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1907∼1978). 신부. 세례명은 빈첸시오. 1907년 12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외리(長淵郡 長淵邑 外里) 71번지에서 부친 조성옥(趙成玉)과 모친 김흥석(金興石)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경애학교(敬愛學校) 2년을 수료하고 당시 장연본당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추천으로 192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사제수업을 마치고 1936년 12월 17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종현성당(鍾峴聖堂)[지금의 명동 대성당]에서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유영근(兪榮根, 요한), 윤을수(尹乙洙 , 라우렌시오), 오기선(吳基先, 요셉)과 함께 사제로 서품, 1933년 1월 강원도 춘천본당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1935년 춘천본당 주임, 1936년 신설 서천(舒川)본당 주임, 1938년 황해도 연안(延安)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를 담당하던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추방당하자 평양교구로 잠시 파견되어 1942년 평남 안주(安州)본당, 1944년 평양 대신리(大新里)본당에서 사목하다가 1944년 11월, 서울교구로 복귀하여 충남 논산본당에 부임, 1945년 대건학원(大建學院)을 창설하고 그것을 모체로 1947년 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겸임하였다. 이 학교는 후일 대건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1948년 신설 신당동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재직 중 6.25동란이 일어나자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군종신부로 입대, 1953년 한국 가톨릭군종신부단의 총책으로 육군본부 제2대 군종과장에 임명되어 초창기 군종사업을 개척하고 1954년 예편, 예편 후 서울교구 상서국장(尙書局長)[현 사무국장]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가평본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본당 내에 정지신학원(貞知神學院)[가톨릭교리신학원의 전신]을 설립, 1963년 신학원을 미아리본당 내에 옮기고 원장으로만 봉직하였다. 1963년 7월 서울시로부터 신학원의 정식인가를 받고, 1964년 수유동(지금의 성체회수련원)에 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64년 8월 청량리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1971년 은퇴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78년 9월 12일 간암(肝癌)으로 성모병원에 입원 중 72세로 선종,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