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델서 [한] ∼派 [라] Liber Esther [영] Book of Esther

에스델서의 그리스어 텍스트(70인역, 대문자로 된 그리스어 역본들, 안티오키아 루치아노의 개정본 등)는 히브리어 성서와 현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어 텍스트 1장, 3장, 4장, 5장, 8장과 10장에는 히브리어 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절들이 상당량 첨가되어 있다.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는 이 구절들을 따로 모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우리말 공동번역을 포함한 현대어 번역본들 역시 종종 이 방법을 따르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다니엘서의 그리스어 첨가부분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의 제2경전에 속해 있으며, 유태교와 프로테스탄 경전 속엔 삭제되어 있다.

1. 내용 : 유딧서와 마찬가지로 에스델서는 한 유태 여인의 중개를 통한 구원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페르시아에 정주한 유태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대신 하만의 증오로 민족말살이라는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나, 후견인 모르드개의 인도로 왕후가 된 에스델라는 젊은 유대 여인이 개입함으로써 이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제 상황은 뒤바뀌어 하만은 처형되고 모르드개는 잃었던 자리를 되찾게 되며 유태인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했던 원수들을 몰살시켜 버린다. 이러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푸림제’(Purim祭)가 설정되며 유태인들은 매년 이 축제를 거행하도록 명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설화는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독특한 삶 때문에 고대세계로부터 감수해야만 했던 적대감을 우선 표면화시키고 있으며, 이 면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누스의 종교박해 이유와 비교해 볼 수 있다(다니엘서 참조). 유태인들의 격앙된 민족주의 정신은 자기 방어세력으로 노출되어 잔인하게 보이는 보복행위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하나의 종교적 명제 즉 푸림제를 드라머틱하게 정당화시켜 주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모르드개와 에스델이 다시 인정을 받게 되며 거기에서 민족구원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러한 설화는 다니엘의 역사를, 특히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억압받다 숭앙된 요셉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고 있다. 요셉 설화 속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능력을 외적으로 드러내시지 않으면서도 사건을 꾸준히 주관하시는 것처럼, 히브리어 에스델서에선 하느님 이름조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더라도 모든 사건은 그분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2. 저작연대 : 그리스어 성서의 마지막 구절은 본 그리스어 에스델서가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치세 4년, 기원전 114년에 이집트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 따라서 히브리어성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기원전 160년경 팔레스티나에선 이미 유태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라는 기념축제를 거행하고 있었으므로 이 시대에 벌써 에스델서 또는 에스델서가 전해 주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대략 150년경 히브리어 에스델서가 완성된 것으로 보며 이 시대부터 시작해서 114년 사이에 그리스어 에스델서가 탄생되었을 것이다.

3. 종교적 가치 : 비록 히브리어 에스델서가 하느님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고 있지 않더라도 사건의 흐름을 주도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모르드개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이며, 에스델이 왕후에 오르게 된 사건 역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 대한 자비로우신 구원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한 기초단계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에스델과 유태인들의 단식행위(4:16)나 모르드개의 공적인 참회행위(4:1), 모두 그 순간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이는 하느님의 개입을 간절히 열망하는 신앙인의 기본자세였다. 심판에 공정하신 하느님 외에 그 누가 하만의 음로를 벌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하느님의 이름을 끝까지 침묵하고 있지만 침묵하면 할수록 그분의 존재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뿐이다. 중상모략자들의 손에서 다니엘을 구해 내신 분도 바로 이분이 아니었던가? 그리스어 성서의 첨가부분들은 따라서 비종교적인 작품을 종교적인 작품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첨가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서가 지속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바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을 따름이며, 이는 팔레스티나 지방을 떠나 희랍 문화권에 살고 있던 유태교인들로 하여금 본 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우리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어떤 자세로 에스델서를 받아들였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정신과 상반되는 보복행위, 그것도 잔인한 보복행위가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와 같은 보복행위는 유태교의 푸림제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과정으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원수들에 의해서 유태인들이 또는 반대로 유태인들에 의해서 원수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로 화해하여 당신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회개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모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신자들 눈에 에스델서의 가공할 보복행위는 어떻게 보였겠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 행위가 아니었겠는가? 그리스도의 숭고한 사랑을 가일층 빛내 주기 위한 전주곡으로 이해됐을 것이 분명하다. “유태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 (金建泰)

[참고문헌]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a l’Ancien Tesament, Desclee, Paris 1973 / La bible de Jerusalem(BJ), 5 edition, Cerf, Pari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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