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재림
파라과이 [원] Paraguay
남아메리카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는 내륙국가. 면적은 40만 6,752㎢ 에 인구 337만명이 살고 있으며, 가톨릭 신자수는 310만명(1982년 현재)이다.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1537년에 파라과이에 도착하여, 아순시온(Asuncion)으로부터 내륙지역으로 포교를 전개하여 갔다. 아순시온교회가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었다. 파라과이 주교좌에 교회법상의 창설자는 스페인인 후안 데 바리오스(Juan de Barrios)였으나 그는 현지에 가지 않았고, 따라서 최초의 주교좌 신부는 베드로 페르난데스 토레(Pedro Fernandez de la Torre)(재임 : 1556∼1572)였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국가관계가 늘 긴장된 관계에 있었고, 국가가 교회에 대하여 보호자로서의 기능을 늘 수행하여 왔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의 완전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재정적인 분리만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파디 [원] Pardy, James
Pardy, James(1893∼1983).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 주교. 초대 청주(淸州) 교구장. 한국명(韓國名) 파지(巴智).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Brooklyn)에서 출생. 1918년 뉴욕시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메리놀회에 입회, 1927년 성 프란치스코대학, 1930년 워싱턴 가톨릭대학을 졸업했고 1930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메리놀회 소신학교 교사를 거쳐 1932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 평북 비현본당 보좌신부, 1934년 평북 의주본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고, 의주본당에서 사목 중이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제(日帝)에 체포되어 신의주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뒤 평양교구의 모든 메리놀회 선교사들과 함께 강제 추방되었으며 그 뒤 미(美) 육군에 입대, 유럽에서 군종신부로 사목하였다. 1946년 메리놀회 소신학교 교장, 1948년 메리놀회 교육감을 거쳐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군종신부로 두 번째로 한국에 입국, 1953년까지 거제도와 마산의 포로수용소에서 사목했고, 1953년 메리놀회 한국지부장 겸 충북감목대리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1956년 메리놀회 부총장으로 선출되어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1958년 청주교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어 이 해 9월 16일 주교 성성식을 갖고 11월 21일 세 번째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1969년 6월 교구장직을 사임할 때까지 청주교구장으로 청주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며 교세 신장에 주력, 부임초 5개 본당에 교우수 8,000여명에 불과하던 교세를 11년만에 25개 본당, 교우수 5만 3,000명으로 확장시켰고 그 밖에도 교육 · 사회 ·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청주교구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69년 6월 고령으로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성심원장으로 불우한 노인들을 돌보다가 1976년 본국으로 귀국, 캘리포니아의 메리노회 은퇴신부 휴양소에서 생활하던 중 1983년 2월 17일 사망하였다.
파나마 [원] Panama
파나마 공화국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협착한 국가로서 남 · 북아메리카를 연결지어 주고 있다.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의 사이에 끼여 있으며, 북으로 대서양, 남으로 태평양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면적 7만 7,082㎢에 인구는 204만명(1982년 추계)에 달한다.
파나마는 1502년 콜룸부스가 발견하였으며, 곧 이어 가톨릭이 들어왔다. 16세기 초에 이 나라에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선교사들은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소속이었다. 이들 선교사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도미니코회의 산토 토마스(Adriano Ufelde de Santo Tomas)이다. 예수회는 16세기 중엽에 이 나라에 진출하였다. 예수회는 선교사업 외에도 청년들의 교육에 크게 기여하였다.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도 사제가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파나마 출신 사제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지만, 스페인 출신 사제들로써 보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었다. 파나마 출신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은 한 곳뿐이며, 하느님의 소명에 응하는 파나마 여인들이 많아 파나마에는 사제보다 수녀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