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 입문

 

1. 들어가는 말

대림시기를 준비하면서, 즉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우리가 1독서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씀은 바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종말은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고, 아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신 분이시기에 미래에 대한 것들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묵시록을 공부하다보면 “아하! 이게 힘을 내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 요한 묵시록을 공부하기 전에

2.1. 요한 묵시록은 어떤 성경인가?

묵시록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거나, 종말의 어느 한 순간을 미리 예견케 하는 그런 성경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손길을 통해 오히려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성경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신앙인들이 황제 의식이라는 것을 통해 그들의 목을 조여 오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당대의 세계 속에 유포되어 있던 일련의 이단적 경향들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던 그들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해 주기 위해 쓰여진 성경입니다.



2.2.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

요한 묵시록이 쓰인 시기는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방대한 영토의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왕제의 절대 권력을 끊임없이 행사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은 모든 식민지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를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로마 제국은 모든 식민지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에게 절대 복종을 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그의 후계자들은 그러한 황제 의식을 매우 제한적으로 이용했지만 37-41년까지 통치한 가리굴라 황제나 54-68년까지 통치한 네로 황제, 그리고 81-96년까지 총치한 도미티아누스 황제 등은 자신들의 권력을 절대적인 것으로 행사하기 위하여 황제의식을 의도적으로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황제의식을 거부한 그리스도교인들의 엄청난 순교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시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화재범으로 몰아서 박해를 했습니다. 이 박해는 로마라는 장소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엄단했습니다. 특별히 유다인들과 개종자들에게는 과중한 세금을 강요했습니다. 이것이 유다인 공동체들 안에서는 불안과 긴장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법은 상원의 허가 없이는 어떤 종류의 새로운 종교의식도 거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교인들의 전례는 새로운 종교의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로마 법 자체에 의해 금지를 당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전례는 로마인들이 보기에 그 자체가 불법이었고, 그리하여 정당하게 박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곧 주님이기에 백성들 모두가 자신에게 종교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황제 의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적법성을 드러내는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고, 로마 제국 안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황제 의식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자들에게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다가 박해를 받아들여 순교를 할 것인가? 아니면 도미시아누수 황제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예수님을 버릴 것인가? 신자들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묵시록에서는 하느님만이 유일한 주님이시고, 그분께만 영광과 권세가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협상 없는 선택을 강요받던 절망적 상황 속에 처해 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이러한 묵시록의 전례적 내용들은 용기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묵시록의 내용들은 권력의 권한과 한계를 초월하여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합법화하고 정당화시키는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항거하는 저항의 외침임과 동시에 신앙의 절규인 것입니다.



2.3. 누가 언제 썼는가?

요한 묵시록은 4번씩이나 저자의 이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나 요한은…묵시1,1; 1,4; 1,9; 22,8). 초세기의 그리스도교 전승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셨고, 복음서와 세 서간의 저자로 간주되는 사도 요한이 묵시록의 저자라고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묵시록의 집필 연대에 관한 오래된 증언은 2세기 중엽 리옹의 주교였던 이레네오의 것으로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원후 96년에 암살 당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통치 말년에 묵시록을 썼을 것이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는 그러한 이레네오의 증언을 전해주면서, 이레네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미티아누스 통치 14년 즉 94-95년에 묵시록이 쓰여 졌다고 구체적으로 집필 연대를 규정해 주었습니다.



요한은 자기파트모스 섬에 유배되고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형태로 그에게 나타난 것들이거나,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그 이전에 이미 그에게 보여진 것일 수도 있는 것들을 마치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본 것으로 한데 묶어 놓고 있습니다.



2.4. 누구를 위한 메시지인가?

 묵시록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을 대상으로 써졌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영토에 퍼져 있는 일곱 교회들이 겪어야만했던 고통과 시련을 똑같이 겪고 있는 모든 교회들은 마치 묵시록의 메시지가 자신들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바를 세상에서 증언해야 합니다. 요한 묵시록의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증언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순교의 순간입니다. 순교자가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록에서는 순교자와 증언자라는 용어가 두 개의 다른 용어가 아니고 동일한 하나의 용어인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황제 의식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느님께만 경신례를 바침으로써 순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죽음까지도 신앙 수호를 이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세속의 권력자인 빌라도 앞에서 당당하게 증언사신 그리스도의 모습에 동참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주님의 승리에 또한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일상 삶 안에서 나를 죽이고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내가 될 것입니다.



2.5. 왜 썼는가?

 요한 묵시록은 순교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묵시록 2,10).

 그 당시 로마의 법은 모든 시민들에게 황제의 동상 앞에서 희생제물을 봉헌하면서 “카이사르는 주님이시다.”라고 외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황제를 주님으로 섬긴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요,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주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신앙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한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신앙 고백임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희망을 선포하는 것이고, 로마 제국이 취하고 있던 공식적인 우상숭배에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상당한 숫자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기에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순교자들에게 그들이 누리게 될 것들이 어떤 것인지를, 즉 복된 삶에 대해서 묵시록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묵시록은 순교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①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자기가 행한 증언 때문에 살육 당해 제단 아래 놓여져 있는 이들(묵시록 6,9-11)

② 승리의 상징인 흰옷을 입고 있는 이들, 하늘에서 영원한 축제를 거행하고 있는 이들(묵시록 7,9-17)

③ 사탄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묵시록 12,7-11).

④ 어린양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나서는 이들(묵시록 14,1-5).

⑤ 하늘로부터 복된 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묵시록 14,13).

⑥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간 통치한 이들(묵시록 20,4-6)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에 가치를 두면서 선택을 하지만 신앙인들은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께“ 가치를 두면서 살아갑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 하고 응답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3. 묵시록에서 말하는 미래 역사의 세계관

① 하늘 높은 곳에서 옥좌에 앉아 통치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주는 분이시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며,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장소이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받으신 당신의 인간성을 통해 하느님과 더불어 세상을 통치하신다.

③ 다양한 형태의 박해를 야기시키는 용 또는 사탄이 실제적으로는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

④ 모든 인간은 실제적으로 예언자들이 예고한 마지막 때를 맞이하고 있으며, 세상의 심판은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⑤ 행복의 표상으로서의 천상 도시인 새로운 예루살렘은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예루살렘의 문은 그곳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져 있다.



위의 다섯 가지 미래 세계의 역사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원수를 궁극적으로 패배시킴으로써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이 세상을  통치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것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미래에 대한 확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좌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시록은 비록 알아듣기 어려운 상징적 이미지나 두려움을 야기시킬 수 있는 언어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해주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4.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누군가가 나에게 생명을 위협하면서 신앙의 포기를 강요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2. 일상 삶 안에서 내 신앙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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