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부무군 [한] 無父無君

≪한불자전≫에 따르면, 무부무군이란 자신의 임금도, 자신의 아버지도 알아볼 줄 모르는 것을 가리키는 ‘욕설’로 풀이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의 초기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거나 그들을 처단할 때의 죄목으로 사용하여 ‘무부무군의 부도죄’(不道罪)라는 단죄용어로도 사용하였다. 천주교 박해의 원인의 하나로 집약되는 이 용어는 예를 들자면, 천주교인 윤지충(尹持忠)이 모친상 때 조상의 신주를 불사르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든지, 천주교인인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고모상 때 신주를 태워 땅에 묻고 제사를 폐지하였다든지 하는 것에 사실 바탕을 두고는 있으나, 교황청이 이질문화(異質文化)와의 만남에 있어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결정적인 제사 금령(禁令)을 내림으로써 당시 전통 유교사회의 박해는 자연적인 결과로 빚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천주실의≫(天主實義) 등 서학서(西學書)의 폐해를 지적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으레 ‘무부무군’이 패륜적인 것 중의 가장 큰 골격이라고 주장, ‘척사윤음’(斥邪綸音)에서도 ‘폐제훼주’(廢祭毁主)를 ‘무부’(無父)의 불효행위일 뿐만 아니라 금수만도 못한 짓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하상(丁夏祥)은 <상재상서>(上宰相書, 1839)에서 “세상의 도리에는 높고 낮음과 일의 가볍고 무거운 사정이 있다. 한 집안에서 중한 이는 아비만한 이가 없으나, 아비보다 더 높은 이는 나라 임금이고, 임금보다 더 중한 이는 천지대군(天地大君)이신 천주이다. 아비 말을 듣고 임금의 영(令)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무거울 것이요, 따라서 임금의 명을 듣고 천지 대부모의 명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가 더욱 중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는 것은 임금의 영을 짐짓 거스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마지못하여 하는 일이거늘, 어찌 이것으로써 임금도 부모도 몰라본다고 하나이까?”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대군대부’(大君大父) 즉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영신적인 의리에서 절대적인 분을 공경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충효관념은 상대성을 띠게 되었고, 이는 바로 유교사회 윤리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당시의 유교관념으로 볼 때는, 효도대상으로서의 부모도 없고, 충성대상으로서의 임금도 없다는 즉 충효사상이 없는 ‘무부무군지학’(無父無君之學)이 바로 서학인 양 잘못 인식하게 되었지만, 가톨릭적인 입장에서 살필 경우, 교리나 교법(敎法)으로 일국의 풍속을 바꾸려는 계획이 아니요, 나라의 임금과 자신의 아버지가 있음도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천주를 공경하여 영혼을 구해 죽은 뒤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데 있다고 교인들은 주장하였다.

‘무부무군’이라는 용어가 엉뚱하게 천주교를 탄압하려는 박해자들의 기만정신에서 사용된 점도 있지만, 천주교의 보편성이 당시의 국교인 유교의 존재와 위정자의 정교(政敎) 일치적인 정책을 위협할 수 있고, 또 천주교의 초국가적인 위력은 장차 국가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대립적인 개념용어로서 빈번히 이를 남용하여 천주교를 궁지에 떨어지게 만들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본다면 ‘무부무군’이라는 욕설의 이면에서 오히려 가톨릭 교도가 ‘대군대부’를 공경하는 근본교리임을 역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며, 단순한 유교사회의 충효관념도 형식적이고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굴레로서가 아니라, 좀 더 깊이 있는 근본에 연결되도록 내실(內實) 있는 모습으로 되기를 도전 받았다고 평가할 여지마저 생긴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한국 교회사연구소, 서울 1982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 1982 / 한국교회사연구소편, 상재상서(上宰相書), 순교자와 증거자들, 서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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