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미라의 ~ (N. Myrae, ?~345/352). 성인. 소아시아 뤼치아지방 미라의 주교. 이름은 동서 교회에 잘 알려져 있고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생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303년) 투옥되고, 후에 석방되어 니체아 공의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공의회 출석자 명단 속에 그의 이름은 없고, 아타나시오(Athanasius)의 문헌에도 그 이름은 없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교회 이름이 ‘성 프리스코스와 성 니콜라오의 교회’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의 이름이 공식으로 기록된 최초의 것이다. 서유럽에서 그는 선원(船員)의 수호성인으로 되어 있고, 12월 6일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며 다니는 산타클로스 이야기와도 결부되고 있다. 축일은 12월 6일.
② 쿠사의 ~ (N. de Cusanus, 1401~1464). 중세 말기와 근세 초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추기경. 원명 Nikolaus Chryffs(Krebs). 브릭센(Brixen)의 주교. 독일의 모젤강변의 쿠에스 태생. 데벤터(Deventer)에 있는 ‘공주생활 형제회’에서 경건한 교육을 받고, 하이델베르크 및 파두아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처음에는 법률학에 관심을 두었으나, 자연과학 · 수학 · 철학도 열심히 연구하였다. 교회법학 학위를 취득한 후, 신학을 연구, 사제로 서품되었다(1430년). 교회 정치면에서도 실제적 활동을 했지만, 그의 본령은 오히려 관상(觀想)과 명상에 있었고, 또한 그의 목표는 교회의 일치에 있었다. 주저(主著)인 《학식 있는 무지》(De docta ignorantia, 1440)에서는 유명한 ‘무지의 지(知)’와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라는 두 원리가 전개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 · 단순 · 무한이어서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므로, ‘무지의 지’야말로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이며, 우리가 ‘반대의 일치’인 신(神)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직관 즉 ‘무지의 지’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의 사상적 계보의 선구(先驅)가 되는 것은 스콜라학(學)과 신플라톤주의이며, 그가 특히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 중에서 아우구스티노(Aurelius Augustinus), 프로클로스(Proklos), 디오니시오(Dionysius), 보나벤투라(Bonaventura), 에크하르트(M. Eckhart)등을 들 수 있다. 르네상스의 선구자이며 근세철학, 특히 브루노(Giordano Bruno), 라이프니츠(G.W. Leibniz)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De quaerendo Deum》(1445), 《Idiotae libri》(1450), 《De non aliud》(1462), ≪De Apice Theoriae≫(1463~1464)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