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철학 [한] 敎父哲學 [영] patristic philosophy [독] patristische Philosophie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고대 이교문명(異敎文明)과는 전혀 다른 원천에 바탕을 두는 종교로서 등장하였지만, 차차 이교 세계 내부에서 교세를 신장해 감에 따라, 고대문명 특히 그리스의 철학사상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담당한 사람들이 교부(敎父, [라] Patres)였고, 이들 교부의 저술을 먼 뒷날까지도 계속 인용하여, 정통적인 교설(敎說)의 권위로서 삼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다. 교부의 시대는 2세기부터 8세기까지에 이르는 사이로서, 이 시기에 발달한 그리스도교 철학을 ‘교부철학’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고대의 이교사상과의 사이에 최초의 접촉을 나타내 주는 이 교부철학은, 고대문명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그리스도교 사상 가운데로 섭취하는 한편, 그리스도교의 교설 자체가 궁극에 있어서는 이성에 의한 해명을 허용하지 않는 ‘신비’를 담고는 있다 하더라도, 파악 가능한 범위 안에서는 교설 자체도 어느 정도의 이성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사상은 하나의 총합적인 세계관으로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기초 위에서 중세의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계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의 지식과 세상의 지식을 구별하여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하였으나 이교적인 철학적 사변의 도전을 받으면서 진리옹호와 변증이 불가피한 사실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교의 지식인들은, 자기들이 서로 크게 다른 두 세계의 교차점에 서 있음과, 또 양자가 반드시 대립적인 것만은 아님을 의식하고 있었다. 콰드라투스(Quadratus), 아리스티데스(Aristides) 등은 로마 황제에게 《호교서》(護敎書, Apologia)를 제출하여 그리스도교 신자의 신앙 및 신의 바른 개념을 철학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부철학은, 고대 헬레니즘(Hellenism)의 최고의 유산과 유태교로부터 많은 것을 이어 받은 그리스도교신앙의 융합을 표시하여 준다. 교부철학은 세 가지의 주요한 철학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가운데 ② ③ 학파설은 이단적이다. 즉 ① 그리스도교와 이교주의와는 완전히 대립하는 것이라고 보는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의 입장, ② 그리스도교와 이교주의는 완전히 조화된다고 보는 그노시스(Gnosis)파의 입 장, ③ 그리스도교의 지식과 이교의 사상은 협력이 가능하지만, 이교철학은 그리스도교에 종속해야 하며, 더 높은 계시에 의하여 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등이다.

초기의 교부시대의 이단과의 충돌에 있어 그 대부분은 일부 그리스도교 사상가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중해 연안의 이교세계의 여러 설에 종속시키려고 시도한 데서 비롯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철학사상 최대의 교부인 아우구스티노(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당시 로마 사회에 있어서 변론가로서의 이교적인 교양과 어머니에게서 영향받아 가톨릭신앙에 돌아오기까지의 회심의 과정을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es, 13권, 400년경)으로 펴냈는데, 이는 이교문명으로부터 그리스도교 문명으로 바뀌어 가는 시대의 고뇌와 환희를 기록한 정신사상 귀중한 고전이 되었다. 이밖에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De Trintate, 15권, 400?~419?), 《신국》(De Civitate Dei, 22권, 413~426) 등 후세의 그리스도교 사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의 하나로 작용하였다.

[참고문헌] E. Brehier, Periode Hellenistique et Romaine, v. 1, 2 of Histoire de la philosophie, t. 2, Paris 1926-1932 / A.J. Festugiere, L’Ideal religieux des Grecs et l’Eglise de Clement de Rome a Clement d’Alexandrie, Paris 1957 / C. Tresmonatnt, A Study of Hebrew Thought, tr. M.F. Gibson, New York 1960; La Metaphysique du christianisme et la naissance de la philosophie chretienne, Paris 1961 / J. Danielou, Message evangelique et culture hellenistique aux II’ et III’ siecles, v. 2 of Histoire des doctrines cheretiennes avant Nicee, Tournai 1961 / C. Tresmontant, The Origins of Christian Philosophy, tr. M. Pontifex, Now York 196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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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신학 [한] 敎父神學 [라] theologia patristica [영] patristic theology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고 전하였던 교부들의 이론 체계. 로마의 글레멘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등 초세기의 교부들 사이 에는 아직 신학이 성립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성서의 자료와 사도들의 설교를 이론적 분석없이 되풀이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2세기와 3세기에 이르러 교회와 이교도 세계와의 접촉이 잦아지게 되자 두 가지 형태의 호교론자들이 나타났다. 타치아노와 같이 이교도의 철학을 배척하는 전통주의자들과, 유스티노와 같이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익을 위하여 기꺼이 적용하는 측이 그것이다. 후자는 그노시티즘의 오류에 빠질 위험에 놓여 있었으나 다행히도 이레네오는 계시진리의 살아있는 보고(寶庫)인 교회의 전승에 충실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유스티노의 사변적인 노선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및 오리제네스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고 대 카파도치아노, 바실리오, 니사의 그레고리오, 나치안츠(Nazianzus)의 그레고리오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특징은 플라톤 사상과 성서의 비유적 해석과 심원한 신비주의에로 현저히 기우는 경향이었다.

이와 달리 안티오키아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 및 테오도레토를 배출하였는데 이들은 전 교부시대를 통하여 신학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 뒤이어 일어난 논쟁들의 주요 논점은 최초의 7개 세계 공의회의 개 회와 때맞추어 부각되었는데 각 공의회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주요 교의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로부터 두루 이익을 보았다. 교부들 가운데 신학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들 중의 하나는 아우구스티노이다. 그는 자기보다 앞선 4세기간의 전승을 종합하였고 난해한 교의적 문제를 해명하였으며 교리와 관련되는 지식을 조화 통합시켰다. 이 지식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자들이 통일된 사상체계로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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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들의 신앙 [한] 敎父~信仰 [영] The Faith of Our Fathers

미국 북(北)캐롤라이나(North Car olina) 교구장이었던 기본스(James Gibbons, 1834~1921) 추기경의 저술로 1876년 간행된 호교론서(護敎論書). 우리나라에서는 1944년 장면(張勉) 박사의 번역으로 초간되었고, 그후로 현재까지 계속 중간(重刊)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서문(序文), 본문(本文), 부록(附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서문에서는 천주교에 대해 대중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알게 하고 개신교 신자들로 하여금 천주교의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는 저자의 저술동기가 밝혀져 있고, 본문에서는 서론(緖論)과 36개의 장(章)에 걸쳐 천주교의 주요교리가 설명되어 있으며, 마지막 부록에는 교부(敎父)들의 역전(略傳), 역대 교황표 등 15개 조목에 걸쳐 천주교에 대한 일반상식과 현황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번역되어 초간된 뒤 1960년대까지 가장 권위있고 감동적인 호교서로 우리나라의 지식층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또 역자인 장면 박사의 간접적인 전교와 함께 많은 지식인들이 입교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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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한] 敎父 [라] Pater Ecclesiae [영] Father of the Church

일반적으로 신앙이나 교회생활면에 중대한 영향을 준 분을 가리키나, 가톨릭 신학에서는 다음 네 가지의 조건을 갖춘 분을 의미한다. 첫째 그 가르침이 사도들의 설교에 부합하는 정통성을 지녀야 하고, 둘째 사도들의 교회에 시기적으로 가까운 분들, 즉 고대성(古代性)이 있어야 하고, 셋째 그 생활이 모범적이어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던 분이라야 하며, 넷째 교회가 전통적으로 교부라고 인정해 온 분이어야 한다.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라틴문화권의 교부 즉 라틴교부와 그리스 문화권의 교부 즉 그리스교부로 구분된다. 이를 ‘고대성’이라는 조건에 비추어 볼 때 라틴교부들은 대 그레고리오 성인(St. Gregorius Magnus, 540~604)이나 세빌리아의 이시도로 성인(St. Isidorus, 560~636)에서 끝나고, 그리스교부들은 요한 다마세노 성인 (St. Joannes Damascenus, 676~749)으로 끝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교부라는 단어는 초세기 교회에 사목하는 주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성립되는 부자(父子) 관계를 적용한데서 비롯되었다. 4세기부터 이 단어는 그 특수성을 갖게 되고 사도들의 설교와 구별되는 교부들의 전통이라는 표현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의 설교 내용과 다른 교부들의 전통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내용을 가르치고 증거한다는 의미에서 교부들은 교리에 밝은 학자들뿐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신앙의 증거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교리가 등장헸을 때 그것이 교부들의 가르침인지 비교해 보았고 이에 위배(違背)되는 사항이 있으면 배척되는 이유가 되었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을 교부하고 부르는 오늘날의 관습 역시 4~5세기에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은총론 등 교의사상(敎義史上) 결정적 역할을 한 공의회를 치르면서 비롯되었다. 원칙적으로 교부라고 하면 주교들이었으나 아우구스티노는 신부(神父)인 예로니모를 교부라 부르기도 하였다. 교부들은 교회사 안에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도들의 설교가 그리 스, 라틴문화권에 침투하게 되자 인간적 사색과 추리를 필요로 하였고, 이것이 교부들의 연설이나 저술로 표현되었는데 여기서 신학이 탄생하였다. 그뿐 아니라 복음이 다른 사상체계와 접촉하는 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이설(異設)에 직면하여, 교부들은 사도전래의 신앙유산을 그 시대의 문화와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였기에 교의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성서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 이듯이 교부들의 전통도 인간적이다. 거기에는 그 시대 문화의 영향과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다. 2~3세기 교부들의 호교론적 동기와 4~5세기 교부들에게 지배적인 이설에 대한 반박의 동기 등에도 그 시대성의 영향을 보아야 한다. 특히 교부들의 성서 해석에 관하여 현대 성서주석학의 지식으로 볼 때 유치한 일면을 지적할 수 있으나 교부들은 성서를 가까이하고 존경하며 신앙과 생활규범에 있어서 성서 정신이 투철하였기에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이 결실은 교의와 신학에서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활규범, 전례, 영성생활 등에 창조적 효과를 내어 오늘의 교회를 탄생시키는 아버지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도교인의 생활규범은 교부시대를 거치면서 윤곽이 잡혔고 전례형태도 교부들이 확립시켰다. 교부들의 신학적인 저술도 사목자로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인의 영성생활을 심기 위함이었으므로 교부들에게 있어서 영성생활과 신학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교부들은 교회의 아버지라 할 수 있으나 그들은 또한 교회의 아들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다. 교부들의 전통은 우리의 복음 선포와 설명을 위한 노력에 빛과 자극을 주므로 신학은 항상 이를 존중하고 참고하지만 시대성을 망각하고 교부들의 전통만을 절대화하지는 않는다. 각 시대의 교회는 그 나름으로 임무와 활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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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조약 [한] 敎民條約

1899년(光武 3년) 3월 9일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와 내무지방국장 정준시(鄭駿時) 사이에 체결된 조약. 교(敎) · 민(民) 간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체결된 조약으로 전문 9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선교사는 행정에 관여할 수 없고 행정관은 선교사의 활동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교안(敎案) 발생 때 주교와 내무지방국장이 서로 협의하여 해결할 것도 밝히고 있는 데, 이는 1886년 한불조약 이후 끊임없이 발생해 온 교안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교회와 국가, 양측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조약이 체결된 뒤 1901년 제주도 교난사건을 마무리짓는 교민화의약정(敎民和議約定), 1904년 선교조약(宣敎條約) 등이 교회와 국가 사이에서 다시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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