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의 구조적 병리학, 교류분석, TA

 

영성생활의 구조적 병리학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P, A, C 세 자아상태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건강한 성격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개방적이어야 하듯이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P, A, C 세 자아상태의 경계가 분명하고 동시에 개방적일 때 보다 성숙한 영성생활을 가능케 한다.


첫째,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은 영성생활 속에서 활동하는 세 가지 자아상태가 모두 자기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영성생활을 구성하는 자아의 각 부분이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fully functioning person)이 될 수 있다. 영성생활의 구조분석에서 살펴보았듯이, 세 자아상태는 각각 고유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또 고유한 기능을 한다. P 자아상태는 어릴 때나 신앙입교시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권위적인 중요한 타인들의 사고나 감정이나 행동을 나타낸다. P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해야 성직자나, 수도자, 부모 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들과 유사한 권위적 인물들로부터 배운 불변의 신앙진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또 CP를 통해서는 계명의 준수, 선악의 판단, 신앙규범을 지켜나갈 수 있다. 또 NP를 통해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도울 수 있다.  P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아동기를 포함한 유아기적 신앙인들에게 신앙교육을 올바르게 할 수 없고, 교회에서도 리더쉽이 발휘될 수 없다.  C 자아상태는 어릴 때나 신앙입교시에 본인 스스로 자주 했던 신앙에 관한 사고나 행동이나 감정을 나타낸다. C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다 해야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FC를 통해 기쁨과 슬픔 등 자기정서를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고, AC를 통해 신앙규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통제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영성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A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의 신앙체험에 대해 합리적이요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A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몸에 밴 어린 시절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P와 C 자아상태는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모두 미친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부모가 특정 신심행위에 보인 편견을 그대로 모방하여 편견을 드러내는 것은 영성생활에 있어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또한 유아기적 신앙기에 성직자로부터 비신앙인다운 삶에 대해 야단을 맞고는 “나는 하느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죄인이다”는 등등의 죄의식이나,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꼈던 감정을 지금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이것 또한 영성생활에 있어서 건강한 일이 못된다. 이와 같이 과거신앙의 부정적인 영향을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는 것도 A 자아상태의 기능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자아상태는 모두 다 필요하다.


둘째, 자아의 경계는 분명해야 하지만, 동시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경계가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거나 경직되어 있으면 정신 에너지가 한 자아상태에서 다른 자아상태로 원활하게 이동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자발적인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다.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못하고 모호하다면, 한 자아상태가 다른 자아상태를 쉽게 침범하게 되고, 침범된 자아상태는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처럼 TA에서와 같이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모호하여, 한 자아상태가 다른 자아상태를 침범하고 있는 혼재(混在, contamination) 또는 오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경직되어 있거나 폐쇄적이어서 정신 에너지가 특정 자아상태에서만 머물고 다른 자아상태로 이동하지 못하는 배제(排除, exclusion)도 일어날 수 있다.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혼재와 배제가 경미한 수준에 놓여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고유한 신심이라고 여길 수 있으나, 심할 경우에는 건강한 영성생활을 영위할 수 없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심각한 부적응을 초래하게 된다.




1) 혼재


신앙인들은 때때로 P 자아상태나 C 자아상태의 그릇된 신앙내용을 마치 A 자아상태의 내용인 것처럼 믿는다. 이러한 이유는 자아상태들 간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약하거나 미분화되어 있어서, P나 C가 A의 경계를 침범하여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A가 P나 C의 지배를 받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지금 여기서의 사실에 입각하여 지각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고, 과거신앙의 잔재인 P나 C의 영향을 받아 현실을 왜곡하게 되고 또 이를 합리화시키려고 한다. 다시 말해 P나 C의 내용이 마치 A의 내용인 것처럼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계의 침범은 A 자아상태로 하여금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A의 기능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라할 수 있는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와도 상통하는 것으로, 영성생활에 있어서 경계의 침범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신념의 고수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도 상충되는 것이다. 


첫째, P가 A를 침범할 때에는 과거에 입력된 신앙에 관한 정보가 현실에 맞는지 틀린지 구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따른다. 말하자면 과거 ‘P의 슬로건’을 마치 ‘A의 실제’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편견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때에는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의 사실을 효율적으로 지각하지 못하고 객관적 합리적으로 사고를 하지 못하며, 과거 주입된 신념을 마치 사실 또는 현실인 것처럼 지각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를 박해한 유대인들은 P가 A를 침범한 예이다.1) 하느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기쁘게 해 드리는 그 ‘증거’로써 자주 이런 율법주의적인 정신을 고수하려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예를 들면 과음과식, 음란영화, 음란한 춤, 사치스런 옷 등 신자로서는 입거나 행하여서는 안되는 금기사항과, 착실한 신자로서 매일 영적 독서, 환자방문, 단식과 금육해야 하는 일들을 정해 놓은 규율들과 규칙들을 글자 그대로 지킴으로써만 영적 성숙이 얻어진다고 믿는 율법주의적인 정신을 갖고 있다.2) 그러므로 교리적 집착성, 전통에 대한 완고함, 율법주의적인 획일성은 모두 P의 침범에서 표현되는 영성생활의 특성이다.3)


이처럼 P가 A를 침범한 사람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편견이 심하고 무엇을 맹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 편견이나 맹신을 현실로 착각한다. “성은 불결하다”든가,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 “병이 난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는 등의 편견, 사이비 종교에 대한 맹신도 P가 A를 침범한 사람의 특성이다. 이러한 사람은 편견만 가질 뿐 아니라 감정과 정서를 동시에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침범이 심하면 환각을 경험하여 사적계시를 받았다고도 한다.


오늘날 ‘사적 계시’라는 이름으로 전파되고 있는 그릇된 신앙관은 건전한 신앙생활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신자들에게 큰 걸림돌이 된다. 특히 이것은 성령운동이나 성모신심 운동에 기생하거나 이를 이용하여 하나의 신심운동으로 정형화·조직화되어 가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계시와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부족 때문이며, 그릇된 ‘사적 계시 현상’에 대한 잘못된 집착 때문임을 인식해야 한다.4) 이것은 C의 침범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교회 내에는 끊임없이 ‘세상 종말’에 관한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 배포되고 있다.5)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의 주장도 성서나 사적계시를 잘못 해석하고 아울러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P의 침범의 예이다.6)


둘째, C 자아상태가 A 자아상태를 침범할 때에도 A는 C의 지배를 받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A가 C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아동기를 포함한 신앙의 유아기부터 견지해온 신념의 영향을 받아, A를 통한 성숙한 영성생활을 하는데 방해를 받는다. 이러한 환상은 사실로 착각한 감정에 의해 유발된다. 예를 들어 성숙한 신앙인들도 가끔씩 하느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자 할 때가 있다. 하느님은 아플 때, 충격을 받았을 때, 학기말 시험 때, 우리가 불안할 때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불러 댈 수 있는 잡역부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내·외적으로 야기된 커다란 불안은 신앙인을 가끔 이런 종교적인 단계로 뒷걸음질 치게한다.7) 이것은 신앙의 유아기에 언어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해결에 있어서 자신의 노력보다는 하느님께 그것을 떠맡기려는 경향 즉 ‘하느님은 내가 당면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야’하고 결정한 신앙의 유아기의 경험을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신앙의 유아기 경험의 재연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C가 A를 침범하여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동기의 상황을 현재의 상황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향해 분노와 질투와 원망과 성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이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 신앙인들은 저항하게 된다.8) 그러나 이렇게 성인이 된 후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신앙에 관한 그릇된 초기결정은 성숙한 영성생활에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됨을 인식해야 한다. 번(Berne)에 의하면, C의 침범이 심한 사람은 자신이 구세주라든가 신의 대리자라는 등의 망상(delusion)을 경험하기도 한다.


셋째, P와 C가 양쪽에서 모두 A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는 것을 ‘이중 침범’ 또는 이중 혼재(double contamination)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중 침범이 일어날 때에는 P의 슬로우건을 재연하면서 동시에 C의 신념을 통해 이러한 신념을 동의 또는 확인한다. 이와 같이 P와 C의 이중 침범으로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슬로우건과 신념을 마치 확고부동한 진리인 양 착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십일조(十一租)에 관한 언급은 인간의 모든 소유가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속한다는 확신의 표현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 십일조는 신자 각각의 자발적인 기부로 주어져 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앙인은 성서의 가르침을 자구대로 해석하고, 경험을 통해 11조를 헌납하면 더 많은 부(富)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는 불합리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유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P의 편견과 “하느님께 바치면 그 이상을 또다시 돌려 받는다”는 C의 신념이 결합을 이룬 것이다.




2) 배제


TA에서 말하는 ‘배제’(exclusion)는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일어난다. 즉 영성생활구조에 있어서 각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개방적이지 못하고 경직되거나 폐쇄적이어서 정신 에너지가 자발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그래서 세 가지 자아상태 중 하나 또는 두 가지의 자아상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P를 배제시키고 사는 사람은 A나 C의 자아상태는 기능하지만 P 자아상태는 기능하지 못한다. 따라서 신앙의 유아기부터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는 권위적 인물들로부터 내면화된 기존의 신앙규범이나 가치 체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상황마다 규칙을 만들어 낸다.


A를 배제시킨 사람은 현실 검증의 능력이 없다. 그 대신 P와 C의 내부 대화만 듣게 된다. 따라서 영성생활에 관한 사고나 행동이나 감정도 모두 이러한 P와 C 자아상태 간의 내부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 A가 기능하지 못해 현실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행동이나 사고가 현실과 괴리되어 그릇된 신앙을 형성하기가 쉽다.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효율적인 현실 지각이 어렵고 사실에 입각한 문제해결능력이 결여되며, P의 신앙관과 C의 신앙관 간의 갈등을 통제하지 못한다.


C를 배제시킨 사람은 신앙의 유아기부터 저장해온 기억이 막혀 있다. 어릴 때나 신앙의 유아기에 자주 행했던 신앙생활에 대래 물으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성장한 후 표현하는 감정은 대부분 C 자아상태에서 이루어지므로 C를 배제시킨 사람은 하느님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거나,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지금까지는 세 자아상태 중 어느 한 상태를 배제시킨 경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TA에서와 같이 ‘일관된 어버이’(constant Parent), ‘일관된 어른’(constant Adult), ‘일관된 어린이’(constant Child)가 영성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일관된 어버이’상태에 놓인 사람은 ‘P의 규칙’(Parental rule)을 적용하려고 하고, 어떤 자극에 대해서든지 주로 P상태에서만 반응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에까지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기에게 의존적이고 복종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로 종교적 요청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의무감이 강하며 비판적이고 훈육적이다.  C상태에서 볼 수 있는 영성생활에의 열광, A상태에서 볼 수 있는 객관적 합리적 결단이 결여되어 있다. P 자아상태의 경계가 경직되어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불변의 표준을 따르며, 지배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권력행사를 많이 한다.


A 자아상태의 경계가 경직되어 P나 C의 자아상태로 정신 에너지가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은 합리적 결단에 의한 내면적 조정으로 선택한 영성생활만을 추구한다. 이러한 사람은 영성생활을 함에 있어서 사고와 경험을 통해 가장 적합한 가능성을 추구하므로, 감성을 자극하는 신앙생활에 거부반응을 나타내고, 이런 의미에서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있다고 할 수 있다.


C 자아상태의 경계가 경직되어 P나 A의 자아상태로 정신 에너지가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신앙의 아동기에 머물고 있는 듯이 행동하고 사고하고 느낀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그 즉시 하느님께 매달린다. 성장한 사람으로서의 현실 인식이나 현실 검증 능력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기존의 가치 체계도 없다. 따라서 남들이 보기에 미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경직되어 있을 때 영성생활에 있어서 여러 가지 병리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3) 병리적 영성생활구조의 개선


하느님과의 관계도 다른 모든 관계처럼 구조에 의해 제한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자신을 하느님께 제시하며, 또 우리가 그분을 체험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방식에 따라 하느님을 체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아(自我)나 하느님 모습의 새로움은 불안과 저항을 유발하고,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깨닫지 못한 채 지나칠 수도 있다.10) 이처럼 어릴 적이나 신앙입교시에 형성된 하느님의 모습은 성장한 후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러한 영향을 인식한 후에야 Adult 기능은 보다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릇된 하느님의 모습이나 그릇된 신앙생활은 개인 안에서 수정될 수 있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만을 고수하고, 그 이외의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지는 영적 우상숭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11) A의 기능은 하느님과의 계속적인 접촉과 관계에 대한 결심, 그리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개방하고 인정하려는 결심이 동반될 때 활성화될 수 있고, 그 결과 하느님과의 관계와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TA를 활용한 병리적 영성생활구조의 개선에 대해 알아보자.


TA의 구조적 병리학에서 보았듯이 영성생활에 있어서의 P, A, C 세 자아 상태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영성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개방적이어야 한다.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여 서로 침범하거나 자아의 경계가 경직되어 정신 에너지가 다른 자아상태로 이동하기 어려울 때 부적응적 신앙태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TA에서 자아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이론과 기법을 토대로 영적 지도의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한 영성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영성생활에 있어서의 각 자아상태 간의 경계가 분명해야 한다. 편견과 망상에로 대표되는 P와 C의 그릇된 신앙의 내용이 A의 경계를 침범하고 있을 때에는 A 자아상태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과거 몸에 밴, 신앙의 유아기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부정적이거나 현실에 맞지않는 P나 C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러나 A가 ‘집행 기능’을 수행하면 외부의 자극을 A를 통해 지각 또는 반응할 수 있고, 나아가 P와 C의 부적응적 신앙생활을 통제할 수 있다. A의 이러한 기능을 ‘통합된 어른 자아 상태의 기능’(Intergrated Adult ego-state functioning)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통합된 어른 자아 상태’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충분히 발달된 지적인 기능, 충분한 정서적 반응성, 삶을 이끌어가는 가치 체계를 갖추고 상황에 따라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한다. A가 제 기능을 하면 자신의 영성생활에 대해 충분히 사고하고 평가하므로 하느님과 보다 더 올바른 관계형성에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반응을 할 때 세 자아상태 중 어느 자아상태에서 반응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지 판단하고 선택한다. ‘통합된 A 자아상태’는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는데 P나 C의 내용이 현재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되면 P나 C에서의 반응을 통제하거나 거부하고 A 자아상태에서 반응하도록 한다. 


우리가 더욱 더 성숙한 영성생활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교회적인 의사결정과 문제해결 기술을 발달시켜야 한다. 교회적인 사고의 배양과 영성생활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A의 기능이 발달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과거의 사고나 감정이나 행동이 모두 의사결정과 문제해결에 무익하거나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TA의 구조적 병리학에서 본 바와 같이 A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에는 영성생활에서도 심각한 부적응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자아상태 내부에서도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C의 자유로운 신앙의 응답도 무시할 수 없지만, P의 권위적인 교회의 가르침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A를 통해 C의 부적절한 감정과 P의 부적절한 견해를 구별하여 최상의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옛날에 입력된 P의 내용을 새로운 내용으로 바꾸는 것도 TA 상담의 중요한 기법중의 하나이다. 다시 말해 피지도자가 과거의 병리적인 P 내용에 집착하지 않도록, 영적 지도자가 ‘새로운 P 메시지’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P를 형성하는 것이다. 과거에 입력된 병리적인 P의 내용 대신에 새로운 P의 내용을 공급함으로써 A 자아상태가 보다 잘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얀세니즘의 영향으로 영성생활에 있어서 비생산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영적 지도자는 보다 생산적이고 공동체적인 신앙생활로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과거에 고착된 C 자아상태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신앙생활에 대해 과거에 자주 나타냈던 사고나 행동이나 감정 중에는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는데 적절하지 못한 것도 많다. 만일 부적절한 C 자아상태에 고착되어 있을 때에는 현재의 상황에 A 자아상태를 통해 반응하지 못하고, 고착된 C 자아상태에서 반응하기가 쉽다. 이 때에는 고착된 C 자아상태를 수정해야 한다. 재결정 치료(redecision therapy)가 가능한 이유는 C 자아상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적 자아상태로서 항상 성장하고 발달하기 때문이다. 유아기적 신앙의 시기에 있는 어떤 이들은 전능하시고 영원 무궁하시며 변함없고 냉정한 분으로서의 하느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의 삶과 깊이 관계하고 계심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하느님께 어떻게 따뜻하게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데 내가 굳이 하느님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습니까?”라는 태도는 관계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12)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유년기나 청소년기에 간직하고 있던 하느님의 모습을 성인이 되어서 까지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과거에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신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성숙시킬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13)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피지도자에게 영적 지도자는 신앙의 유아기에 형성된 이런 하느님의 모습에만 매여있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영적 지도자가 피지도자에게 새로운 건강한 C 자아상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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