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티노(Martin)


 

성인명 – 마르티노(Martin)

축일 – 10월 24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부제, 수도원장

활동지역 – 베르투(Vertou)

활동연도 – +6세기경

같은이름 –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프랑스 낭트(Nantes) 출신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프랑크계이며 성 펠릭스(Felix)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프와투(Poitou)로 선교여행을 떠났다. 그는 우선 자신이 머문 집 주인 부부를 개종시켰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낭트 부근의 강변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은둔소를 지었는데, 이것이 베르투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전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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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Martin)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투르의 성 마르띠노 주교

    축일: 11월 11일

    316년경 판노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교인들이었다. 세례를 받은 후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의 리구제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거기에서 성 힐라리오의 지도하에 수도 생활을 했다. 신품을 받고 투르의 주교가 되었다. 신자들에게 착한 목자로서의 표양을 주고 다른 여러 수도원들을 세우며 성직자들을 교육시키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났다.
     

    마르티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마르티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다. 마르티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는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가 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가련한 처지를 구제해 주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마르티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망토의 반쪽을 입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는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


    수도자가 되고 싶어했던 의도적인 반항아,주교가 되도록 미리 계획된 수도자, 이단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도 이교도들과 싸운 주교, 이것이 가장 대중적인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투르의 마르티노이다. 그는 오늘날 헝가리라는 곳에서 이교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성장했다. 노련한 병사의 아들인 그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15세에 군대에 입대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는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예비 신자가 되었으며 18세에 세례를 받았다.

    그의 군대 생활은 군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수도자와 같았다고 한다.그는 23세에 율리아노 황제가 내리는 전쟁 하사품을 거절하며 “저는 군인으로서 폐하를 섬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리스도를 섬기게 해 주십시오. 그 하사품은 싸우러 갈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의 군사이며 제가 싸우는 것은 합당치 못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는 군복무를마치고 프와티에의 힐라리오에게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구마품을 받은 뒤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대단히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는 수도자가 되어 처음에는 밀라노에 살다가 후에는 작은 섬에서 살았다. 힐라리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자기 주교좌에 복귀했을 때 마르티노는 프랑스로 되돌아가서 프와티에 근처에 첫 프랑스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전국을 다니며 설교를 하면서 10년 동안 살았다. 투르의 주민들은 마르티에노에게 그들의 주교가 되어 주기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는 계교에 속아서 그 도시로 끌려가 교회로 인도되었으며 결국 망설임 끝에 주교로 축성되는 것을 수락했다. 축성하러 온 주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마르티노의 볼품 없는 외모와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 그가 주교직에 별로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암브로시오 성인을 본받은 그는 이단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이타기우스 주교의 원칙을 거부했다. 또한 이러한 일에 황제가 간섭하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노의 생명을 구해주도록 황제에게 간청했다. 마르티노의 이러한 노력은 그 자신이 같은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프리실리아노는 결국 처형되었다. 그러자 마르티노는 스페인에 있는 프리실리아노 추종자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해 주도록 청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 이타키우스와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의 양심은 그러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가책을 받았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주여 당신의 백성들이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 일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했다.


    마르티노의 협력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성인들은 다른 세계의 창조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처하는 것과 같은 곤란한 결정에 직면하기도 한다. 어떠한 양심의 판단도 언제나 약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북쪽으로 갈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동쪽이나 서쪽이나 남쪽으로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애매한 상황을 지나친 조심성으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명한 덕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잘못된 결정이다. 왜냐하면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기 때문이다.”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

    (Epist. 3,6,9-10. 11. 14-17. 21: Sch 133, 336-344)


    가난하고 겸손한 마르띠노

      마르띠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 전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을 보고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칸데스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띠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의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성직자들간의 화목을 이룬 후 자기 수도원에로 돌아가

    려 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전해 주었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비탄 속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왜 우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우리 이 고아들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잔인한 이리들이 당신의 양 떼를 칠 것입니다. 목자가 부상당하면 이리들의 공격에서 누가 우리를 보호 할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갈망하시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가신다 해서 받으실 상급을 잃을 우려가 없고 그 상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지 마십시오.”

    이때 마르띠노는 그들의 눈물에 깊이 감동했다. 그는 늘 하느님과 일치되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자비의 동정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므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애통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아직 당신 백성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여든 성직자들은 그의 불쌍한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야? 이 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을 하고는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렸다. 기쁨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로 영접되었다. 가난하고 겸손했던 마르띠노는 부요한 이로서 천국에 들어갔다.

  2. user#0 님의 말:

    성마르티노 데 포레스 수도자(1579-1639)

    축일:11월 3일


    1579년 페루의 리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이었고 어머니는흑인이었다. 젊은 시절에 약학을 공부한 후 도미니꼬회에 들어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이 지식을 활용했다. 겸손하고도 엄격한 생활을 영위했고 성체에 대해 큰 신심을 지녔다. 1639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모르는’이라는 말은 영세 문서에서 냉혹한 법적 문구가 된다. ‘혼혈아’나 ‘전쟁의 유산’이란 말도 ‘순수한’혈통의 사람들에 의해서 잔인하게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르티노도 냉혹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돈과 마음까지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흑인이지만 인디언 혈통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파나마의 해방된 여자 노예와 페루 리마의 스페인 귀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과 검은 피부를 물려받았다.

    이것은 그이 아버지에게는 큰 불만이었지만 결국 8년 뒤에 자기 아들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여동생이 태어나자 가정을 버렸기 때문에 마르티노는 가난 속에서 컸으며 리마 사회의 하류층에 빠져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12세에 그에게 외상 치료사와 이발사 교습을 받게 했다. 그는 머리 깎는 법과 지혈법(그 당시에는 기본적인 의학 처방이었다.)을 배우고 의술도 익혀서 부상자를 돌보고 치료했다.


    이러한 의료업에 몇 년간 종사하다가 그는 ‘평신도 보조원’으로 도미니코회에 들어갔으나 자신은 수도자가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9년후에 공동체가 그의 기도와 참회, 애덕과 겸손에 의해 그가 완전한 수도서원을 할 수 있도록 청원하게 되었다.


    수많은 밤을 기도와 참회 생활로 보냈다. 낮에는 병자를 치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로 보냈다.


    그는 모든 사람을 피부 색깔이나 인종, 신분에 관계없이 대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고아원을 설립하는 데 큰 힘이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을 돌보았으며, 매일 수도원에서 베푸는 자선을 실제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그는 수도원을 위해서든 시를 위해서든 그것이 ‘담요나 내의, 초, 사탕, 기적 또는 기도’의 문제라면 언제나 대리인이 되었다. 그의 수도원이 빚을 지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련한 혼혈아일 뿐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나는 수도원의 재산입니다. 나를 팔으시오.”


    마르티노가 부엌에서, 세탁실에서, 병원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는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생활을 놀라운 선물로 채워 주셨다. 그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탈혼 상태, 그가 기도하는 방을 가득 채우는 빛,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것, 놀라운 지식, 순간적인 병의 완쾌, 동물들을 뛰어나게 다루는 솜씨 등이 그것이다. 그의 애덕은 들짐승들이나 부엌의 벌레들에게까지도 미쳤다. 그는 마당에 쥐나 생쥐가 들어오는 것은 그들이 제대로 못 먹어서 그렇다고 변명했고, 자기 여동생의 집에서는 길 잃은 개와 고양이들까지 보호하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모금가로서 가난한 처녀들이 결혼을 하든가,수녀원에 들어갈 때 지참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천 달러를 모금하기도 했다.

    그의 동료 수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영적 지도자로 여겼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언제나 ‘불쌍한 노예’라고 불렀다.

    그는 페루에서 또 한 사람의 도미니코회 성인인 리마의 로사와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인종 차별은 거의 아무도 공개하지 않는 죄이다. 그것은 공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만 겉보기로는 아무의 잘못도 아닌 ‘세상의 죄’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용서(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편에서와 그리스도교적 정의로 인종 차별을 개혁하는 사람들의 편에서)의 수호자로 마르티노 데 포레스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962년 5월 6일 교황 요한 23세는 마르티노의 시성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휠씬 더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장 쓰라린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으로 죄인을 속량하려고 애썼다. 그는 사람으로 병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과 의약품을 마련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농장의 노동자들과 흑인들 그리고 그 당시 노예와 비숫하게 간주되던 혼혈아들을 도와 주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애덕의 마르티노’라고 붙여준 이름으로 마땅히 불릴 만하다,”


    요한 23세 교황이 성 마르띠노 데 포레스의 시성식에서 한 강론에서

    (Die 6 maii 1962: AAS 54[1962], 306-309)


    자비의 사람 마르띠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성마르띠노는 자기 생활의 모범으로 우리가 이 사랑의 길을 통하여 구원과 거룩함을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당신 몸에 우리 죄를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을 알고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심원한 사랑으로 이끌리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신 잔흑한 고초를 바라볼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각별한 사랑으로 지극히 높으신 성체를 공경하여 성당 감실 앞에서 조배하는 데 장시간을 보냈고, 열렬한 마음으로 이 영혼의 양식을 영하고자 했습니다.

      성 마르띠노는 또 거룩하신 스숭의 가르침에 따라 부패되지 않은 신앙과 겸손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극진한 애정으로 자기 형제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와 자기의 형제로서 대하고 겸손에 넘치는 마음으로 다른 모든 이들을 자기보다 의롭고 어진 사람들로 여기어 그들을 자기보다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을 변호해 주고, 자기가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확신한 나머지 참기 지극히 어려운 모욕까지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죄인들을 회개에로 이끌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병자들을 성심껏 간호해 주었으며, 극빈자들에게 양식과 의류와 약품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거의 노예처럼 취급받던 농부들과 흑인들 그리고 혼혈인들을 자기 능력이 미치는 한도까지 돌보아 주고 그들에게 온갖 도움과 친절을 베풀어주었으므로 마침내 백성들로부터 “자비의 사람 마르띠노” 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과 표양과 덕행으로 사람들을 신앙에로 그렇게도 힘있게 이끈 이 거룩한 사람은 아직도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천국에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 높고도 거룩한 것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영광으로 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악의 유흑에 끌려가 이러한 덕행들을 멸시하거나 싫어하고 소홀히 하기까지 합니다. 성 마르띠노의 모범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의 거룩한 계명을 지킴이 얼마나 즐겁고 복된 것인지 많은 이들에게 가르쳐 주었으면 합니다.

  3. user#0 님의 말:

    11월 11일

    투르의 성 마르띠노 주교

     


    316년경 판노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이교인들이었다. 세례를 받은 후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의 리구제에서 수도원을 세웠다. 거기에서 성 힐라리오의 지도하에 수도 생활을 했다. 신품을 받고 투르의 주교가 되었다. 신자들에게 착한 목자로서의 표양을 주고 다른 여러 수도원들을 세우며 성직자들을 교육시키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397년에 세상을 떠났다.
     

    마르티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마르티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거지를 만났다. 마르티노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는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가 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의 가련한 처지를 구제해 주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 밤 꿈속에서 마르티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거지에게 준 망토의 반쪽을 입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아직 예비 신자인 마르티노는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


    수도자가 되고 싶어했던 의도적인 반항아,주교가 되도록 미리 계획된 수도자, 이단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도 이교도들과 싸운 주교, 이것이 가장 대중적인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투르의 마르티노이다. 그는 오늘날 헝가리라는 곳에서 이교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성장했다. 노련한 병사의 아들인 그는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15세에 군대에 입대하도록 강요되었다. 그는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예비 신자가 되었으며 18세에 세례를 받았다.

    그의 군대 생활은 군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수도자와 같았다고 한다.그는 23세에 율리아노 황제가 내리는 전쟁 하사품을 거절하며 “저는 군인으로서 폐하를 섬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리스도를 섬기게 해 주십시오. 그 하사품은 싸우러 갈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저는 그리스도의 군사이며 제가 싸우는 것은 합당치 못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는 군복무를마치고 프와티에의 힐라리오에게 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구마품을 받은 뒤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대단히 열성적으로 일했다. 그는 수도자가 되어 처음에는 밀라노에 살다가 후에는 작은 섬에서 살았다. 힐라리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자기 주교좌에 복귀했을 때 마르티노는 프랑스로 되돌아가서 프와티에 근처에 첫 프랑스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전국을 다니며 설교를 하면서 10년 동안 살았다. 투르의 주민들은 마르티에노에게 그들의 주교가 되어 주기를 청했다. 그는 병든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는 계교에 속아서 그 도시로 끌려가 교회로 인도되었으며 결국 망설임 끝에 주교로 축성되는 것을 수락했다. 축성하러 온 주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마르티노의 볼품 없는 외모와 헝클어진 머리를 보고 그가 주교직에 별로 합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암브로시오 성인을 본받은 그는 이단자들을 사형에 처하는 이타기우스 주교의 원칙을 거부했다. 또한 이러한 일에 황제가 간섭하는 것도 반대했다. 그는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노의 생명을 구해주도록 황제에게 간청했다. 마르티노의 이러한 노력은 그 자신이 같은 이단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프리실리아노는 결국 처형되었다. 그러자 마르티노는 스페인에 있는 프리실리아노 추종자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해 주도록 청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 이타키우스와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의 양심은 그러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가책을 받았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주여 당신의 백성들이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 일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했다.


    마르티노의 협력에 대한 걱정은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성인들은 다른 세계의 창조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처하는 것과 같은 곤란한 결정에 직면하기도 한다. 어떠한 양심의 판단도 언제나 약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북쪽으로 갈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동쪽이나 서쪽이나 남쪽으로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애매한 상황을 지나친 조심성으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명한 덕이 아니다. 그것은 사실상 잘못된 결정이다. 왜냐하면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기 때문이다.”



     

    술피치오 세베로의 편지에서

    (Epist. 3,6,9-10. 11. 14-17. 21: Sch 133, 336-344)


    가난하고 겸손한 마르띠노

      마르띠노는 죽음을 맞이할 날을 오래 전부터 미리 알아 형제들을 보고 자기 육신이 사그라질 때가 임박해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나 칸데스의 교구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 때문에 마르띠노는 자기 생명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그 교구의 화목을 되찾게 된다면 그것이 자기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수고의 월계관이 되리라는 그러한 희망으로 여행을 거절치 않았다.

    그 도시의 성당에서 잠시 체류하면서 성직자들간의 화목을 이룬 후 자기 수도원에로 돌아가

    려 했다. 그러나 육신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여 형제들을 불러 자기 임종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전해 주었다. 그때 형제들은 한결같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비탄 속에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왜 우리를 떠나려 하십니까? 우리 이 고아들을 누구에게 맡기시렵니까? 잔인한 이리들이 당신의 양 떼를 칠 것입니다. 목자가 부상당하면 이리들의 공격에서 누가 우리를 보호 할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그리스도를 갈망하시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늦게 가신다 해서 받으실 상급을 잃을 우려가 없고 그 상급이 줄어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지 마십시오.”

    이때 마르띠노는 그들의 눈물에 깊이 감동했다. 그는 늘 하느님과 일치되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자비의 동정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므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애통하는 이들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아직 당신 백성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여! 수고도 죽음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으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거절하지도 않았으며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 하지도 않았다. 눈과 손을 항상 하늘에로 드높인 채 그의 무적의 마음은 기도에 굳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모여든 성직자들은 그의 불쌍한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치자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거야? 이 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말씀을 하고는 하느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겨 드렸다. 기쁨 중에 아브라함의 품에로 영접되었다. 가난하고 겸손했던 마르띠노는 부요한 이로서 천국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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