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사적지로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묘소가 있던 곳.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환상(環狀)으로 퍼져 있는 천주교 초기 전파지역 속에 위치해 있다. 천주교가 이 지역에 전파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1846년 한강변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이곳 신자 이민식(李敏植, 빈첸시오)이 옮겨와 안장한 것으로 보아 이미 그전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그가 순교당한 한강변 백사장에 매장되었고, 이를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었다. 평소에 김 신부를 존경해 왔던 이민식은 틈을 엿보다가 군졸들이 저녁식사를 하러간 사이에 김 신부의 유해를 파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 길로 밤길 150여리를 달려 김 신부의 유해를 미리내로 옮겨 그의 선산에다 안장하였다. 그로부터 7년 후 김 신부에게 부제품을 주었고, 같이 중국땅을 여행하기도 하였던 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Ferreol, 高) 주교도 그 자신의 유언에 따라 김 신부의 곁에 묻혔다. 뒤이어 김 신부의 어머니인 고(高) 우르술라, 김 신부의 유해를 이곳까지 운반해 온 이민식도 이곳에 묻혔다. 한편 김 신부의 유해는 1901년 시복 조사를 위해 용산 신학교로 옮겨져 가고 현재 김 신부의 빈무덤이 남아 있다. 이곳 미리내에 공소가 개설된 것은 1883년이었고, 1887년 갓등이에 본당이 설치되면서 한때 갓등이 본당 공소로 있다가 189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06년 성당이 완공, 축성되었다. 1972년부터 성역화사업이 시작되면서 김 신부의 기념관, 동상, 피정의 집이 건립되었다. 현주소는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 (⇒) 미리내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