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여기저기 여러 본당이 설립되었던 1896년 가을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호남지방 순회 때 목포에 될 수 있는 한 신자들을 이주시키도록 당시 수류 본당(水流本堂) 라크루(Lacrouts, 具) 신부에게 위임하였다. 한편 1897년 봄 뮈텔 주교로부터 책임을 부여받 드예(Deshayes, 曺) 신부는 목포시 산정동 90번지에 20여 평 규모의 성당 겸 신부사택용으로 벽돌 건물을 세우고 1898년 봄에 목포 본당을 설립, 1909년 봄까지 초대 주임신부로서 전교사업을 벌였는데, 당시 교우수는 약 300명이었다.
2대(1909-1912년) 투르뇌(Tourneux, 呂) 신부, 3대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 신부 때인 1913년에는 목포시 산정동 94번지에 현재의 성당을 벽돌조 건물로 100여평 대지 위에 신축하여 성 십자가 성당으로 이름지었다. 4대(1914-1915년) 카넬(Canelle, 簡)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1차 세계대전으로 소집되어 전사함으로써 1년 동안 본당신부 없이 제주읍의 라크루 신부가 대신 관리하였다. 5대(1915-1922년) 타케(Taguet, 嚴) 신부 때는 교우수가 400명, 6대(1922-1932년)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 때는 교우수 700명, 7대(1932-1934년)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 때는 교우수 800명으로 차차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8대(1934-1942년) 성 골룸바노 외방전교회 신부인 모나간(Monaghan, 矣) 신부 때는 1,800명, 9대(1942년 봄-여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 때는 1,950명, 10대(1942년 여름-1944년)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신부 때는 2,050명, 11대(1944-1949년)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때는 2,500명, 12대(1949. 2-1949년 가을) 김재석 신부 재부임 때는 2,600명, 13대(1949년 가을-1950. 7. 24) 쿠삭(Cusack, 高) 신부 때는 2,750명이었다. 그런데 쿠삭 신부는 6.25 동란으로 인하여 캐롤(Caroll, 安) 몬시뇰, 보좌신부인 오브라이언(Obrien, 吳)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에는 목포 본당이 경동 본당(京洞本堂)을 분리시키면서 산정동 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쿠삭 신부의 뒤를 이어 모란(Moran, 安) 신부가 14대(1950-1953년)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는데, 이 때 교우수는 3,000명이었다. 그 뒤 15대(1953-1953. 6) 도슨(Dawson, 孫) 신부, 16대(1953. 6-1956년) 새비지(Savage, 元) 신부 때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전교활동을 시작하면서 성심유치원을 창립, 운영하였다. 17대(1956-1960년) Dunne(都) 신부 때인 1958년에는 목포시 북교동 본당(北橋洞本堂)의 신설로 본당 관할구역이 분리되었다. 18대(1960-1962년) 휴스(Hughes, 柳) 신부 때는 교우수가 4,594명, 19대(1962-1964년) 모리시(Morrisey, 矣) 신부 때는 교우수가 4,650명이었다. 20대(1964-1969년) 브라질(Brazil, 陳) 신부 때인 1966년 5월 29일에는 목포시 산정동 97번지에 166평의 철근 콘크리트 및 벽돌 슬레이트 성당, 45평의 사제관을 건립하고 성 미카엘 대천사를 본당주보로 정하고 성 미카엘 성당으로 이름지었다. 그리고 1969년 9월 3일에는 목포시 연동 본당의 신설로 본당 및 공소 관할구역을 재조정하였다. 21대 캐얼란(Carelan, 車) 신부 때는 교우수가 3,000명이었고, 목포시 대성동 본당의 신설로 다시 본당 및 공소 관할구역을 재조정하였다. 22대(1972-1974년) 모리시 신부 때는 교우수 2,000명, 23대(1974-1978년) 놀란(Nolan, 盧) 신부 때도 2,000명, 24대(1978-1983년) 이재흥(李載興, 힐라리오) 신부 때도 2,000명이었다. 1978년 10월 27일에는 6.25때 피랍된 성직자(캐롤 몬시뇰, 쿠삭 신부, 오브라이언 신부) 순교비를 본당 내 성모상 옆에 세워 제막하였다. 25대(1983-현재) 주임신부는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이다. 1984년 현재 신자수는 1,937명이고, 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