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정(1898~1984). 한국 천주교회사가. 세례명 이냐시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지원(志園). 필명으로는 달성산인(達城山人)을 쓰고 있다. 김상연(金湘連, 바오로)의 셋째 아들로 대구시 신암동 715에서 출생, 서울 용산 소신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 1919년 대구 만세시위에 신학생들이 합세하는 데 주동적인 준비를 하였으나 학교 당국에 발각, 퇴교당하였다. 프랑스인 교수들이 독립운동을 정치운동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 뒤 1923년 조선일보 대구지국장. 1925년 간도(間島) 용정(龍井) 해성(海星)학교 부교장. 1927년 간도 연길(延吉) 팔도구(八道溝) 조양(朝陽)학교 부교장을 거쳐 1929년 대구(大邱) 노동(勞動)학원 설립을 경영하였고 1932년 평양교구장 비서, 월간 <가톨릭조선> 주간 및 <가톨릭연구> 편집을 담당하였으며 1938년 만주 흥안남성(興安南省) 성길사한(成吉思汗) 효성(曉星)농장을 경영하는 한편 효성국민학교를 설립, 교장으로 봉직하였으나 1940년 만주정부에 농장이 압수되어 폐교되었다. 1941년부터 만선(滿鮮)일보 치치하얼(齊齊哈爾) 지국장으로 근무하다가 1945년 11월 해방을 맞아 귀국하여 1946년 군산여자고등학교 교감, 1948년 군산대학교수를 역임하였다. 1951년 귀향하여 1956년 대구 대건고등학교 강사생활을 한 바 있다. 1960년경부터 주재용(朱在用) 신부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교회사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였다. 그의 신앙은 아버지의 영향이 바탕이 되었고 사상적으로는 대구지방에서 민족운동과 노동운동을 하여 온 백씨 김하정(金夏鼎)의 영향을 입었다. 그는 순교자 연구에 평생을 바쳤으며 단순한 순교정신의 탐구보다 민족사의 맥락에서 그 가치를 밝히려 노력하였다. 그는 <가톨릭연구>지에서 <양제궁(良娣宮)의 가을>과 <동방의 새벽>이라는 역사소설을 연재하였다. 저서로는 ≪가톨릭유년독본≫, ≪어린이 미사≫, ≪칠성사풀이≫, ≪호남발전사≫, ≪영남순교사≫, ≪경남천주교발전사≫, ≪순교사화 전4권≫, ≪대구의 순교자들≫이 있으며 역서로 ≪영혼의 성약(聖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