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한] 全州敎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교구. 전라도에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전주(全州)의 유항검(柳恒儉)이다. 그는 1784년 조선 교회가 창설되자 곧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먼저 가족과 친척을 귀화시키고, 친구와 이웃에 전교하여 전라도 교회의 기틀을 잡았다. 이어 진산(珍山) 사람인 윤지충(尹持忠)이 서울에서 김범우(金範禹)의 권고로 세례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전교하니, 전라도에서 천주교는 급속히 전파되어 나갔다. 그러나 1791년에 윤지충과 그의 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조상제사문제로 체포되어 전주감영에 수감되었다가 그해 11월 13일에 순교하니 전라도가 첫 번째 순교자의 피로 물들여졌다. 이어 1801년 신유(辛酉)박해를 비롯한 거듭되는 박해로 유항검, 유종선(柳宗善)과 이루갈다 동정(童貞)부부 등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1886년 한불(韓佛) 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신교의 자유가 얻어지자 전라도는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 나날이 교세가 늘어났다. 그러던 중 1911년 조선교구(서울교구)에서 대구교구가 분할 독립되자, 전라도는 대구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전라도에는 전주, 안대동(安大洞), 강경(江景), 수류(水流), 목포(木浦), 제주(濟州), 정읍(井邑) 등 7개의 본당이 있었고, 한국인 신부로는 김양홍(金洋洪), 이상화(李尙華) 신부 2명과 피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5명이 있었다. 그 뒤 교세가 더욱 늘어나자 1931년, 즉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해에, 전라남북도를 장차 자치교구로 키우기 위해 감목대리구로 설정하여 초대 감목대리로 김양홍 신부가 임명되었다.

1934년에는 전라남도에 애란(愛蘭)의 성 골룸바노(St. Columban) 전교회의 전교구역으로 위촉되어 감목대리구로 설정되고 1937년 4월 13일에는 전라남북도 감목대리구가 모두 교구[지목구]로 승격되어 전주교구장[지목]에 김양홍 신부가 임명되었다.

1942년 1월 5일에 김양홍 신부가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주재용(朱在用) 신부가 그 후임으로 취임하였다가 1946년 대구교구장으로 전임되자, 같은 해 1월 16일에 교구장 서리로 김현배(金賢培) 신부가 취임하였다.

1950년 6.25동란이 일어나 전라도지방이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가 교구장 이하 거의 모든 신부가 체포 감금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으나, 다행히도 풀려나, 전란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교회를 복구하여, 1957년 1월 21일에는 전주교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었고 그해 5월 21일 김 교구장이 초대 주교로 승품되었다.

1960년 4월 30일에 김 교구장이 별세하고 1961년 1월 3일자로 서울 성신대학 학장이던 한공렬(韓-烈) 신부가 4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그해 3월 12일에 로마에서 성성식을 가졌다. 1962년 3월 10일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의 설정에 따라 정식 교구가 되었으며 1973년 2월에는 김재덕(金在德) 주교가 제5대 교구장으로 취임하였고 1982년에 박정일(朴正一) 주교가 제6대 교구장으로 취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전주교구의 관할구역은 전라북도 전역이며 현재의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7만 7,901명, 본당 40개소, 공소 194개소, 한국인 신부 86명, 외국인 신부 3명, 한국인 수녀 92명, 외국인 수녀 1명, 남자수도단체 1개, 여자수도단체 11개, 병원 2개소, 양로원 1개소, 나병수용소 9개소, 유치원 14개소,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2개교, 주일학교 40개소 등이다.

[참고문헌] 金九鼎 · 金榮九 共著 天主敎湖南發展史, 全州敎區,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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