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창설된 마산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그리스당의 도움이신 성모. 현 명칭은 옥봉동(玉峯洞)본당이다. 진주본당의 초기 교회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1896년에 입국한 프랑스인 타케(Taquet, 嚴宅基) 신부가 1898년 진주 배나무골에 기와집 한 채를 사서 전교를 시작하였으나 관헌들과 부랑배들의 악의적인 방해로 전교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변두리 지대인 비라실[장재동]로 옮겨갔다가 1901년 마산(馬山)으로 전임되고 말았다. 10년이 지난 1911년 대구교구가 신설됨에 따라 초대 교구장이었던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의 주선으로 미국의 한 열심한 교우의 희사금을 얻게 되어 옥봉동 산 밑, 일명 순천당이라고 불리는 땅에 120평 대지를 매입하고 첫 공소를 열었고 남해 창선에서 이사온 이낙종(스테파노)이 공소 회장직을 맡아 전교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그의 아들 이상석(가브리엘)이 청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한 결과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공소를 설치한 뒤 15년이 지난 1926년에 옥봉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문산(文山)본당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1923년에 새 성당을 축성한 이래 사제들의 후생에도 힘을 기울여 1943년 사제관을 신축하고 몇 차례 증 · 개축이 있었다. 교세도 날로 확장하여 1959년에 삼천포를 분리시켜 신설 본당을 설치하고, 이 이듬해 1960년에는 사천(泗川)본당이 분리 독립되었고, 이어 1961년 진주시내에 칠암동본당을 분리시킴과 동시에 본당명을 옥봉동본당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일찍이 육영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1920년에는 해성학원을 개설하였고, 1926년에는 해성유치원을 열었으며, 1961년에는 칠암동(七岩洞)에 천사유치원을 개설 운영하였다. 초대 정수길 주임신부 이래 14대 박재근(朴在根,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에 이르기까지 13명의 신부가 봉직하였으며 현재 관할공소 3개소, 신자수는 2,580명(1984년 현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