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적 성장의 기초
본 논문의 두 번째 질문은 이러한 유형이론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시고 당신의 말씀 안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고 이 믿음이야말로 우리의 그리스도교적인 영성생활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의 유일한 원천이기도 하다.”1)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이라 함은 계시를 통해 주어진 신앙을 생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생활의 출발점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첫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계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계시이다.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종교요, 계시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향하는 종교이다. 여기에는 신앙이 가진 인격적인 특성도 드러난다. 이어 두 번째 출발점으로 인간이라는 관점이 있다. 계시하시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의 두 번째 출발점으로 인간 실존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은총이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면, 은총의 생활은 인간의 전반적인 활동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개체의 심리적, 윤리적, 신체적 및 사회적 발전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곧 초자연적 생활은 자연적 생활의 발전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생명의 빛은 그것이 내재하는 자연적 바탕이 얼마나 활기차고 강하냐에 따라 생동감이나 밝기를 다르게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상생활 안에서, 은총의 활동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 안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약한 사람에게서 활기를 잃게 된다는 점을 보아서도, 인간의 기본조건이 은총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은총이 우리 안에 가능한 한 완전에 가깝게 작용하도록 더욱 알맞은 인간 조건을 이룰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인간 성숙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전제조건이란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2)
그러므로 인간적 성숙과 그리스도교 영성의 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양자간에는 독특한 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대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임을 알아야 한다. 먼저, 인간적 성숙은 그리스도교적 영성생활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인격적인 성숙에 이른 사람이 영성적인 성숙에도 쉽게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성생활 또한 인격적인 성숙에 크게 도움이 된다. 올바른 영성생활은 인격적인 성숙도 함께 가져오기 때문이다.3) 그러므로 올바른 영성생활은 은총 안에서 인간의 본성을 완성시키도록 노력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특별히 가톨릭 안에서 영성생활의 기초로 인간의 자기이해나 성장을 이야기해 온 영성가로서는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4)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요한, 성 이냐시오 로욜라 등을 들 수 있다.5) 여기서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글 중에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언급한 글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요 부끄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만나 누구냐고 물었을 경우, 제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대지 못하고, 고향이 어디인지도 모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무식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짐승같이 미련하다는 말이 여기에 맞는다면, 우리에게는 그 보다도 더한, 비교가 안 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알고 싶어하지 않고, 철딱서니 없이 우리 자신을 이 육체에다 얽매어 둘 그때에 말입니다.”6)
“자기를 안다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겸손만큼 필요한 것이 또 없으니, 혹시 여러분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하더라도 절대로 이 점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때문에 나는 되풀이합니다만, 다른 궁방으로 옮아서 날아가기에 앞서서 자아 인식의 자리인 이 궁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선 가장 급한 일이니 이것이 바로 제 길이기 때문입니다.”7)
그러나 인간 성숙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저절로 획득되는 무상의 상태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인간 성숙은 목표이며, 우리는 그 과정 중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8) 이러한 노력에는 인간의 지혜가 집약된 도구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의 도구로 유형이론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유형이론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기 인식을 높이고 인간적 성숙을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앞에서 살핀 것처럼 신앙의 성숙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유형이론을 영성생활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으로는 MBTI와 에니어그램을 들 수 있다.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