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 [한] 判功

한국 교회의 특수용어로 교우들이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해성사(告解聖事)를 말하며, 이때의 고해성사는 원칙적으로 성사표(聖事表)를 받은 교우들만이 받을 수 있다. 교회법상 고해성사는 1년에 한 번만 받아도 되는 것이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관례였고, 이를 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 ‘판공하다’라는 동사(動詞)는 교우가 고해하는 행위와 신부가 성사주는 행위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교우와 신부가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공소의 경우 판공은 봄, 가을 신부의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서 이루어져, 이 때문에 신부가 봄에 공소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공소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판공은 1년에 두 번인데, 그 시기는 예수부활 대축일 전과 예수성탄 대축일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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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라] Pax Romana

1921년 스위스에서 결성된 가톨릭학생 국제조직. ‘Pax Romana’란 원래 ‘로마 지배 아래의 평화’란 뜻으로 정치적 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포함하는 말이었지만, 이것이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에 의한 세속의 지배, 즉 정치권력을 초월한 하느님의 세속지배라는 역설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이 국제 가톨릭 학생연맹의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888년 스위스의 바론 몬테나가 가톨릭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추진할 학생단체를 만들어, ‘Pax Romana’라고 명명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본부를 스위스에 둔 팍스 로마나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교회 내의 공식단체로 인정받았고, 현재 100여 개국이 넘는 국가에 회원단체를 두고 있다. 아울러 팍스 로마나는 국제연합(U.N.)의 경제사회이사회(UNESCO, the Economic and Social Council of the United Nations)의 자문기구로 뉴욕과 제네바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한국 가톨릭 학생 총연합회는 1954년에 창립된 후 이듬해 팍스 로마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1950대 한국의 팍스 로마나는 레지오 마리에 중심의 활동에 치중한 나머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팍스 로마나 본연의 활동을 펼쳐 나가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못하였다. 그 후 1960년의 4.19학생운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자기 내부에 매몰되어 있던 신앙을 극복하고 학원사회에 대한 선교라는 방향으로 신앙의 형태를 전환시켰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사회참여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1971년에는 총련산하에 학생기획위원회를 두었으며,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연합하여 크리스챤 사회운동협의회를 결성하여 사회정의구현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청계천 철거민 이주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2년 총련이 해체되면서 한 때 구심점 없는 분산의 시대를 맞아 팍스 로마나의 운동은 침체의 국면에 빠지기도 하였다. 1981년 12개 교구의 대표가 참석한 회장단회의에서 팍스 로마나는 “억압받고 신음하는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세계 팍스 로마나의 날은 부활절 다음의 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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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니 [원] Papini, Giovanni

Papini, Giovanni(1881∼1956). 이탈리아의 철학자, 가톨릭 작가. 피렌체 태생. 관념론(觀念論), 프래그머티즘, 무신론(無神論)으로부터 회의론(懷疑論)으로 이행(移行), 1921년 반평생의 적이었던 그리스도교로 회심(回心)하였다. 볼로냐대학 교수, 이탈리아 아카데미 회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그리스도의 생애≫(Storia di Cristo)(1921), ≪Pane e Vino≫(1926), ≪Gog≫(1926), ≪Dante Vivo≫(1933), ≪Storia della Letteratura Italiana≫(1937), 자서전 ≪Un Uomo Finito≫(19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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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원] Papua New Guinea

남태평양의 뉴기니섬 동반부와 비스마르크제도 등으로 구성된 영연방 가맹국가, 부간빌섬, 부카섬과 트로브리앤드, 우들라크, 루이지애드, 당트레카스트제도 및 솔로몬제도의 일부가 포함되며 1975년 9월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독립하였다. 동쪽은 솔로몬 제도, 서쪽은 인도네시아, 북서쪽은 필리핀, 남쪽은 토레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주한다. 면적 46만 1,691㎢, 인구 약 309만명(1982년 추계)이다. 기후가 고온다습하며 국토의 80%는 열대림으로 덮여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파푸아족이며, 이것은 다시 500여 부족으로 세분된다. 공용어는 영어이나 원주민들은 파푸아어를 사용한다. 파푸아인은 키가 작고 머리가 길며 고수머리가 특징이다.

말레이어로 ‘짧은 머리털’을 뜻하는 파푸아는 1526∼1527년 뉴기니해안을 항해한 포르투갈인 항해사 메네세가 뉴기니 남해안에 붙인 이름이다. 이곳의 원주민은 파푸아족과 멜라네시아인으로 원시적 형태의 농경에 종사하고 있었다. 1660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한 이래 18세기에는 유럽 열강들이 앞을 다투어 이 해역의 조사에 나섰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점령 하에 있기도 하였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97만 2,0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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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성모 [한] ∼聖母 [영] Our Lady of Fatima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 13일 6회에 걸쳐 발현(發顯)한 성모를 말한다. 뒤에 가르멜회 수녀가 되어 이 발현에 대해 저술한 루시아(Lucia dos Santos, 1907∼1960)와 그녀의 사촌 히야친타(Jacinta Marto, 1910∼1920)와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 등 세 목동들만이 성모를 직접 보고 그 말씀을 들었다(단, 프란치스코는 듣지 못했다). 사람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발현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군중의 수는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성모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약속한 10월에는 태양이 지상에 수직으로 떨어지며 회전하고 갖가지 빛을 발하는 ‘태양의 기적’을 7만명의 군중이 목격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는 세 어린이들을 통해 속죄, 로사리오 기도를 자주 받칠 것,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칠 것, 성직자를 위해 기도할 것, 세계 모든 사람이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할 것, 그리고 매달 첫 토요일에 속죄의 영성체를 할 것 등을 당부하였으며 이 대가로 많은 영혼이 구원되고 더 끔찍한 세계전쟁을 피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약속하였다. 1930년에 포르투갈의 주교들은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의 요청대로 러시아에 대해 특히 언급하면서 세상을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였다.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발현 50주년 기념에 개인적으로 파티마를 찾아 순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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