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겸파 [한] 抑謙派 [라] Humiliati

12세기 이탈리아의 밀라노지방에서 결성된 신심회(信心會)로 그 후 베네딕토수도회칙을 받아들여 1134년 밀라노지방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공동체(사도 2:44)를 본받아 사유재산(私有財産)을 거부하고 생산조합(生産組合)을 형성하였다.

억겸파란 ‘굴욕을 받은 자들’이란 의미를 가진 말로, 서임권논쟁(敍任權論爭)을 둘러싼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황제 하인리히 2세 사이의 투쟁이 일어났을 때 하인리히 2세에 의해 독일로 잡혀갔다가 귀환한 롬바르디아인 포로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포로생활을 회개를 하면서 보냈는데 롬바르디아로 돌아와서도 그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속에서 점차 급진적인 계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 운동을 교회의 통제 아래 두었다. 그러자 그중 일부는 수도회에 가입하였고, 일부는 계속 세속에 남아 있으면서도 수도원의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기도생활을 계속하여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다. 이들의 이러한 관계가 후에 ‘제3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한편 억겸파의 부인들도 블라소니(Blassoni)의 지도 아래 신심회를 결성하여 병자들을 돌보았다. 이 회는 그 뒤 ‘회칙준수 간호수도회’로 발전하여 1571년 억겸파가 해산된 이후에도 계속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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