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본당 [한] 龍山本堂

서울 대교구 소속 본당. 1920년경에 약현(藥峴)본당[현 중림동본당]의 공소로 출발, 1941년 용산본당으로 승격, 1942년 초대 본당 사제로 서울 교구 제 9대 교구장을 지낸 프랑스인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주교가 부임하였다. 1946년에는 신축된 본당건물로 이전, 1948년에 부임한 2대 정규량(鄭圭良, 레오) 신부는 1952년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1954년에 부임한 5대 조창희(趙昌熙, 베네딕토) 신부는 공사중이던 현 성당을 그 해 12월에 준공시켰고, 1955년 구사제관을 신축, 1960년에는 현 강당을 신축하였다. 1963년 샤르트르 성바오로회 소속의 전교수녀를 상주케 했고, 1965년에는 청파동본당을 분리 독립시켰다. 1969년 공덕동(孔德洞)본당을, 1971년에는 신수동(新水洞)본당을 각각 분리 독립시켰다. 1974년에는 7대 남영희(南永熙, 이시도로) 신부가 구사제관을 헐고 그 자리에 현 사제관을, 1977년에는 주일학교 교리교실을 각각 신축하였다. 현재 본당의 관할구역은 산천동, 도원동, 용문동, 신창동, 원효로 2, 3, 4가, 청암동, 마포동, 도화 1, 2동 등 11개동에 걸친다. 현 본당주임은 김병일(金秉溢, 요셉) 신부, 본당 주보는 성모성심, 신자수는 3,088명(1983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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