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1. 말씀읽기: 마태오 26,67-75
67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쳤다. 더러는 손찌검을 하면서, 68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였다. 69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70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71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72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73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74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75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중에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내가 베드로 사도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67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쳤다. 더러는 손찌검을 하면서,
유다의 배반으로 붙잡히신 예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합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면서 따랐지만, 이제 밤이 되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이 판을 치니 그들의 모습을 돌변합니다. 그들에게 잘못을 행하지도 않으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예수님을 주먹으로 쳤습니다.
가끔은 나도 돌변합니다. 친하게 지내다가도 나와 상관이 없어지면, 내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돌아서 버립니다. 그리고 나와 상관있는 사람의 문제라면 마치 자기 일처럼 달려듭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마지 원수인양 그렇게 달려듭니다.
68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였다.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려 놓고 모욕을 합니다.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맞혀다 하더라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더 조롱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예수님! 당신께서 하느님이시라면 저에게 이것을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믿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또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조롱하고 있는 분이 누구신지 알았더라면 감히 그러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끔은 나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업신여길 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잘 모르고 업신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더 나아가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69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시자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스승님의 일이 궁금해서 따라왔던 베드로 사도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녀 하나가 베드로 사도를 알아봅니다. 늘 스승 옆에 계셨던 베드로 사도의 얼굴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그 하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하녀는 베드로 사도의 얼굴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가끔은 “저 사람들은 나 인줄 모를꺼야!”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모르지 상대방은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베드로 사도가 부끄러운 행동을 했기에 그 하녀가 베드로를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이기에, 그들 주인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달이 나 있기에 베드로 사도까지 알아 본 것입니다. 칭찬하려고 알아본 것이 아니라, 함께 없애려고 알아본 것입니다.
70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부인 합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라고. 밤이라 얼굴이 잘 안보이니 그렇게 말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낮이었다면 확실하게 들어났겠지요. 두려움 앞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게 되면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놀라보게 변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 대사제의 하녀를 두려워하지만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강림이 있은 후에는 이 하녀의 주인인 대사제 앞에서 당당하게 대사제를 가르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리스도이심을 전할 것입니다.
71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이번에는 다른 하녀에게 들킵니다.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그 전 같으면 이 말이 베드로 사도에게는 자랑이 되겠지만 지금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에 두려운 말이 됩니다. 내가 베드로 사도였다면 어땠을까요?
72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이제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알지 못한다고 했을 때, 알고 있는데, 바로 열두 사도 중의 으뜸인데…, 베드로 사도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73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정하였지만 베드로의 사투리는 그가 예수님과 일행임이 드러났습니다. 전라도 사람과 충청도 사람이 구분이 가듯이 그렇게 베드로 사도가 갈릴래아 사람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도 행동 안에서 구분이 됩니다. 행동 안에서 신앙인은 옳지 않을 것을 행하려 할 때 멈칫 합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죄를 짓습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을까요?
74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거짓말을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정말 모른다고 하고, 내 말이 거짓이라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려움 앞에서 나약한 의지를 드러낼 때 닭이 울었습니다.
이 닭 울음소리는 그의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닭의 울음소리는 아침을 알리는 소리이며,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울린 닭의 울음소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소리가 됩니다. 그 닭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고, 계속해서 거짓을 말하게 됐을 것입니다. 가끔은 나도 닭 울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무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해야 될 것을 하게끔 말입니다.
75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붙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가 세 번이나 부인할 것임을 예고 하셨지만 그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적어도 그의 마음이 약해서 그렇지 변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는 결코 예수님을 부인할 마음이 없습니다. 나약한 의지가 두려움 앞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베드로 사도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도 남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체험한 후에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한없이 죄송했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배반하고서 즉시 통회를 했습니다. 이 모습은 다윗 왕과 비슷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를 범했을 때, 그리고 나탄 예언자가 그 잘못을 지적했을 때 즉시 잘못을 시인하고 통회했습니다.
나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가 있습니다. 세 번이 아니라 삼백 번도 더 넘게 그렇게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잘못을 슬피 울며 뉘우치는데, 나는 과연 어떠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도 내 죄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내 잘못을 시인하고 통회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예수님을 배반할 때의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베드로 사도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내가 베드로 사도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③ 일 상 삶 안에서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내가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실천사항
①
②
③
④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