선의 밀도와 깊이를 이해할 수록 악의 깊이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1장과 2장은 상승의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공통점 


유혹과 그 유혹을 이기는 것(극복)이 나온다(같은 틀 안에 있다).




1. 2장 1 – 6절 : 천상대화 Ⅱ


【2절】또다시 하늘의 영들이 하느님 앞에 모임. 사탄과 하느님의 대화 시작


【3절】1절에 관한 이야기. “그는 여전하지 않느냐” 의 문구는 욥의 온전함이 계속 강하게 남아 있다는 뜻으로 온전함과 관련되어 있다(הꖯꚡ 툰마  ← םיꖩꚛ 타민; 온전함).


온전함의 특징 – 사탄의 생각에 온전함의 기준은 목숨 유지가 근본이다. 하느님의 허락하에 없애려 했으니까 이제는 변해야 당연하다(일반상식). 그러나 욥은 자기 목숨을 뛰어넘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까지 뛰어넘어 하느님께 충실한다. 이것이 신앙이다. 마치 사도들이 예수님 사후에 무서워서 꼼짝하지 못했다가 신앙이 온전해진 다음에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죽음을 불사하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욥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든 없든 하느님께 언제나 충실했다. 바로 Do ut des의 법칙까지도 극복했던 것이다. 인간의 목숨은 Do ut des에 근거하지만, 신앙은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마치 종이 다만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물러갑니다 하는 식이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한 보상이 있겠지 할 것이 아니다.


‘온전함’은 달라지지 않은 욥의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4절】 “가죽으로 가죽을 바꿉니다” – Commentary에 의하면 고대 격언을 원용한 것으로 봄. 자기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면 인정사정 없이 달라진다는 뜻. 수메리아 욥기 등에 이와 비슷한 격언이 나온다.(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님).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업적을 남기면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 그러나 이 점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신학적으로 잘 정리하였으나 나중에 잘못 이해된 것이 신명기의 계약 신학이다. 즉 신명기의 계약 신학의 십계명을 업적으로 잘못 이해하였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도록 어떠한 계명을 잘 지켜야 된다고 이해하였다. (십계명을 조건으로 이해하였음). 이렇게 잘못된 해석 때문에 예수님 시대에는 수많은 명령과 금령이 있었다(명령 356개, 금령 248개, 합 604개). 이것은 업적만 강조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사도 바오로도 모세의 법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공로를 쌓을 수 있는 힘(은총)은 주지 못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생각을 잘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결국 사탄이 욥의 신앙도 별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표현임.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 이것은 생명에 관계된 이야기.


“제가 보장합니다. 그는 반드시 당신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 ‘뼈와 살을 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에 따라 다른데, 6절에 ‘좋다. 내가 그를 대신하여 친다. 그러나 그의 목숨은 건드리지 말아라’ 했는데 7절에서는 사탄이 욥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게 했다. 이 고통은 부스럼이었다. 이것을 나병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나병은 당시로서는 죽는 병이다.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은 건드리지 말아라’고 하셨는데, 사탄이 와서 욥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나병을 줄 수 있었겠는가. 부스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랍비들에 의하면 여기에 해당하는 병이 24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쨌든 한 가지 특성은 이런 병을 앓는 사람은 공동체에 같이 살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전염병이고 하니까 별다른 길이 없어 밖에 나가 살도록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목숨에 대해서 위협을 느낄 때는 달라질 것이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그랬다. ”는 것은 온몸이 그렇다는 것. 욥이 건강에 관해서 목숨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온전히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성을 띤 표현).




2. 2장 7 – 10절 : 2차 신앙의 위기


【8절】“잿더미에 앉아서 토기 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 너무 가려운 병으로 짐작된다. 욥이 공동체밖에 있었는가, 안에 있었는가? 반드시 공동체밖에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집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의 전통에 입각한 짐작).


“잿더미 위에서 앉아서” – 보속을 하는 의미. 자기가 비천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9절】“당신은 아직 요지부동이시군요.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 아내의 등장. ‘요지부동이시군요(9절)’의 히브리어가 ‘여전하지 않느냐(3절)’의 히브리어와 같다.


ꗘꚗꗪꚙꔶ קיꖀꖖꗭ ꗘד꘢  (9절)                        וֹתꗲꚙꔶ  קיꖀꖑꗭ  וּנּꕋ꘢ꕵ  (3절)


오드카 마지크 버트마티카                         에오덴누 마지크 버트마토


끝에 어미가 다른 것은 대화체가 다른 것이지 원형은 똑같은 것이다. ‘너의 온전함이 점점 더 강해지고 견고해진다’는 것인데 ‘요지부동이군요’라고 의역했다. 이런 점이 공동번역의 문제. ‘여전하지 않습니까’와 ‘요지부동이군요’가 히브리어로 똑같은데 너무 의역을 해 버렸다. 온전성은 야훼께 대한 충실성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욕을 하고 죽으시오” – 하느님을 거부해라. 이점에 있어서 아내의 말과 사탄의 이야기는 똑같은 것이다. ‘욕을 하다’는 ‘저주하라’는 이야기. 당시에는 하느님을 저주하면 당연하게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죽는 것이 욥의 고통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고통의 심함을 표현), 또 다른 의견은 너무 어쩔 수가 없는 그런 상태이기에 하느님께 대한 저주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마다 않고 불사하는 상태로 보기도 한다.


1장에서는 아들이나 재산이나 자녀들이 공격당했으나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데, 2장에서는 목숨 외에는 다 사탄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공격의 대상은 생명의 경계선까지 간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 가면 남는 것이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뿐인데, 그 애착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야훼께 대한 기대마저도 저버리게 한다. 그러면 그것은 온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사탄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욥의 대답을 보면 ‘당신조차 미련한 여인처럼 말하다니, 우리가 하느님께 좋은 것을 받았는데 어찌 나쁜 것이라고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라고 아내를 꾸중하며, 아내를 미련한 여인으로 인식한다.


욥이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고 땅에 엎드리는 것은 자신이 비천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10절】“당신조차 미련한 여인처럼 이야기하다니” 


미련하다는 것 ( לꔪꗺ 나발)은


1) 낮은 지위에 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 무시당하는 사람들, 이름없는 사람들(잠언 30,22). 


2) 생각이 얕은 사람들(예레 17, 11).  이런 사람들을 지혜문학 등에서는 무시당하는 사람으로 여김. 그 반대는 생각이 깊거나 뛰어나거나 고상한 것(이사 32, 5-8; 잠언 17,7 참조). 시편 74, 18절을 보면 무시하고 아주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사람은 늘 거스르는 생각 , 반대하는 생각, 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백성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미련한 백성들 또는 백성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신명기 32, 6은 행동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사람(경거망동하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으로 봄. 경거망동의 특징은 품위 없는 것, 명예가 따라오지 않게 하는 것, 자기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동(1사무 25, 25 참조).


자기의 명예를 파괴하는 행동, 진실되지 않은 말 등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다른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모욕을 끼치는 것이다(시편 39, 9 참조).


시편 74,18-22보면 하느님도 무시한다. 따라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불안하고 소외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련하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현실을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에 있어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는 것이다(시편 14,1참조).


신학도들이 세상이나 사람들을 볼 때 정말 얼만큼이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말을 받아 장로들에게 이야기할 때, 사실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말씀만 하신다. 그런데 장로들에게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므로’라고 이야기한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벌써, 번갯불을 보고 나팔 소리까지 본다(출애 20,18)고 되어 있다. 천둥소리도 본다고. 듣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거리가 서로 들락날락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출애 4장이나 10장을 보면 우리가 하느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우리가 진정 하느님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러한 요소까지 다 고려해야 된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고 장로들에게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다고 말했듯이 번갯불이나 연기자국이나 나팔소리나 다 본다는 쪽으로 동일시해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고려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미련하지 않은 사람이다. 누가 그렇게 얘기하데 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즉 하느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하느님께 대한 신학을 우리가 실제로 참고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하느님을 우리 생활에 고려하고 말이나 행동을 한다는 것이 한 문장이지만 얼마만큼 깊어져야 되는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10절】“좋을 것을 받았는데”  – 흔히 ‘라칵’(히브리어) 동사가 쓰이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고 유난히 לבק (까발)을 썼다. 왜냐하면, 단순히 받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시는 것을 내가 인정하는 그런 의미. 동의하는 의미. 달리 말하면 좋은 것을 줄 때는 동의하고 찬미하고 고백하나 나쁜 것을 줄 때는 그렇지 않는다는 것. 또 하나 욥이 하느님을 고려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아내는 하느님을 제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대조될 때, ‘나쁜 것이라고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에서 나쁘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지 이런 하느님이 주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하느님의 영향하에 있는 것이다 욥은 하느님의 영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사탄이 하느님의 영역하에서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욥은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다. 욥의 지혜의 특성이 어디있는가? 하느님의 영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영의 모임에 참여한 사탄은 현장에서 하느님께 나쁜 것도 하느님의 영향하에 있음을 이야기 들었다. 욥은 지혜롭다는 것은 여기 참석하지 않았으면서도 이것을 알았기 때문. 그래서 욥기가 지혜문학의 대표적 특색을 띤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인은 그렇지 않다. 나쁜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3. 2장 11 – 13절 : 세 친구의 방문


2,11-13에서 이야기는 반전되고 있다. 2,11-13은 3,1-2과 함께 3,3이하의 서론 구실을 한다.




【11절】“세 친구가 각 지역에서 함께 왔다”는 내용은 사방에서 왔음을 뜻하는 문학적 표현이다.


① 데만 ; 에돔지방, 남쪽 아랍계통, 사해 동남쪽.


② 수아 ; 유프라테스강 중간지역.    빌닷 ; 초기 아라매아 이름 또는 가나안 이름


③ 나아마 ; 정확한 지형 추측불능.    소바르 ; 레바논과 관련


* 욥의 세 친구에 대한 서술은 사방에서 왔다는 포괄성을 암시한다. 또한 친구는 고통받는 친구를 당연히 찾아 나서야 함을 나타낸다. 이러한 친구들의 모습은 가장 가까운 부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부인-비난 / 친구-위로


위로해준다  –  깊게 숨을 쉬게 해 주는 것, 편히 숨을 쉬게 해 주는 것, 즉 고통받는 이의 마음을 가볍게하여 숨을 크게 하는 것. 이것이 위로이다.




【12절】그전의 욥과 다른 모습


12a는 인간적으로 수용하기에 거리가 떨어져 있음을 묘사


12b “목놓아 울고, 옷을 찢는다.” – 친구들의 동정. ‘먼지를 위로(날려) 머리에 뿌렸다.’- 고대의 슬픔을 나타내는 예식이며 악한 영향을 물리치는 예식이다(출애굽 9,8-10은 이 예식을 변형해서 마술적인 행동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과 같이 상당한 부를 누리는 현자들로 볼 수 있다.




【13절】“친구들이 입을 열지 못했다”(3,2의 ‘입을 열어’와 대조됨) – 이유는


① 욥의 고통 자체를 수용하기가 어려움.


② 욥이 왜 그러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의 의심으로, 위로하러 왔으나 친구들은 그들의 본시 계획까지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욥의 고통을 수용할 수 없었다.


 




4. 2장 1-10절의 신학적 의미


1) 욥과 하느님의 관계는 노예적 관계가 아니다. 맹목적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욥과 하느님의 관계는 이익 관계가 아니다(Do ut Des의 관계가 아니다).


3) 욥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자유를 기초로 한 예속 관계이다. 자기 중심의 관계가 아니라 생명까지도 포함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관계이다.


4) 욥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의 일을 찬양하는 온전성(םיꖩꚛ הꖯꚡ 툼마 타밈; 완전한 성실성)이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 대해 어떠한 법적권리도 없으며 하느님께서 주시면 어떤 것을 주셔도 받아야 한다. 인간은 다만 한시적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점을 욥은 인정하고 동의한다. (Job 1,21, 2,10)


5) 이제 욥은 ‘온전성’을 통해 인간성의 대표적인 대안, 즉 신인상(新人像)으로 제시된다. 반면 사탄이나 여자의 모습은 재래적 인간, 즉 온전성이 결여된 인간상을 드러낸다.



5. 1 · 2장의 서론적 기능


1장과 2장 서론의 내용은 신종 인간 욥이 하느님을 어떠한 과정을 겪으면서 만나고 있는가를 알려주며 욥이 하느님을 만날 때부터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지는 3장 이하에서 나타난다. 결국 마지막 결론인 38.1(시나이산의 하느님), 42장(창조하시는 하느님)에서는 이스라엘 전통의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다. 마치 공동체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의 표본이 되듯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한 개인으로는 인물로 욥을 들 수 있다. 특히 욥은, 온전성을 보존하고 그것을 일생동안 찾아가야함에 대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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