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크 [원] Funk, Franz Xaver von

Funk, Franz Xaver von(1821∼1907). 교회사학자이며 교부학자. 독일 압트스크뮌트(Abtsgmund)에서 출생하여 튀빙겐에서 별세. 독일에서 교육받고 1863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64년 사제가 되었고, 튀빙겐에서 신학 전임강사를 역임(1866∼1870년), 헤펠레(C. Hefele)를 대신하여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다가(1870년)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1875년). 초대교회사와 교부에 관한 학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고고학자로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고, 튀빙겐의 가톨릭 교수로서 37년간 학문에 정열을 쏟음으로써 그 명성을 더욱 높였다. 저서 ≪Opera Patrum Apostolicorum≫(2v., Tubingen 1878∼1881)은 제자들과 후계자들에 의하여 판을 거듭하였고 ≪Lehrbuch der Kirchengeschichte≫(1886)는 빌마이어(K. Bihlmeyer)와 튀흘러(H. Tuchle)의 현대적 연구서인 ≪교회사≫의 근간을 이루는 저서이다. 그밖에 ≪Zins und Wucher≫(1868), ≪Geschichte des Kirchliehen Zinsverbotes≫(1867)를 썼고 ≪Doctrina XII Apostolorum≫(1887), ≪Didascalia et Constitutiones Apostolorum≫(2v., 1905)을 편집하였으며 논문집 (3v., 1897∼1907)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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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원] Foucauld, Charles de

Foucauld, Charles de(1858∼1916).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 스트라스부르 태생. 첫 영성체 후, 무신앙과 방자한 정신상태에 빠졌으며, 기병소위로서 아프리카 알제리로 좌천, 1882년 중위로 퇴역, ≪모로코 탐험기≫(Reconnaissance au Maroc, 1888)를 저술하였다. 정신적 불안으로 고민하다가 1887년 가톨릭으로 복귀, 그 전의 자유분방했던 생활을 회개하고 성지순례(1888∼1889년) 후 189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갔으나, 고독한 생활을 위해 수도원을 나와서 나자렛, 예루살렘의 글라라 동정회 여자수도원에 노무자로 근무하였다. 1901년 귀국하여 사제로 서품되어, 같은 해 선교사로서 북아프리카 사하라사막의 오지(奧地) 타만라세트(Tamanrasset)로 건너가 원주민 투아레그족(族)의 언어를 공부하여 사서(辭書) 작성과 번역을 하고, 원주민을 돌보는 한편 타만라세트 근교에 수도원을 건립(1905년), 선교에 힘썼으나, 1차 세계대전 중에 암살당하였다.

그는 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 사이에 순응적인 새로운 포교방법을 창시했으며, 그의 사망 후 2개의 푸코 포교회(the Association Charles de Foucauld 또는 the Mission de Foucauld)가 설립되어 그의 사업을 계승하고 있다. 바쟁(Rene Bazin)이 저술한 그의 전기 ≪Charles de Foucauld≫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카루즈(Michel Carrouges)의 ≪CHARLES DE FOUCAULD, explorateur mystique≫와 시스(Jean Francois Six)의 ≪Charles de Foucauld Aujourd’hui≫는 각각 ≪샤를르 드 푸코≫ 및 ≪오늘의 샤를르 드 푸코≫라는 책명으로 우리나라 번역판이 나와 있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1939년 사하라의 투구르트(Touggourt)에서 창립된 수녀회.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현재 세계의 6대륙 56개국에 200여개의 분원(회원 1,300여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955년 진출, 1956년 왜관(倭館)의 나환자 정착부락에 첫 ‘우애의 집’을 설립, 현재 서울 혜화동에 한국본부를 두고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역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1933년 알제리에서 창립된 관상수도회로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Petits Freres de Jesus)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1969년에 진출했으며, 한국 본부는 서울 청량2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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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케 [원] Fouquet, Jean

Fouquet, Jean(1416?∼1480?). 프랑스의 화가. 투르 태생. 로마에 유학, 샤를르 7세의 궁정에 화가로 근무(1448년), 1475년 왕의 전속화가가 되었다. 그 밖의 후원자로는 슈발리에(Etienne Chevalier), 위르신의 주베날(Jouvenal des Ursins) 등이 있었다. 슈발리에, 오를레앙 공 미망인인 클레브의 마리(Marie de Cleves), 코미네의 필립(Philippe de Comines)을 위해 각각 ‘Livres d’Heures’의 채식(彩飾)을 하였다. 그의 화풍은 네덜란드풍에다 이탈리아의 모티브를 혼합해서 높은 경지를 암시한다. 대표작은 <기사 에티엔과 성 스테파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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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원] Puerto Rico

대(大) 안틸리즈(Antilles) 열도 중에서 가장 작은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 8,897㎢, 인구 약 395만명(1982년 추계)이다. 콜룸부스의 제2차 항해 중에 발견된 것으로, 1509년에 레온(Juan Ponce de Leon)이 스페인왕의 이름으로 이 섬을 차지하였다. 이들은 주로 금광의 채굴 목적으로 체류하였으므로, 1570년에 금광이 바닥나자 스페인 출신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기를 희망하였으나 본국 정부에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눌러앉아 살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이 섬나라의 조상이 되었다. 1511년 스페인령 세빌(Seville)의 감목대리구가 된 이래 많은 변천이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321만 9,000명이며, 267개의 본당을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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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군단 [한] ∼軍團 [영] Blue Army

정식명칭은 ‘파티마 성모님의 푸른 군대’로 1947년 미국의 해롤드 콜갠(Harold Coalgan) 신부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는 병상에서 1829년 6월 파티마의 루시아에게 발현한 성모가 루시아에게 준 메시지의 의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중 “내가 만일 성모님의 은혜로 회복된다면 소련의 회개를 바라는 성모님의 요청을 세상에 알리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였다. 몇 주 뒤 병상에서 일어난 콜갠 신부는 강론을 통해 “무신론자들은 ‘붉은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본당 신자들은 그들의 회개를 위해 성모님의 요구 조건을 채워드리는 ‘푸른 군단’ 대원이 됩시다”라고 외침으로써 푸른 군단은 창설된 것이다. 이들 푸른 군대는 ‘붉은 군단’을 회개시키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①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② 일상생활의 고통을 참으며 희생하고, ③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을 일으켜 성모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생활을 한다. 모든 대원은 파티마의 메시지를 전파 · 실천 · 정착시키는 데 노력해야 한다. 푸른 군단의 본부는 파티마에, 국제사무국은 스위스에 있으며 세계 60여 개국에 전국평의회가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푸른 군단운동은 1964년 부산의 동항천주교회 하 안토니오 신부가 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해 7월 한국의 푸른 군단이 설립되었고, 1968년 푸른 군단의 소리인 <하나의 별빛>이 창간되었다. 현재 각 교구장의 인준을 받고 푸른 군단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며, 본부는 부산시 남구 우암 2동 125번지에 있다. 1981년 봄부터는 <마리아>(Maria)라는 잡지를 창간,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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