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한] 池學淳

지학순(1921∼1993). 초대 원주(原州) 교구장. 주교. 세례명 다니엘. 평남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에서 출생. 1934년 중화본당 주임 콜먼(Joseph Coleman)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였다. 1935년 중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940년 병으로 중퇴한 후 1943년 다시 함남 덕원(德源)신학교에 편입, 중등과 · 고등과 · 철학과를 거쳐 1948년 신학과에 진학하였다. 1949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덕원신학교가 폐쇄되자 월남을 시도했다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이해 말 윤공희 대주교(당시 신학생)와 함께 월남에 성공, 성신대학(聖神大學)[현 가톨릭大學]에 편입했고 6.25 동란 중 국군에 지원입대하여 전투에 참가, 1952년 2월 횡성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곧 제대하고 가톨릭대학에 복학, 1952년 12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 군종신부, 1953년 청주 복문로본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1956년 로마 프로파간다대학에 유학, 동대학에서 교회법석사 · 교회법박사 학위를 차례로 취득하고 1959년 귀국했고, 귀국 후 청주교구장 비서, 1962년 부산 초장동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1965년 원주교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6월 29일 주교로 성성(聖成)되었다.

교구장 부임 후 원주교구의 교세 신장과 발전에 주력, 많은 교육 · 사회복지기관을 설립하고 신협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197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사회정의 ·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정의평화위원회 총재, 한국노동교육협의회 회장, 한국 교회사회선교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이러한 사회정의 · 인권 · 노동문제에 대한 강경한 발언과 투철한 실천으로 인해 1974년 내란선동과 긴급조치 1.4호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현재 원주교구장으로서 원주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고 그밖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 주교회의 인성회 담당주교, 평신도사도직 전국 단체, 한국 가톨릭 나사업가연합회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내가 겪은 공산주의>(경향잡지, 제62권 제1호 1970. 1월호∼제64권 제3호 1972년 3월호), ≪정의가 강물처럼≫(형성사, 1983) 등이 있다.

[참고 : 지학순 주교는 1993년 3월 12일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여, 제천 배론 성지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현재 원주교구 제2대 교구장은 1993년 착좌한 김지석 야고보 주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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