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심리적 특성과 비젼
1. 청소년들이란 누구인가?
오늘날 청소년들을 볼 때 그들은 상당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본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표류 현상을 역사적인 관점과 존재론적인 혹은 발달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① 역사적인 관점 : 19-20세기에 들어오면서 청소년들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적인 흐름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요소가 있다는 입장이다.
② 존재론적(발달 심리학적) 관점 : 개인의 존재론적, 발달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청소년시기에는 독특한 심리, 의식구조, 행위방식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교차하는 측면에서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아야만 청소년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개인 발달의 측면에서 청소년들이 가지는 육체의 왕성한 발전과 정신적 미성숙이라는 불균형, 이상적이면서도 반항적인 행태 등을 역사의 발전 안에서 오늘날의 문화와 조화시킨 가운데 청소년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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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관점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이전에는 청소년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19세기 이전에는 사회관습으로 인해 청소년기가 존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즉, 대부분의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하면 곧 혼인을 함으로써 기성세대의 문화에 편입되어 버리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나이에 벌써 어른들의 문화에 편입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발달의 관점에서 본 이유인데, 19세기 이전(서양의 경우 산업혁명 이전)의 경우 거의가 농경사회 였고 가사를 위해 온 식구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체제였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맞게되는 삶은 거의 모두가 부모의 삶과 일치했고,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삶이나 사고를 펼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 문화적으로도 청소년들의 심리 발달적 현상은 가족이라는 한 덩어리의 문화에 의해 억압되거나 제어되는 편이었다. 이런 요인들로 해서 19세기 이전에는 청소년의 문화는 따로 존재하지도 않았고, 청소년 문제라는 특수한 문제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분화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농경 대신에 샐러리맨이 탄생하게 되고 이제는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농사를 지은 결과로 가사가 꾸려지기보다는 가장이나 부모의 노동으로 온 가족을 부양하게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온 가족이 가사에 매달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에 아이들은 가정과 부모에게서 떠나 ‘학교’에 맡겨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그들의 ‘또래’를 만나게 되고 점차 어른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의식과 삶의 방식이 생겨나게된 것이다. – 물론 옛날에도 서당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었지만 서당에서는 엄한 훈장이 아이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또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싫건 좋건 가정의 문화에 편입되어 서당에서의 문화는 대부분 희석되고 말았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산업화가 급격히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문화의 분화도 그 속도를 더해갔고 마침내 성인들의 문화와 아이들의 문화는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그것은 또래집단의 형성이다. 또래집단은 어느 집단이든지 비행화하는 특성이 있다. (어른들 집단을 들어봐도 그렇다. 동기 동창들의 모임, 예비군 등등) 성인들의 또래집단을 두고 볼 때도 상당히 야해지거나, 비행화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래 집단에 단 두세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끼여 있어도 그들 사이에는 도덕률이 서게되고, 규율이 잡혀가는 현상을 보인다. 하여튼 20세기를 더해가면서 문화의 양분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게되고, 개인적인 성장에서도 볼 때 점차적으로 부모와 떨어진 문화가 형성되고 고등학교 때에는 상당히 비행화 된 경향을 보이기 도하는 것이다. 산업화, 근대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살기가 예전보다 나아지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많은 용돈을 주게 됨으로써 이렇게 비행화 된 문화에 경제적인 능력(돈)이 부여되고 이로써 아이들의 비행화는 가속화되고 어른들의 삶을 더 빨리 모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청소년들은 벌써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른 수준의 욕망을 모두 갖고 있는 편이고, 옛날과 달리 이들에게 경제력이 수반됨으로써 실천능력을 갖추게되는 것이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의식과 수습능력이 청소년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경우 자신들이 저지른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과 수습능력이 있지만, 청소년들은 의식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수습능력이 박약한 상태이다. 그래서 청소년 문제는 늘 부모와 사회적 개입을 통해 수습되어지고 따라서 청소년들의 행동은 바로 사회문제화 되어간다.
이렇듯 청소년 문제는 20세기 사회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나의 역사적인 흐름으로 파생된 문제이고 인류 문화 자체가 양분됨으로 해서 생긴 문제이다. 즉 이 사회의 문화가 양분된 모순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문화의 양분현상은 있었다. 즉 남자와 여자의 문화가 양분되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남자와 여자의 문화는 서로 오버랩 되어 나타나는 경향인 반면에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문화는 점점 그 간격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현상 때문에 오늘날 청소년 문제는 점점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의 청소년 문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그 이전에는 청소년 문화가 기성세대와 교류하면서 자동적으로 기성세대에 편입되어 가는 경향이 짙었지만 오늘날에는 청소년들에게 경제력이 생김으로 인해 이 두개의 문화가 각기 동등하게 성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직선적인 그들의 문화가 더욱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청소년 문화의 성장을 크게 격려해주는 것은 경제 시장과 매스미디어인데 매스미디어가 청소년들의 문화를 통제하고, 잘라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부추기는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는 첨단으로 상업화되어있고 청소년들은 경제력을 가짐으로써 이제 광고 구매의 대상으로 대우받고있다. 스폰서들은 청소년의 감성, 기호, 하고 싶은 놀이에 영합을 하고 이로써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청소년들의 구매력을 지향한 경제시장의 격려는 기성세대의 문화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권위의 상실이다. 사회적 권위가 살아있어서 젊은이들을 선도해주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을 선도해나갈만한 권위가 없다. 실제로 청소년들은 합리적, 논리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이상적이고, 개별적인 반면에 성인들은 경험적, 실제적이며, 구조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어떤 문제를 두고 합리적이고 분명한 결론을 도출해내지만 젊은이들의 이러한 합리적 분석과 어른들의 실생활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로 인해 충돌과 갈등이 생기지만 어른들은 이러한 논리면 에서 이들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제 더이상 어른들의 논리 전개의 권위는 합리적 사고의 젊은이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성인문화와 젊은이의 문화는 조화보다는 대립현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는 젊은 세대와 다른 차원의 권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사랑, 덕, 윤리도덕, 부권, 종교적 덕성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격적 권위로써 청소년들을 감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동안 어른들의 삶이 이 인격적 권위를 형성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해 있지 못한 현실이고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도 그런 인격적 권위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는 말일 것이다. 어른들의 삶은 오늘의 경제발전을 위해 모두 바쳐져야 했고 무엇보다 잘사는 것이 중심문제였지 도덕과 윤리를 숙고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어른들의 삶이 상상 밖으로 비행화되어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여간 이 시대에 청소년들의 문화를 감화시킨 수킬수 있는 방법은 보다 높은 수준의 인격적 권위임에는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분석해보면 기성세대의 문화와 힘은 젊은 세대의 문화와 균형점을 이루며 서로 견제작용을 하며 활력성을 가져야만 사회가 조화롭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는 기성세대의 문화가 너무 약해서 젊은 세대의 문화에 따라 움직이므로 서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젊은이들의 구매력 때문에 이들의 왜곡된 방향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의 문화에 대책 없이 힘만 불어 넣어주는 꼴이 되고 만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는 역사적 문화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의 문화와 기성세대의 문화를 조화시킬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일 큰 과제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미리 대안을 이야기하자면 청소년 문제는 또래 집단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또래집단(Same age group)으로 단위를 이루어 행동하지 않도록 하느냐’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또래집단으로 묶는 것이 편안해 보이고 이에 따라 모든 사회조직도 또래화 되어 간다. 그러나 이를 다연령 집단(Cross age group)으로 묶어주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도 학교의 모든 활동을 가급적이면 동일연령으로 묶지 않고 서로 다른 연령끼리 한 집단을 이루어 움직이게 하는 것(동아리, 특별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상담의 분야에서도 교도교사가 학교에서 직접 아이들의 문제를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counseling교육을 받은 선배에게 위임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더불어 한 지역 내에서도 연령이 다른 아이들끼리 조직되면 같은 반 아이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연령 집단의 장점은 윤리와 규범, 질서가 서게되어 비행화를 감소시킬 수 있고, 문화의 양분화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 개인 발달의 관점
청소년 심리학에서는 세 가지의 관점에서 청소년들의 고유한 특성으로, 일치성향(동질화), 상상적 청중, 개인적 우화(정당화)를 지적한다.
① 일치 성향 : 내 것을 주장하기 보다 남에게 나를 맞추려는 성향을 보인다. 어릴 때 아이에게는 부모가 최고다. 그래서 적어도 3학년때 까지는 부모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4학년이 되면 바깥에서의 일을 부모에게 말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나름대로의 비밀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절대적이었던 부모님에 대한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판단과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가 시시하게 보이고, 우리집이 다른 친구들 집보다 못사는 것 같아 보이고 부모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고 불평이 늘어간다. 부모를 대하는 눈이 시큰둥하고 부모 의존성이 줄어들면서 집이 점차 싫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친구에 대한 의존성이 커져 간다. 그런데 친구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비슷한 연령이라 갈등과 토라짐이 자주 생기고 결국 친구에게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며 마음은 외로움을 겪는다. 그래서 자신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지만 마음에 위로를 주는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가요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예인, 스포츠맨들에 대한 펜(동경, 외향적 모습을 본받음)이 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만일 이 때 부모들이 아이들과의 교감 없이 억압할 때 돌이킬 수 없는 괴리를 초래하고 만다. 부모들은 자녀의 이러한 현상이 청소년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고 이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심리적 현상은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될 것이고 점차 사라질 것이다. 꼭 그 아이가 운동선수나, 가수가 되려는 장래희망이나 가능성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② 상상적 청중 : 청소년기 아이들은 부끄럼을 많이 타고 어머니가 시키는 일을 죽어도 안하려 하는 것이 있다(남자아이에게 콩나물사오라는 심부름이나 빚 받으러 보내는 일 등). 이러한 현상은 자기 나름대로 자기만을 바라보는 청중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이들이 자기만을 쳐다 볼 것 같은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독특한 생각을 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이러한 상상적 청중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 상상적 청중이 독특할 수록 행동방식도 독특하게 나타난다.
③ 개인적 우화(백일몽) :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 때 그 집단에 이질적인 자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그래서 무조건 그 집단에 동일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즉, 그들에게는 자기의 독특성을 살리려 하기보다는 그 집단 속에 어울리려고 하는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을 개인적 우화라고 한다.
그래서 이 경우 아이들은 이야기를 꾸미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중학 시절 여학생들의 깜찍한 거짓말(가정환경을 실제보다 미화해서 말하는 경우, 성격의 가장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거짓말로써 자신을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 표출이다.
이 경우에 아이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이야기의 거짓됨을 알아도 그냥 넘겨주면 그만인 것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진실성 자체를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이상의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될 문제들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자아정체감’의 문제이다. 자아정체감은 13세에서 16,7세때 일어나는 독특한 심리적인 특성이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나는 도대체 누구냐?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의 성격은 어떤 것이 좋으냐?”라는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자기에 대한 평가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 극도의 신경을 쓰며 자신의 모습을 가꾸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좌절도 겪기도 하면서 서서히 자기 정체감이 형성되어 간다. 이 시기에는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기만의 사고가 시작되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때 주로 위인전, 소설의 주인공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이시기에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바로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곳에 대한 반영임을 눈치채야 한다. 이러한 시기를 자아 정체감의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가 맨 처음 맞게 되는 위기의 시기이다. 이 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듣게 되면 극도의 신경질을 내는데 이 때 아이는 자아 정체감의 불안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자살 등의 일탈 행위에 대한 충동을 가장 많이 느끼는 때가 바로 이 시기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기 정체에 대한 불안감과 호기심의 반작용으로 아이들은 여러 가지 행동을 취하게 되고 그 때마다 모든 일을 나와 연관시킨다. 이렇게 되면 자아 정체감은 4가지 양태로 발전하게 된다.
① 성공적 집단 : 이들은 자기 중심이 잡혀 있기 때문에 미래에 관해서 허황된 꿈을 가지지 않으며 자기 수준에 맞는 자기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서 자기의 현실을 수긍하고 가능성을 찾으며, 차분히 실천하게 된다. 이들은 대부분 성격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질투하는 일이 없이 원만하다. 우리 나라의 경우 30세가 넘어서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② 유예집단 : 부단히 어떤 모습을 상정하고 진지하게 노력하지만 뚜렷이 한가지 결정적인 모습을 정하지 못하는 집단이다. 이런 유예기간은 심각하게 겪으면 겪을수록 좋다. 그러나 계속 유예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경우 좋은 조언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도록 유도해야 한다.
③ 조기 포기 집단 : 이들은 일찌감치 자기가 찾는 자기의 모습을 포기하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주입해 준 자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특히 일찍부터 확신에 차 있던 어린이의 경우에 많고, 부모와 주위의 기대감이 너무 클 때 많이 생긴다. 이들은 남이 주입해준 자기의 모습을 갖고 있기에 일찌감치 자기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요구하는 모습과 자기 현실이 너무나 동떨어질 때 이들은 이상에서의 화려한 모습과 현실에서의 초라한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한계에 부닥쳐 허덕이게 된다. 현실로 갈 때 부모의 기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출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출은 건전한 경우이다. 반면, 아름다운 자기의 미래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상을 쫓을 때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죽이려 하는 시도를 하게 되고 이것의 극단이 자해나 자살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자살의 결정은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해 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가출할 용기도 없어서 내리는 도피적 결정이다. 이렇게 볼 때 가출은 죽기 전에 아이들이 건전하게 적응해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출은 이제까지의 삶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살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가출에서 돌아온 후에는 이제부터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맡겨서 가출의 의미가 살아나도록 하는 기술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부모들이 아이를 크게 나무라고 이어서 또다시 부모의 기대를 주입함으로써 결국 최악의 경우에 이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조기포기자 집단에서 자살하는 아이가 많이 나온다.
④ 분산된 자아집단 : 이 집단은 유예집단과 비슷하지만 유예집단 저럼 진지하지 못하다. 유예집단의 아이들이 치열하게 자신을 파고드는 반면 분산된 자아집단에 속하는 아이들은 요란법석을 떨지만 지속성, 진지성이 없고 수시로 목표가 바뀐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지향점이 없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 곱지 않고 스스로도 자포자기 하게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어버린다. 더욱 깊이는 재시도 조차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면 방탕으로 흐르고, 같은 류의 집단과 어울리게 되며, 비행 청소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우리 나라의 경우 95%정도는 첫째, 둘째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만일 부모가 아이에게 주입한 정체를 끝까지 격려(물질적, 정신적)할 자신이 없으면 어린이에게 정체를 강제로 주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2. 청소년들의 적응방식
오늘날 같이 기성세대의 문화와 신세대 문화가 병렬적,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청소년들의 적응방식은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기성세대의 문화는 체면을 중시하고, 획일적이고, 서열적이며 예의를 중시한다. 드러나 신세대 문화는 감성적이고, 경제원리 우선이며, 합리적이며, 대등한 입장을 지향한다. 신세대의 문제는 그들의 가치 지향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기성세대와의 부딪힘에서 부각된다.
① 적응적 신세대 : 자기 나름대로 살려는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접촉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기본적인 태도가 있는 부류이다. 그들에게는 조화를 이루려는 기본적인 태도가 있다. 그렇지만 자기 감성과 가치관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사회적 적응력이 뛰어나고, 출세가 빠르다.
② 갈등적 신세대 : 이들은 기성세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성세대가 잘못된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원칙론 자들이다(예를 들어 이른바 운동권 학생들이다). 즉, 이 사회에 대한 신선한 감각을 기성세대에 전달하려 노력한다. 골칫거리이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는 긍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
①, ② 는 긍정적인 편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의 경우들이다.
③ 아노미적 신세대 : 이들은 선악분별의 가치기준이 모호하거나 상실한 집단이다. 나에게 이로우면 선이고 나에게 괴로움을 주고 나의 이익에 방해가 되면 악이라는 것이 유일한 가치기준이다. 이 아이들은 신세대이면서도 기성세대의 경제력을 이용해서 자기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한다. 그래서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향락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④ 병리적 신세대 : 이들은 아노미적 신세대의 악화현상으로 볼 수 있다. 부모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던 때에 이들은 아노미적 신세대 였지만 부모로부터의 지원이 단절되면서 향락의 금단현상을 겪게 되고 가치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신세대이다.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이나 김성복 교수의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인데 이들은 스스로 재정 확보에 대한 방법이 없고 무지한 상태여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유산을 물려줄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아노미적 신세대와 병리적 신세대의 공통된 특징은 선악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세대에 있어서 유일한 선악 기준은 쾌락이다. 아노미적 신세대는 부자 가정의 과보호에서 비롯되며, 이들이 재정적 빈곤을 맞으면 병리적 신세대로 전락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신세대 문화는 이들의 문화이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만일 이미 중고생이 될 때까지 아노미적 신세대로 키웠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쇼크 현상을 주면 금단 현상이 생기고, 돌출행동을 하게되기 때문이다.
결 론 :
여태까지 오늘날 청소년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았다. 청소년 문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문화현상에 기인한 것이지만 개인의 인격발달의 과정과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는 단순논리로는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분석에 따른 대처 방법은 미흡하지만 설명중에 간간이 제시된 것 같고 여기서는 다연령 집단의 조직과 교육의 장려와 주일학교의 역할과 교육방법에 대해서만 언급하려한다.
개별적 차원에서 좋은 선배를 물색해서 유대 지워 주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부모는 그 선배와 잦은 교류를 갖고 아이의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을 물색한다면 문화의 벽을 좁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집단적으로는 가능하면 다연령 조직이 이루어진 곳에 소속시켜 주는 것이 좋다. 이점에 있어서는 주일학교의 영향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주일학교는 신앙교육에 중점이 있지만 주일학교의 영향이 지대하다. 교리교사는 대부분이 대학생이고 아이들이 따르고 동경하는 선배들이다. 물론 이들이 교리적 지식과 신앙의 수준이 미약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아이들에게는 선배요 교사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에서 교사들이 비행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윤리 규범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또한 주일학교 학생회는 다연령으로 조직되어 있기에 그들 스스로 규범을 형성해 나가며, 조직 안에서 적응해나가는 사회화에 탁월한 장점을 지닌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최대한 보강하는 의미에서 주일학교 교육을 현재의 학년별로 진행하는 것 보다 연령을 섞어서 소공동체로 편성하는 것이 합당할 것 같고, 이론적인 교리 수업보다는 조직 안에서 스스로 신앙과 행동에 적응해 나가는 교육이 연구되어야 한다.
오늘날 가치기준과 윤리의 아노미 현상은 비단 청소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기성세대의 문란은 사회적 권위를 약화시켜서 청소년들의 문화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우리 나라 사회에서 청소년 비행은 어른이 되면은 모두 정당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모습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무작정 어른을 모방하여 행동하게 하고 마침내 합리적 사고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통제와 권위에 도전하게 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사실 윤리적 판단기준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지 다르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어른들의 영향력과 그에 따른 책임성에 비추어 볼 때 어른들의 삶에 윤리적 기준은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