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로에게서 어느 정도 분명한 신학적 체계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여러 편지의 단편적 성질로 볼 때, 자세하게 연관성을 지어 서술한 경우란 거의 없다. 그의 편지는 그때마다 특정 교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쓴 것이므로 대체로 사목적(司牧的) 성격을 띠고 있다. 이 편지들은 사도 바울로의 전도설교를 전제로 하지만, 그 본성과 내용은 산발적 섬광같은 빛을 보여 줄 따름이다. 그가 신학적으로 사고(思考)했던 것은 사실이나, 기록한 모든 것은 역사와 논쟁의 특수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 그러므로 그의 서간 총집을 바울로의 조직신학책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한 교훈과 권고 속에 흐르는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실천에 있어 찬연한 권위를 발휘한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어떤 인간적 매개나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나에게 직접 온 것”이라고 바울로는 강조하였다. 그의 설교에서 언제나 중심에 자리 잡는 것은 오직 한 분인 구령(救靈)의 중개자이며,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음을 가르쳤다. 그의 편지는 사실상 철두철미한 그 자신의 것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나의 복음’ 아니면 ‘우리의 복음’이라고 표현하였다. 바울로 신학은 본질적으로 성서신학이라고도 하지만 뿌리의 한편에는 구약성서와 율법학자(律法學者)의 전통이 깔려 있고,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역사적 사실과 사도전승, 그리고 직접적인 그리스도로부터의 계시 속에 담겨 있다. 이른바 ‘유태교적 혼합물’은 반대자를 그 자체의 기반으로부터 무너뜨려야 되는 경우에 반유태교 논쟁을 통해서 가장 명쾌하게 진가를 발휘하였다.
여기서 바울로는 어쩔 수 없이 유태교 신학의 범주와 논쟁에 필요한 반유태교적 방식과 증명을 통해서 싸웠지만 그런 논쟁과 관련이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정식(定式)을 전개하였다. 형식적으로 볼 때 신학자 바울로는 율법학자적인 성서 해석과 그렇게 훈련된 증명법을 쓸 때에는 유태인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인 것은 결코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태교를 떠나서 할례와 율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게로 찾아가는 새로운 종교와 경건한 시대적 제약 속에서 변화될 수 있는 하나의 표현방식에 불과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바울로의 설교는 헬레니즘보다는 유태교에 의해, 율법학자의 사상권(思想圈)보다는 구약 예언자의 사상권에 의해, 선배 사도들 의 정신보다는 예수의 정신에 의해 한결 더 강하게 형성되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종교적 지도와 경험의 빛을 통해 바라보고, 철저히 사고하며 해석하여 일반화시켜 갔다. 철저한 사명의식과 독자적인 그리스도의 체험에서 바울로는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내적 저항과 이율배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은 무너뜨릴 수 없는 긴밀한 하나의 통일된 전체를 이룬다. 전체의 배후에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구상(構想)이 빛나고, 그 중심에는 일체를 속죄하고 모든 것을 구원하는 십자가가 굳건하게 서 있다.
[참고문헌] G. Cerfaux, La theologie de I’Eglise suivant Saint Paul, Paris 1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