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미신이란, 잘못된 또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종교적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deisidaimon’라는 단어는 ① 중립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② 좋은 의미로 쓰여 신에 대한 합당한 존경과 숭배와 두려움을 가리킬 수도 있고, ③ 나쁜 의미로 쓰여 신들에 대한 지나친 또는 근거없는 두려움을 가리키거나, 망령된 믿음에 집착하는 사고와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다. 즉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라서 사실상 널리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즉 종교학이나 종교철학에 있어서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진리성에 반하거나 혹은 진리요소가 빠져 있는 잘못된 신앙을 지칭하여 미신이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미신을 ‘진정한 경신(敬神)의 잘못된 모방자’(verae pietatis falsa imitatrix, Sess. XXII, de sacrificio Missae)라고 규정하였다. 미신은 경신의 덕에 대립하며, 또는 현대의 강신술(降神術)같은 것도 그리스도교의 신앙 그 자체에 대하여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주로 미신가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하느님의 전능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작용을 피조물(被造物)에 귀속시키려고 하는 때에 발생하며, 물건이 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도덕적인 퇴폐의 일종임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미신의 윤리적인 과오는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 말고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결여와 특히 많건 적건 간에 의식적인 사고나 행동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의 이탈 또는 배반을 초래하게 된다. 이리하여 신뢰의 결여 때문에, 마술에 빠지게 되거나, 우상숭배, 점복(占卜) 등에 의하여 미래의 일이나 비밀 따위를 미리 알려고 조바심하게 되고, 미신적인 풍습에 좇아서 소심한 이기적 방법으로 자기의 구령(救靈)과 운명까지도 자기 수중에 장악해 보려는 경향으로 치달리게 된다.
독일의 언어학자 그림형제(Jakob Grimm과 Wilhelm Grimm)는, 신앙의 한계선을 ‘지난’ 또는 그 ‘이상’의 것이라 하여 ‘Oberglaube=Uberglaube’라는 낱말로 표시하고 있으며, 어떤 학자는 Hinterglaube(신앙배후) 또는 Unterglaube(신앙이하)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로 참된 신앙의 빛에 대하여 눈을 가리거나 또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 한계를 뛰어넘어서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을 경우, 비이성적인 미신에 떨어지기 쉽다. 섭리에 대한 신앙이 결핍되거나 쇠퇴하였을 때, 미신이 으레 만연한다. 그러나 미신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짙다. 긍정적인 종교의 거의 모든 체계에 부착되어 있는 부착물들 주변에는 미신으로 볼 수도 있는 것들이 많으며, 이런 것들은 한편으로는 그 종교를 본래의 형태에서 대단히 돋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버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 관념들을 다루는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마음이 놓여 지도록 하게 할 수도 있다.
중세기는 일반적으로 두드러지게 미신의 시대였다고 볼 수 있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적어도 그것들의 영향력이 뻗어나간 한, 미신에 대하여 치명타를 주었던 것으로 보통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사회의 몇몇 부분에서 르네상스와 동행하고 있던 고대의 무분별한 제의가 미신적 공상들과 새로운 종류의 의식들을 담고 있었거나, 또는 장려하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인간은, 지적인 이유 없이도, 항상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그가 알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기를 갈망하며, 비록 실제로는 신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전통적인 제재력을 가지고 있는 권위에 보다 더 기꺼이 복종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현상적인 면에서 본다면. 종교신앙에는 진리요소가 적고 반면에 미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 또는 광신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적지 않다. 이런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순수한 경신을 늘 강조하고, 종교적인 진리의 입장에서 비판, 시정할 필요가 있으며, 미신을 물리치고 하느님에 대하여 신뢰를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좁은 테두리의 합리주의나 과학주의 관점에 서서, 모든 종교신앙을 부정, 그것을 미신이라고 하여 배척하는 경우가 역사상에도 있어 왔고, 또 오늘날도 아직 남아 있으나 이는 종교의 진리성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볼 때, 도리어 좁은 의미의 이성과 과학을 과신하는데서 얻어낸 결론이라고 보아 일종의 미신으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용어적으로 미신과 이단 사설(邪說)이 엄밀히 구분됨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Matthew Amold, Literature and Dogma, do. 1873, chs. on <‘Aberglaube invading’ and ‘Aberglaube re-invading’> / W.E.H. Lecky, History of Rationalism, new ed., vol. 2. London 1887 / H.Th. Simar, Der Aberglaube, ed. 3, 1894 / Plutarch, Moralia including de Superstitione, tr. Eng. Philemon Holland, do. 1903 / F. Walter, Aberglaube und Seelsorge mit besonderer Beriicksichtigung des Hypnotismus und Spiritismus, ed 2, 1911 / A. Wuttke, Der deutsche Volksaberglaube der Gegenwart, ed. 4, 1925 / K. Zucker, Psychologie des Aberglaubens, Heidelberg 1948 / Bauer, Der moderne Aberglaube und seine berwindung. Stuttgart 1950 / J. Kruse, Hexen unter uns? Magie und Zauberglaube in unserer Zeit, Hamburg 1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