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내 특정의 공직을 맡은 여자. 바울로가 “겐크레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교우 페베를 여러분에게 소개”(로마 16:1)하고 있지만 여부제란 용어는 4세기 이후에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부제는 여성 환자를 간호하고 가난한 여자를 돌보며 여자가 주교나 신부나 부제들과 면담할 때 임석하였다. 여성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내 여교우들의 질서유지를 담당하였다. 여부제의 이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예비신자의 세례식 집전 때 부제를 돕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른 세례식이 드물어지자 여부제의 지위도 빛을 잃어 갔는데 이러한 쇠퇴경향은 그리스도 단성론자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 사이에 성행했던 여부제직의 남용 사례, 즉 여부제가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성서를 봉독하고 설교한 사실로 인하여 가속되었다. 몇몇 지역공의회는 여부제직을 철폐시켰으나 여부제직이 서방교회에서는 11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성체 분배권을 포함하여 여러 특권을 지녔던 동방교회의 여부제는 서방교회보다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개신교의 여집사(女執事) 제도는 19세기에 비롯되었으며 성공회에는 주교의 안수를 받은 종신(終身) 여부제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