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본당 [한] 彌阿洞本堂

서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모칠고. 1942년 혜화동(惠化洞) 본당 산하 미아리 공소가 설치되고 1944년 11월 미아리 본당으로 분리되었으나 초대 본당주임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는 1945년 5월에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4대 오연희(吳然喜, 마티아) 신부 때인 1950년 5월 신자수의 증가로 본당건물을 팔고 같은 미아동의 좀 더 넓은 집으로 본당을 옮겼다. 6.25의 피난시절을 거쳐 1953년부터 다시 사목이 시작된 후 신자수의 급증으로 인해 5대 본당주임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는 1958년 성탄절에 현 길음동 대지(약 1,000평)의 성당 신축공사 완공을 앞두고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 집전으로 축성 미사를 봉헌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의 본당묘지(약 4만평)도 박 신부 때에 마련되었다. 박 신부는 미아동 본당에서 16년간 헌신적 사목활동을 하다가 1965년 69세로 은퇴, 1979년에 선종하였다.

1967년 7대 본당주임으로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가 부임, 당시 방대하게 증가한 교우들(8,333명)에 대한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1968년 정릉(貞陵) 본당, 삼양동(三陽洞) 본당(현 미아 3동 본당), 월곡동(月谷洞) 본당을 동시에 분리 창설시켰다. 1976년에 부임한 11대 이삼복(李三馥, 요한) 주임신부는 본당신자들의 숙원사업인 주일학교 교사 및 수녀원 건물을 1979년에 완공하였다. 미아동 본당은 미아5동 본당의 신설에 따라 1982년 9월 9일자로 그 명칭을 길음동(吉音洞) 본당으로 바꾸었다. 현재 관할구역은 돈암 1동, 정릉 1동, 길음 1, 2, 3동을 일원으로 하는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이며. 신자수는 5,649명(1983년 현재), 현 본당주임은 14대 김충수(金忠洙, 보니파시오) 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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