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포교(捕校)들이 공무를 보던 청사(廳舍). 포장(捕長)의 사택(私宅)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 103위 성인 가운데 이경이(李瓊伊)와 권진이(權珍伊)가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인 1839년 7월에 잠시 이곳에 갇혀서 이순성(李順性)의 온갖 배교 위협과 유혹을 받던 중 탈출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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