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아들’이라는 뜻의 라틴어. 성령의 이중적 발출을 표현하는 교의적(敎義的) 문구. 원래의 니체아 신경(信經)에는 없었으나 니체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서방교회에 의해 삽입되어 “아버지와 그 아들로부터 나신 성령…”이라고 쓰이게 되었다. 제3회 톨레도(Toledo) 교회회의(589년)에서 처음 삽입되었으며 796년 프리울리(Friuli)의 시노드에서 아킬레이아의 파울리노(Paulinus of Aquileia)에 의해 그 삽입이 옹호되었으며 전(全) 프랑크 왕국의 미사에서 암송되기 시작한 800년경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847년 프랑크왕국의 수도자들에 의해 이것이 예루살렘의 올리브산 위에 있는 그들의 수도원에 소개되었을 때 성 사바스(St. Sabas)의 동방교회 수도자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았다.
이 문제가 레오 3세에게 알려졌을 때 그는 교의적인 문제에서는 동의하였지만, 신경에 필리오케를 첨가하는 것은 막으려고 하였다. 그는 이 신경을 필리오케가 없는 원래의 형태대로 성 베드로의 묘지에 기탁된 2개의 은제 테이블에 새겨 넣도록 하였다. 그러나 필리오케는 미사에서 계속 불려졌고 1013년경에는 로마 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신경에 첨가되었다.
이 문구를 신경에서 삭제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던 포시우스(Photius) 시대 이후로 필리오케는 정교회가 로마 교회를 공격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다. 필리오케를 둘러싼 이들 양 교회 사이의 논쟁은 리용(1274년)과 피렌체(1439년)에서의 동서방 재결합 공의회 때 그리스 정교회측이 비록 신경에 필리오케를 첨가하는 것은 거절하지만 그 교의는 승인함으로써 중단된 듯 보였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1874년과 1875년에 본에서, 1912년에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구 가톨릭과 영국 성공회 그리고 동방교회의 대표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지만 긍정적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 동방이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