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면호(1820~1866). 순교자. 세례명 토마스. 면호(冕浩), 혹은 ‘계호’라고도 한다. 안동(安東)김씨이며 경상북도 안동의 박골 출신으로 병인(丙寅)박해 때의 순교자. 일찍이 서울 주동(鑄洞)으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그의 어머니와 맏형 익례(翼禮), 둘째형 응례(應禮)가 먼저 입교하였고, 그는 19세 때 형들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원래 성격이 활달하여 놀기를 좋아했으므로 18년 동안이나 냉담하였다가 1866년 초에야 회개하였다. 그는 냉담했던 것을 크게 뉘우치면서 열심히 신앙을 지켜 나갔으며, 자기잘못을 보상하는 길은 오직 순교하는 길밖에 없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런데 당시 제정 러시아는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자주 우리나라 국경을 침범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협했으므로, 김면호는 교인인 남종삼(南鍾三), 홍복주(洪鳳周) 등과 상의하여 방아책(防俄策)으로 이 나라에 와 있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프랑스의 힘을 빌어 나라를 구함이 가하다는 내용의 편지로 흥선대원군(興宣大阮君)에게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화가 되어 1866년 7월 18일 체포되었다. 그는 심문(審問)에서 자기의 냉담했던 사실을 크게 뉘우친다고 스스로 답변하여 더욱 가혹한 형벌을 받고 그해 9월 10일 새남터에서 목을 잘리니 그의 나이 47세였다.
[참고문헌] 치명일긔, 1895 / 崔奭祐, 丙寅迫害資料硏究, 韓國敎會史硏究所, 19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