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한] 自然 [라] natura [영] nature [관련] 환경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우주만물, 즉 자연을 창조하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을 태우고 복종시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세상 만물 즉 자연이 인간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이것을 현명하게 이용하며 더 큰 이익을 위하여 노동으로 완성할 사명이 인간에게 맡겨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자연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발전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누구든지 필요한 것을 땅에서 찾을 권리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 땅과 그 안에 포함한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하시었다. 따라서 창조된 모든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우주 지배의 원리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다. 오늘날의 과학적 정신은 과거와는 다른 문화형태의 사고방식을 낳아 주었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자연의 면모를 바꾸어 놓았고 이제는 우주정복을 시도하게끔 되었다. 인간의 지성은 시간에 대해서까지 그 지배권을 확대시켰다. 역사지식으로 과거를 지배하고 기술과 계획혁신의 가능성은 과학지식의 종합, 홍보의 집단성과 동시성, 완전 상호의존성을 강요하는 이른바 ‘경제세계’의 출현에 기인되어 있다. 이제 사람들은 생명유지를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물과 같은 천연자원뿐 아니라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는, 작고 불안한 생명권이 무한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이야말로 온 인류의 유일한 공유재산으로 보호받고 보존되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주 지배와 생산 증가를 위한 계획도 어느 것이나 다 결국은 인간에게 봉사하려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계획이란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차별을 제거하며, 인간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누구나 자기의 물질적 복지를 도모하고 윤리적 향상을 추구하며 영신기능을 계발할 수 있게 한다. 진보는 사회적 향상과 경제적 발전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공동재화가 평등하게 분배되도록 증산을 꾀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또 대자연을 개발하여 인간이 살기에 보다 적합하도록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하지 않다.

진보에 노력하는 사람들은 먼저 거기에 무슨 위험이 있었는지를 배워야 한다. 과대평가될 내일의 기술주의(테크너크래시) 즉 기술의 횡포가 가져올 해악(害惡)은 과거의 자본주의가 갖다 준 해악에 못지않을 것이다. 경제와 기술이 인간에게 이바지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의도 없는 것이다. 인간 역시 자신의 행동을 명령하고 그 행동의 가치를 판단하며 스스로의 성장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조주가 부여하신 본성에 알맞도록 자유로이 본성에 알맞도록 자유로이 본성의 능력과 요구를 받아 계발해야 할 것이다. 자연 정복은 무모한 도시비대와 공장들의 지나친 팽창을 동반한다. 기술의 탐구와 자연의 변형(變形)에 바탕을 둔 공업의 기계화 작업은 날로 발전을 거듭하여 무한대의 생산을 꾀하게 된다. 어떤 기업체는 날로 발전하며 서로 제휴하는가 하면, 다른 기업체는 자취를 감추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시킨다. 직업적 내지 지역적 실업현상, 근로자들의 직업 전환과 이동, 기술공들의 계획적 적응, 여러 생산분야의 불균형 등을 초래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 수요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사치성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많은 소득을 성취하고서도 자기활동의 성과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면서도 자기가 만들어낸 생산품의 노예가 되고 있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서만, 즉 인간의 선과 가치를 캐냄으로써만 참되고 완전한 인간성에 도달한다는 것이 인격의 특징이다. 따라서 인간 생활이 언급될 때마다 자연과 문화는 밀접하게 연결된다. 문화란, 넓은 의미로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는 모든 사물을 말한다. 인간은 지식과 노동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고 노력하고, 가정과 시민사이에 있어서 관습과 제도를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생활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며 마침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위대적 정신적 경험과 소망을 그 작품 속에 표현하고 전달하며 보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발전과 더 나아가서 전인류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

사실에 있어서 자연의 이용, 노동, 자기표현, 종교의 실존과 관습의 형성, 입법과 법제도의 설립, 학문과 예술의 발전, 미의 발굴 등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공동조건과 생활수단 및 서로 다른 조직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이같이 물려받은 제도에서 각 인간공동체와 고유한 전통이 형성된다. 이렇게 하여 역사적 특정 환경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각 민족과 시대의 사람들이 속하게 되며 거기서 문화발전에 필요한 여러 재화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 노력과 재능을 다하여 자신의 생활을 발전시키려고 언제나 노력해 왔다. 현대에 와서 인간은 특히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그 지배권을 거의 자연계 전체에 확장했고 또 계속 확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들 사이의 여러 가지 교류 수단이 증가함에 따라 인류 가족은 전차 전세계의 한 공동체임을 자각하며 그렇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한때 초인간적인 힘에 의존하던 많은 혜택을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전인류에 퍼져가는 이 거대한 노력 앞에서 인간들에게는 인간 활동의 의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개인적 내지 사회적 노력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가 생긴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을 위탁받아 보존하며 거기서 종교적 내지 윤리적 분야의 여러 원리를 찾아내고 있으므로 개개의 문제에 언제나 즉각적인 해답은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근에 인류가 걷기 시작한 행로를 비추어 주기 위해서 계시의 빛을 모든 사람의 경험에 결부시키고 있다. 인간의 시계(視界)는 스스로 선택한 환상에 적응되지만 다른 또 하나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뜻밖에 극적으로 따라오는 인간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 사라들은 이 사실을 갑자기 의식하게 되었다. 스스로 자연을 불법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파괴할 위험에 직면하고 인간 스스로가 도리어 이런 타락의 희생물이 될 위협도 없지 않음을 느끼게 외었다. 인간은 자연의 타락과 폐물, 새로운 질병과 전면적 파괴력 같은 물질적 환경이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체계마저도 이제 인간이 조절할 수 없을 정도여서 감당할 수도 없는 내일의 생활 조건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이것은 전인류 가족에 관계되는 광범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그리스도 교인은 이 같은 새로운 전망에 관심을 모으고, 이제 공동운명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

오늘날 부강한 국가들의 천연자원과 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 대량소비의 결과로 끔찍한 폐기물이 대기와 공해를 더럽히고 있으므로 지상 생명 유지에 필수 요소인 공기와 물을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오염시키고 있다. 이 같은 대량소비와 오염현상을 그대로 증대되게 방치한다면 공해는 전인류에 미치게 될 것이다. 1971년 스톡홀름에서는 제1회 인간 환경문제 회의가 개최되어 공해문제를 다루었다. 선진국들의 물질적 욕구가 다른 국가들을 빈곤에 떨어뜨리고 혹은 지구상의 생명체를 전멸시킬 수 있는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선진국들이 요구되는 물질을 증가시키려는 권리를 과연 어느 정도 주장할 것인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이미 부유해진 나라들은 대량소비를 억제하고 보다 검소한 생활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인류의 공동 유산인 물질과 생명을 인류 전체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어 누려야 할 절대적 정의의 요청에 따라 이 유산을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 개발과 노동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때로는 노동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지만, 노동을 하느님께서 명하시고 축복하긴 것이 사실이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창조사업을 완성하는 데에 창조주와 협력해야 하며 자기 안에 새겨진 정신적 모상을 이제는 땅에 되새겨 주어야 할 것이다. 지력과 상상력과 감수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긴 하느님께서는 이로써 당신이 시작하신 일을 완성할 수단과 방법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예술가, 기술자, 고용주, 노동자, 농부 할 것 없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어떤 의미에서 창조를 계속하는 셈이다. 인간의 노력에 저항하는 물질을 접할 때 그 안에 자신의 모상을 새겨 주며 자신 안에서는 인내와 재능과 연구심을 길러낸다. 또한 여럿이 함께 일함으로써 희망과 고통, 소망과 기쁨을 서로 나누게 되며 따라서 뜻이 합쳐지고 정신이 가까워지며 마음이 서로 결합된다. 사람들이 함께 일함으로써 서로 형제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환경 (韓庸熙)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에 관한 회칙, 1967 /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2부 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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